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連理枝(연리지) 이야기

 



 

◈連理枝(연리지)◈

이을 연,  이치 리,  가지 지. [출전]白樂天의 <長恨歌>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다정한 연인.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본디 連理枝의 故事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連理枝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본디는「효심(孝心)」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다정한 연인(戀人)의 상징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당(唐)의 詩人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
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
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비명)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




연리지 이야기

연리지(連理枝)...

두 그루의 나무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보통 죽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연리지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연리지 라는 나무들은 처음에는
가지 하나씩이 붙는답니다.

그래서 두가지가 하나되고..
그리고는 또 뿌리가 붙어서 하나가 되고..
마침내 두 나무는  한 나무가 된다는 군요.

참으로 신기한것은.. 
두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되지만..

각각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개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흰꽃을 피웠던 나무는 여전히 흰꽃을 피우고..
노란꽃을 피웠던 나무는 그대로 노오란꽃을 피운다네요.

하나 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 가는 연리지..

더불어 살면서도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간다는것..
생각만해도 .....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 가운데
많은 만남들이 그렇게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만남이
되어지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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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hallonin > 한국만화, 어떻게 살아나야 하는가.

화제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만나다

 

이 기사가 신선했던 것은, 한 편의 만화가 일으킨 현상을 추적하기 위해 일본 현지에서 만화의 스토리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온전히 와인 얘기만을 위해서. 와인이라는 소주에 비해 꽤 비싼 기호품과 중앙일보라는 매체의 성격이 일으키는 화학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발 빠른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의 이슈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겠고, 또한 앞으로의 이슈화 또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전일=신의 물방울=겟백커스 작가가 동일인이라니!

 

사실 [에지]와 [쿠니미츠의 정치], [겟백커스], [신의 물방울]로 이어지는 고단샤 라인은 여러 모로 상당히 흡사한 이미지들이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인물의 스토리, 혹은 같은 인물의 기획의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와, 짱이다! 라고 외칠 법한 작품은 없지만, 적어도 대중의 기호를 완벽하게 노리고 있다는 점에선 탁월한 작품군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군들의 성공의 뒷배경엔 한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전문적인 지식을 통한 탄탄한 바탕과 트렌드에의 추구라는 점. 그중에서 특히 물건너 온 [신의 물방울]의 성공은 허영만의 작품세계 변화와 더불어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만화계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기능성 만화의 필요다.

 

우선 흔히 만화의 기본축이라고 암묵적으로 얘기되는 소년만화쪽을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단순히 소년만화라고 해서 소년만화 에스컬레이터 법칙 동료동료동료 등등 주루룩 넣어서 만화 만들어봤자, 그게 주소비층인 애들은 더 잘 짜인 일본 소년만화를 보지 어설픈 한국 거 안 본다. [원피스]와 [크로키팝] 사이엔 깊고도 깊은 강이 있다.


또한 [헌터X헌터]에서의 넨 정도로 강력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쪽 장르에서의 경쟁력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정도 창의성은 일본에서조차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네들의 '보통', '그저그런' 소년만화가 작가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소비되는 건 결국 소년만화의 법칙들을 줄줄 따른 결과물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층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안 그렇다. 우리의 소년만화 소비층 대다수는 그네들 소비에 일익을 더해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로 돈을 짜낼려면 애들이 아니라 어른, 성인층을 노려야 한다. 우리가 봐야할 건 돈줄을 쥐고 있으며 스캔본으로 보는 건 눈 아파 하고 전문적인 만화, 참고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만화엔 돈을 아끼지 않는 청년-성인 소비층이다. 이제 만화 자체의 힘으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이것은 이미 다방향 컨텐츠 활용이 전통이 된 일본도 그렇거니와 만화를 전달하는 매체 자체가 바닥난 우리나라에선 더욱더 절박한 문제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는 만화 자체를 추구함에 있어 사회의 트렌드, 스위치가 되는 길을 노려야 한다.

