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배신 - 무병장수의 꿈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조영 옮김 / 부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분노를 부르는 피임법, 임신 검사, 과잉 처방-

나는 18세 무렵에 처음으로 남자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똑바로 누워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를 벌린 채 모멸감이 드는 피임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 10년쯤 지나 임신을 하자 매달 받는 정기 검진이라는 덫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출산 몇 주 전, 다니던 병원의 산과 수석의가 자궁 내부를 손으로 만지며 검사하는 골반 내진을 할 때 모멸감은 절정에 달했다. 아무 말도 건네지 않다가, 의사가 질에서 검경을 빼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자궁경부가 확장되기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간호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이런 예쁜이가 저렇게 말하는 걸 어디서 배웠지?"
이 검사가 나의 건강,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감정에는 즉각 영향을 미쳤고,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시 나는 임신 관련 도서를 여럿 읽었을 뿐 아니라 막 세포생물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터라, 그 의사와 비슷한 방식의 저속한 말들을 써 가며 계속해서 맞받아칠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이때가 내가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스트, 다시 말해 멍청한 대상이 아닌 의식 있는 한 여성이 된 순간이었다.

그 후로 몇 년간 나는 정기적인 산전 검사, 산후 검사, 신생아 검사, 유아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나는 좋은 엄마였고 아이들의 예방 접종과 발육 측정이 필요할 때마다 병원에 갔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필요한 진단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아과 의사가 감기에 걸린 둘째 아이에게 항생제를 처방했을 때, 나는 아이의 병이 세균성이라고 봐야 할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바이러스성이예요. 그저 걱정 많은 엄마들을 위해 늘 항생제를 처방한답니다." 그러니까 그 처방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처방은 받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리며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만일 어떤 진료 행위가 환자에게 생리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그 행위는 무엇으로 분류되어야 할까? 분명히 그것은 ‘의례’다. 의례란 일반적으로 ‘미리 정한 절차에 따라 행하는 일련의 행위들로 구성된 엄숙한 의식’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의례는 뭔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심리적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그것이 환자의 건강에 기여하느냐, 아니면 환자의 무력감이나 나의 경우처럼 분노를 깊어지게 만드느냐가 문제가 된다. p.34-35

<건강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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