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저는 저자의 <맡겨진 소녀>를 올해 초에 읽었었는데요.
유명세와 다르게 감동적이지 않았거든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도 별로 크게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시도를 안 했고요.
이번에 신간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는데요.
여전히 유명세가 대단하다는 것!
7편의 단편 모음집이라는 것!입니다.
7편이라면 그중 내 마음에 드는 게 한 개는 있겠지 싶었거든요.
역시나 제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7편 중 2편은 좋았고 나머지도 괜찮았어요.
너무 기대를 안 해서인지, 반년 동안 다양한 소설들을 접해서인지 이번 단편집은 좋았습니다.
일단 읽는 법이 있더라고요.
짧은 단편은 20쪽 정도의 분량이거든요.
그런데!!! 20쪽이 20쪽이 아닙니다.
저자의 문체의 독특함 때문인데요.
친절한 설명이 없어요.
한 문장, 한 단어를 놓치면 소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거든요.
친절한 작가가 썼다면 100쪽으로도 늘어날 분량입니다.
실제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키건은 한 인터뷰에서 짧은 이야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세상의 장편소설은 대부분 너무 길어요. 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어떤 강렬함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렬함은 장편소설에서는 쉽게 사라집니다.”
클레어 키건의 책은 천천히 두 번 세 번 문장을 읽어야 하더라고요.
- 과거의 고역은 사라졌고 새로운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길 웅덩이에 불길이 비쳐 은처럼 밝게 빛난다.
디건이 생각을 붙잡는다.
그에게는 일이 있고, 이건 그저 집일 뿐이고, 그들은 살아있다.
-그녀를 사랑하겠다던 말을 기억한다.
그는 그 모든 일들을 온전히 기억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곧 부활절이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성지주일 강론을 준비해야 한다.
그는 길을 향해 들판을 다시 오르며 사제로서 나무들의 라틴어를 최선을 다해 판독하는 내일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는 크고 작게 다들 상처와 상실을 가지고 있는데요.
결국 주인공들의 태도들이 그럼에도 살아낸다는 것을 담고 있어서 뭉클하더라고요.
곱씹어 읽는다, 재독 하고 싶다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진짜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천천히 읽게 되고 뜻을 찾게 되고요.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은 없다는 생각으로 읽다 보면 20쪽이 50쪽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처음 도전하는 분이라면 천천히 문장을 따라 읽으면서 읽어보세요.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