 




그런 고로 우리 출판사가 참고해야 할 것은 [러브히나]나 [원피스]가 아니라 [맛의 달인]과 [마스터 키튼]의 세계다. 단적으로 이건 허영만의 성공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바로 그 소비자들의 취향을 자극하는 진짜배기 전문성 만화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진리. [신의 물방울], 다수의 요리만화들, 요시나가 후미의 철저하게 성인스러운 정서, [마스터 키튼]의 전문성.



 


이와 비슷하게, 허영만 만화가 쌍팔년도 대본소 장르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전문적인 기능성을 가진 만화, 전문가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만화들로 전환하여 대박을 치고 있는 걸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게 철저한 기획성이 되야 한다는 점인데 그럴라면 허영만 정도의 짬밥이 아닌 한엔, 만화가 혼자선 절대 불가능한 얘기다([신의 물방울] 아기 타다시는 편집장 경력이 있는 베테랑중의 베테랑이며 개인소장의 와인창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고 [마스터 키튼]의 가쓰시카 호쿠세이에겐 밀리터리 정보 어시가 세명이 붙어있었다). 그런 고로 출판사의 체계적 지원, 돈, 전문가 그룹과의 연계, 그리고 트렌드에의 직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만화계의 네오가 가질 법한 조건이다.

물론 말은 좋다고 할지 모르겠다. 강도하의 말에 따르자면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출판사 사장 한 명뿐이라는, 이 주먹구구적 폐쇄세계에서의 일이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칙은 세워둘 필요가 있다.


매체는 인터넷만화와 신문....이 우선 생각되겠지만, 인터넷만화의 경박성이 전문적인 만화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을지는 좀 의심스럽고, 대본소풍 작가들이 주름잡고 있는 깽판이거나 재활용, 또는 단발적인 재치에 의존하는 '싼' 작가들을 쓰고 있는 신문만화시장은 그나마 현재 운용되는 매체 중에선 가장 확실한 영향력을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좀 힘들어보인다. 부수저하로 인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신문사와의 파격적인 협상이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이번에 창간될 지하철 공략용인 씨네21 부속 만화잡지. 나는 이 만화잡지가 순수 한국만화로 채워야 한답시고 쓰잘데기 없는 실험만화들, 소수의 우울증 감수성이나 자극할 법한 그렇고 그런 센티멘탈한 만화들, 작가적 만화들로 가득 채워질까 걱정된다. 물론 그 작품들은 뛰어날 수도 있고 개별로 보면 훌륭할 수도 있다. 그런 감수성, 또한 소중하다. 그러나 동시에 매너리즘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정말 탁월한 작품이 아닌 한엔, 인터넷만화 좀만 둘러보면 온통 그렇고 그런 류시화 시에서나 쓰일 법한 싸구려 경구로 가득한 만화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확실하고도 소중한 만화 연재의 매체가 필요하며 어쩌면 다 망해가는 이 시점에서 거의 시대착오에 가깝게 이번에 나올 새 만화잡지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성격 규정은 절박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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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발레무용가 강수진의 발




