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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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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 다닐때 1권을 사서 읽고는 (그때는 새와 물고기에서 나왔고 총 3권이었다.) 너무 재밌다를 연발하며 다음권을 찾았으나 이미 절판된. 나로써는 무척 아쉽고도 안타까운 책이었었다. (더불어 나의 게으름도 통탄스러웠다. 게으르면 죽어야지를 그때 부터 연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책 세상에서 히치하이커 시리즈를 다시 5권으로, 그것도 들고 다니면서 읽기 딱 좋은 사이즈로 재 출간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이 책을 꼭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결국에는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하는 지인의 바다와도 같은 배려심으로 책 다섯권을 몽땅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책장에 꽂아두고 내내 흐뭇하게 바라봤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쿠키 상자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맛있는 쿠키가 있는가 하면 맛없는 쿠키도 있다고. 그래서 지금 맛없는 쿠키를 먹더라도 언젠가는 맛있는 쿠키를 먹게 될 것이라고. 나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한다. 다른 쿠키들을 해 치우는 동안. 나는 이 맛있는 히치하이커 쿠키 시리즈를 고이 남겨뒀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집구석에 쌓아둔 책을 다 읽고 더는 읽을것이 없는 그날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히치하이커를 꺼냈다. 음... 표지가 좀 촌실방하군 싶었지만 뭐 어떤가. 맛있는 쿠키는 가끔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반하기도 하는 법. (쿠키와 떡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날때 설명하도록 하자)

총 다섯권의 책이기에 아직까지 1권만 읽은 주제에 서평을 쓴다는 사실이 좀 찔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설마 2권, 3권 다 따로 쓰기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지금 이 느낌을 써 놓지 않으면 영영 까먹을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관계로 일단은 서평을 쓰기로 했다.

좀 웃긴 얘기지만 이 책. 즉 히치하이커 1권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것은 바로 서문격인 '안내서에 대한 안내' 였다. 그 옆에는 -작가가 말하는 별 도움 안 되는 이야기들- 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문구인가! 별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라니. 그것도 이 책을 쓴 작가가 말하는 도움 안되는 이야기. 너무 흥미롭지 아니한가. 과연 이 서문은 예술이었다. 어지간하면 책의 본문을 인용하지 않는 나 이지만 (그러려면 책을 찾아봐야하는 수고스러움의 압박이 밀려온다.) 여기서는 도저히 그러지 않을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엄청나게 배째는 느낌을 나는 고스란히 전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다음은 그 서문들과 나의 느낌이다.

이 판본에 잘못 적힌 게 있다면, 내가 아는 한 그 잘못들은 그걸로 영영 끝이다. 이 얼마나 뻔뻔스러움의 포스가 느껴지는 말인가. 내가 본 책들은 판본에 잘못이 있으면 머리숙여 백배사죄 올림은 물론 귀찮더라도 가까운 출판사나 구입하신 곳으로 가시면 기꺼이 바꿔드리겠다는 말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라. 작가는 잘못 적힌것이 있더라도 저자인 자신이 아는 한 그것은 영영 끝장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저자가 이 책에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과 동시에 귀찮은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진정 멋지구리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저 따위로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배째라의 정신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에 빌린 닳아빠진 책이었다. 십년도 넘은 일이고, 그 책은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젠 훔쳤다고 봐야 옳다. 이 대목은 과연 물건을 빌린지 얼마나 되면 그걸 훔쳤다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가 되겠다. 저자는 어떤 책을 빌렸고 (켄 윌시가 쓴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란다.) 그 책을 무려 십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도 저자의 집구석에 뒹굴고 있는 것을 훔치다 라는 위풍당당한 용어를 쓰며 정리했다. 돌려주려고 했지만 앞집 개똥이가 이사와서 못을 쳐대는 바람에 잠을 못자서 라던가 돌려주려고 가는길에 그만 자동차가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보니 내 위로 원숭이가 날아가고 원시인들이 줄지어 섰더라 따위의 치사스런 변명은 하지 않는다. 그저 돌려주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 기간이 무려 십년이나 되었으니 자신은 훔친것이나 진배 없다고 말하는 이 당당함. 일만 터지면 변명하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의 습관에 일침을 놓는 주옥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부터 뭘 빌려서 십년넘게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거들랑 우리 모두 훔쳤다 라고 솔직하게 인정하자. 시립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제 9년 하고도 11개월만 더 버티면 훔친게 된다. 그럼 이제 그건 내꺼다.

현재 소문에 의하면, 영화 촬영은 최후의 심판일 직전에 시작 될 것이라고 한다. 이건 저자가 이 책과 관련한 대본을 썼고. 그게 영화화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듭 연기가 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조만간, 곧, 수일내에 따위의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기다려야 할 기간은 조만간, 곧, 수일내와는 택도 없을 만큼 긴 시간들인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우린 저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얼르고 기다리는 것을 독려한다. 허나 저자는 이런 쓸데없는 말 대신 단 한마디를 했다. 바로 최후의 심판일 직전. 이 얼마나 명확한 말인가. 사실 최후의 심판이 다가왔는데 영화를 찍고 앉았을 미친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저자가 이제 그만 자신이 쓴 대본이 영화화 되는 꼴을 보기를 포기했다는 말을 최대한 코믹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그냥 아마도 영화화 되기 힘들 것이다라는 것 보다 얼마나 로맨틱하고 엘레강스한가. 정말 훔치고 싶은 표현이라 아니할수가 없다.

자. 서문은 이쯤 하자. 그 다음 책 내용...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 또 대단한게 나온다. 이번에는 그냥 설명없이 옮기기로 하겠다. 이것은 저자에게 어떻게 하면 이 행성을 떠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간략한 정보이다.

1. 나사 NASA 에 전화하라. 전화번호는 (713) 483-3111 이다. 당신이 지금 당장 떠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2. 그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백악관 (202) 456-1414 에 있는 아무 친구에게나 전화해서, 나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 좀 해달라고 하라.

3. 백악관에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그렘린에 전화하라 (0107-095-295-9051 로 전화해 국제 교환수에게 그렘린을 대달라고 하라). 그 사람들도 백악관에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남들한테 대놓고 말 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 영향력은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도 해 볼만하다.

4. 그것도 안 되면, 교황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봐라. 교황의 전화번호는 011-39-6-6982다. 내가 듣기에 교황의 교환수는 절대로 잘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5. 이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 신호를 해서 지나가는 비행접시를 정지시킨 다음, 전화요금 청구서가 날아들기 전에 이 행성을 벗어나는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쓰다가 보니 너무 길어져서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 넓은 이해를 부탁드리면서. 이왕 부탁을 들어주는 김에 하나만 더 하자. 저 번호가 진짜인지 아닌지 겁나게 궁금한데 혹시 나를 대신해서 저 번호로 전화를 해서 알아봐 줄 사람이 있으면 정말로 고맙겠다. 비록 재벌 2세이지만 할일은 없는 사람들의 많은 참여 바라며. 책에 대한 서평은 나중에 다섯권을 다 읽고 쓰겠다. 지금 말 할 수 있는것은 저 서문 만큼이나 책이 재밌다는것. 단 한가지이다. (자자. 흥분하지 말고 짱돌 내려놔라. 알다시피 내신 15등급은 그런거 몇개 맞는다고 해서 뇌가 어찌되거나 죽지도 않는다. 서평은... 수일내에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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