발끝으로 잡은 무게의 중심

수직의 정지를 위하여

중심은 숱하게 무너져 내렸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뿌리가 되고 있었다

곧게 뻗은 우아한 팔의 곡선미와

선율과 함께 온몸의 존재가 흐르고 흐를 때

뿌리는 끝없이 물관으로 체관으로

물과 양분을 나르고 있었다

우뚝 선 느티나무는

그늘을 짙게 두리워 정자나무라 하지만

그 뿌리가 나무의 크기만큼 보이지 않는 대칭으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함을

당신 발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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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샤오바오'에 빠진 장이머우와 중국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차를 태워보내고 곧장 편의점에 가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손에 들고 왔다. 최장집 교수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를 읽어보기 위해서였다(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기사는 여기저기서 다루기에 있기에 페이퍼를 만들다가 그만두었다). 곁가지로 읽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한겨레에 실린 '세계의 창'. 중국의 언론인 저우창이가 '샤오바오' 부리는 중국과 장이머우를 꼬집고 있는 칼럼이다(덕분에 '샤오바오'란 중국어 단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번주 개봉예정작인 장이머우의 <황후화>에 대해선 부정적인 영화평들은 미리 접한 바 있고 또 최근에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를 미리 보기도 했다(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집중해서 볼 만한 영화도 아니었다). 장이모의 '변신'이 그 자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필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 칼럼과 영화 <황후화>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22) 장이머우와 샤오바오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우쭐대는 것을 ‘샤오바오’(燒包)라고 한다. 중국에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샤오바오를 부린다.

2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반지’였다.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다니며 유세를 부렸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한탄할 정도였다. 1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연회’로 바뀌었다. 식탁 가득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고 호사를 부렸다. 이 바람에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의 음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이때는 거리의 건달들도 샤오바오를 부렸다. 이들은 홍콩 조폭영화에 나오는 깡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황금영’(상하이 폭력조직 흑사회의 두목)을 되뇌었다.

요즘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첩’이다. 뇌물로 돈을 번 탐관오리나 장사로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첩을 거느린다. 한둘은 기본이고, 첩을 열이나 데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 첩의 샤오바오는 ‘황금장신구’다. 몸에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다니며 위세를 떤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들은 ‘황금통장’이라는 샤오바오를 부린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비상금을 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젠 정부도 샤오바오를 부린다. 정부의 샤오바오는 ‘황금성’이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관청을 자금성처럼 호화롭게 꾸민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건물을 장식하는 데 마음껏 호사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도 샤오바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무덤’이다. 요즘 같은 호시절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무덤을 궁전처럼 호화롭게 지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세상이 모두 샤오바오를 부려도 지식인들만은 예외였다. 이들은 청빈을 얘기하며 고고함을 지켰다. 샤오바오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뒤에 있는 여론도 상인이나 관리들의 샤오바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들마저 샤오바오에 빠졌고, 여론도 샤오바오를 문제삼지 않는 지경이 됐다.

요즘 지식인들의 샤오바오를 대표하는 게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금갑>(당나라 말기 황궁의 암투를 그린 영화. 한국에선 <황후화>로 번역)이다. 그는 원래 중국 계몽영화의 기수였다. 그의 영화 <국두> <귀주이야기> <홍등>에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듬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중국 상업영화의 선두에 서 있다. 그의 최근 작품, 특히 <황금갑>에선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두 개의 단어 ‘사치’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중국 영화에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갑>과 동시에 개봉한 자장커 감독의 <삼협호인>은 중국 영화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중국 계몽영화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협호인>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갑>이 3억위안을 벌어들여 중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삼협호인>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장이머우의 잘못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에 눈먼 중국 관객의 잘못이다. 장이머우가 샤오바오하게 된 것은 결국 중국 국민들이 샤오바오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샤오바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샤오바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은 올림픽 개막식이 샤오바오의 거대한 의식이 될까 걱정스럽다.(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마이데일리(07. 01. 22) 장예모의 '황후화'는 대국민 반란 경고메시지!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이 만든 대작 ‘황후화’가 오는 25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서 지난 17일을 기점으로 3억위안(약 360억원)의 흥행을 돌파, ‘영웅’의 2억5천만 위안의 권위를 무너뜨린 ‘황후화’는 아직도 줄지어 영화관을 찾는 중국관객들 탓에 오는 설까지 1998년 ‘타이타닉’이 세운 3억5천만위안의 최고기록 갱신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을 영화관에 불러모은 중국 블록버스터 중 최고의 대표작이 이제 국내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력뿐 아니라 세계적인 배우 공리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이야기구성이 탄탄하고 관객의 진지한 고민과 참여를 요구하는 영화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황후화'는 “관객의 분노를 고려하지 않는 장이머우와 중국의 자본”(왕즈민 베이징영화대학 교수)이라는 혹평 뿐 아니라 중국의 모 인터넷 논단에서는 “영화를 보고 구역질이 나왔다”면서 “어서 장이머우를 (중국을 대표하는) 베이징올림픽 총감독 직에서 끌어내리라”는 비난도 동반하고 있다.

450억원의 자본이 영화 곳곳에 투입돼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을 자신있게 그려냈지만,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과 호화로운 영상으로 넘실대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중국관객들은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미학적 가치판단 기준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최저점으로 떨어뜨렸다”(인훙 칭화대 교수)는 ‘황후화’는 관객을 조롱하는 허무맹랑한 상업영화가 아니고 형식만을 강조한 중국식 블록버스터의 극단으로 치닫지도 않았지만 웬지 관객들과의 욕망의 접합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의 강력한 전제부권질서가 자유가 없는 아랫세대들에게 초래한 참담한 비극을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군관출신으로 혁명을 통해 왕권을 쥔 저우룬파(주윤발)이며 그는 영화 속에서 무력과 권위의 상징이면서도 어지럽고 출로가 보이지 않는 황실의 모든 잘잘못의 근원지다.



장이머우는 이러한 저우룬파에게 억압을 당하는 황후(공리 분)와 세 아들들이 갖가지 이유 때문에 저우룬파를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데 가담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이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게 됨으로써 현실생활 속의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우선 태자(류예 분)라는 인물은 왕을 두려워하고 왕에게 복종하는 전형적인 유형으로 기존의 권력질서에 순응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왕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반란에 끌려간다. 황후와는 불륜이고 여동생과 난륜을 저지르는 그는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둘째(저우제룬 분)는 왕의 신뢰를 받아 차기왕권을 계승받는 것이 시간문제이지만 황후의 편에 서서 쿠데타에 가담해 왕권을 쟁취하려 드는 판단실수를 저지른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권력을 인계받을 수 있으나 황후의 꼬임에 넘어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장이머우는 그를 죽음으로 끝맺게함으로써 감정에 치우친 반란을 통한 정권교체 욕망을 강하게 경고한다.

셋째는 가장 사욕과 과오가 없는 중국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듯 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계승자로 급부상하지만 결국은 권력을 위해 왕도 형제도 모두 단숨에 부정해버릴 수 있는 자가 돼버린다. '너희들이 모두 잘못이 있는 이상 너희는 모두 죽어야한다'는 생각을 펼치는 셋째는 태자도 죽이고 왕도 죽여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하나 장이머우가 이미 그를 중국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젊은이의 유형으로 정해놓은 뒤의 일이다.

장이머우는 결국 이렇게 세 아들이 유일한 출로로 주장하는 반란을 참담한 실패로 귀결지음으로써 왕이 비록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누구도 왕만한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고 왕을 탓하며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실은 왕보다 더 저열한 자들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깨닫게 만든다.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한 장이머우는 다시 관객의 차오르는 욕망을 분쇄시켜버린다.

피비린내나는 쿠데타는 반란을 일으킨 이들의 처절한 죽음만을 불러오고 황실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시체더미의 참상 뒤로 남겨진 것은 권력을 지켜냄으로써 미쳐가는 왕과 모든 것을 잃어버려 미쳐버린 황후 뿐이다. 하지만 장이머우는 세 아들의 쿠데타가 왜 실패해야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따끔하게 일러주며 쿠데타를 경고하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반은 미쳐버린 황후의 마지막 비명과 절규를 통해 어찌할 수 없는 황실의 현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장이머우는 관객들이 저우룬파가 그려낸 왕이란 인물을 혐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관객들이 황실의 미래를 그려내는 데 참여해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변화를 요구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욕망만이 아닌 보다 냉철한 현실 판단을 주문한다.(이용욱 특파원)

07. 01. 22.

P.S. 매일경제의 기사를 보충하면 이렇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비극작품 중 하나인 '뇌우'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이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1990년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러나 '영웅'(2003년)이나 '연인'(2004년) 등 최근 들어 방대한 스케일을 강조하는 액션에 탁월한 연출력을 자랑하며 또 다른 신화를 개척해 가고 있다.

장 감독은 "내 과거 영화들이 주로 예술성에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많은 중국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 쪽으로만 가고 있어 그 대항적 측면에서 선택한 장르"라고 강조했다. 예술영화 거장으로 잘 알려진 그가 상업성을 강조한 대목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예술성과 상업성, 이 둘을 모두 잡는 게 지금 중국 영화인들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첸카이거의 <무극>과 함께 장이머우의 <황후화>는 중국 5세대 영화가 이젠 정말로 '과거의 영화'가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혹은 5세대 영화의 예정된 '몰락'인가. CG와 황금갑으로 덧칠하여 호화롭기 그지 없는, 그러나 몰락 혹은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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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

우연히 눈에 띈 기사 하나를 옮겨둔다.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연재하는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의 첫 꼭지 시인 이성복 편이다. 기자가 적은 연재의 취지는 이렇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철갑영웅이 된 지그프리드나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던 헤라클레스도 마음의 상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입는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이면서, 또 극약이다. 상처에 굴복하느냐, 상처를 딛고 이겨내느냐가 문제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상처를 문학과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다. 상처를 인생의 전기로, 또 삶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룬 문학·예술인들. 그들의 삶과 예술 속의 상처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한다."  

매일신문(07. 01. 19)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① 시인 이성복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시 ‘그날’ 중에서).

시인 이성복은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상처를 얘기하면서 시인 이성복(56)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쓴 절절한 시편의 성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하 ‘뒹구는 돌’)는 벌겋게 곪아 벌어진 상처를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시어로 가득 차 있다. ‘내 구두발에 짓이겨',‘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 생산력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 그의 시집은 현실의 폭력성과 일그러진 가족사를 칼 끝 같은 분노로 헤집으며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이 지독한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평 반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시인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작은 전기히터만 힘겹게 찬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그는 “시는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첫 시집 ‘뒹구는 돌’과 두 번째 ‘남해 금산’은 그 제사상의 헌주고 헌사이다. 그는 초기 시집의 상처 이미지는 “집단적 상처가 내면화된 것”일뿐, 나의 개인적 상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누이와 형에 대한 훼손된 감정은 뭐란 말인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떼를 써 서울로 유학을 갔다. 가난해도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고, 부모님도 사려 깊고 온화했다. 시 속에 보이는 폭력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실제 아버지는 시 속의 인물처럼 증오의 대상이거나, 상처를 준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폭력이 가족사로 구조화된 것”이라며 자신은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공명통일 뿐”이었다고 했다. 가족사로 사회의 폭력성을 은유했던 카프카적인 해석인 셈이다.

그의 시 때문에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 아버지···X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극단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뱉는 욕설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중간에 끊어 줘야 되는데... 아버지한테 굉장히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야 많지. 겨울날 살얼음 낀 웅덩이의 물도, 추운 날 수족관 속 도다리도 상처라면 상처지”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불가피성, 원죄에 대한 상처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잉크 삼아 시 한 줄 쓰는 시인의 결벽증이 엿보이는 해석이다. 우리가 갓 핀 미나리를 보면 저걸 솎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상처, “결국 생명을 해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상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는 “육식과 초식은 오십보백보”라며 “나는 광합성이 제일 좋아”라며 웃었다. 그가 본 상처의 근원은 보들레르가 말하듯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도 있지만, 스스로 미성숙해 일어나는 상처, 자기 상처보다 남에게 저지른 상처를 기억하는 자기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그의 시 세계는 원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뒹구는 돌’)->어머니(‘남해 금산’)->당신(‘그 여름의 끝’)->가족(‘호랑가시나무의 기억’)->사물(‘아, 입이 없는 것들’)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초기의 격동은 가라앉고, 성찰적 그리고 영성적 태도로 사물을 쓰다듬는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선 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마저 연민의 대상이 된다.(‘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그럼에도 근원적 고통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다. 문학적 창작의 고통이다. 문학은 시체공시실의 시체를 덮은 시트를 벗겨 보는 것이다.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러나 벗겨 볼 수밖에 없어. 내 눈알이 휙 돌아가더라도...”라고 했다. 상처는 감각의 깊이지, 상처의 중량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탐낼 수 없던 예수의 상처처럼, 그 상처를 기억하고, 껴안고, 곱씹는 것이 오히려 상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받는다. ‘뒹구는 돌’에서 그는 “상처는 ‘살아 있음’의 동의어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후기를 적었다.

논어 등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시인이 최근 종교적인 성찰에 기대는 것도 상처를 껴안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과정은 아닐까. 아직 미발표된 시를 기자에게 음송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퍽 편안해 보였다. 손바닥만 하던 히터의 열기가 그제야 온 방을 가득 채웠다.(김중기 기자)        

07. 01. 22.

P.S.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던 듯하다. 한 독서대학에서 강의도 한 적이 있다(한데, 강의자료를 읽을 만한 글로 만든다는 계획은 몇 년째 창고에서 자고 있다). 개인적인 안면은 없지만, 언젠가 문학강연을 들은 적은 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읽어둔 탓에 기사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체공시실'에 대한 비유는 다행히 처음 본다. 시가 씌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을 토로하던 시인에겐 '잔혹한' 주문이 되겠지만, 그의 새 시집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상처와 물집 이후의 '시적 존재론'은 어디까지 이르게 되는지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참고로 시인의 '어머니론'을 덧붙여둔다. '어머니'는 이성복 시의 비밀 중 하나이다.  

주간동아(05. 02. 08) "한평생 자기희생의 삶 나에겐 언제나 완벽한 분”

시인 이성복 교수(계명대 문예창작과)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집 전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치밀한 계획 하에 잘 계산되고 제어된 풍경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해 여름의 끝’ 등 지금도 꾸준하게 읽히는 그의 시집들은 장인이 빚은 작품처럼 완결성을 갖췄다. 이성복은 스스로를 ‘1등을 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완벽한 글이 아니라면 내 이름표를 달아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선두에 서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제가 그래요. 근데 다행인 건 밖으로 드러내며 딴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음성치질처럼 안으로 끙끙대는 편이란 거죠.(웃음) 이건 제게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벽이기도 했어요. 이런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학교는 문턱조차 넘어본 적 없는 어머니는 열여덟 살 나이에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시집왔다. 그러나 2남3녀를 낳아 기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교수가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병을 앓아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으나 어머니는 꿋꿋하게 외풍을 막아내며 자식들을 챙겼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다섯 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에 서울 유학을 가겠다며 울며 보채는 이 교수를 말없이 지원해준 이도 어머니였다.

“5학년 때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했어요. 서울 아이들의 새하얀 교복 칼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에서 삯바느질하며 고생하는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장원 못 하면 고향에 못 내려간다’는 ‘앵벌이’식 산문을 써서 억지로 장원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표정 변화 없이 ‘잘했다’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올해 여든아홉이 된 그의 어머니는 거동은 불편해도 기억력은 이 교수보다 정확할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하다. 어머니는 대학에 간 손녀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연애 안 해보면 시집도 못 간다”는 말로 손녀딸을 꾹꾹 찔러 결국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한 여든일곱의 아버지를 홀로 수발하는 어머니 소원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 떠나지 않는 것. 이 교수는 “아버지는 어머니 기억 위에 사시는 분”이라 말한다.

이 교수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30대의 젊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언젠가 닥칠 어머니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젊은 아들은 그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쉰을 넘긴 아들은 어머니를 생로병사의 인생 과정에 선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루고 머물다 파괴되고 텅 비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 앞에 어머니가 있고 그 뒤를 아들이 걷는다. 그래서 더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다.

“지금도 제사 때마다 조상에게 ‘우리 아들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제게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희생으로 아들을 위하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원경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어머니도 풍화해가고 있음을 사진 찍듯 시를 통해 이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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