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석궁 테러 뉴스를 접하고 생각난 단편 하나...

 

 

 

 

 

현직 판사를 겨냥한 석궁 테러 뉴스가 어제 처음 나왔을 때에는 피의자 이름을 밝혀두지 않았는데, 이제는 실명은 물론이고 유치장에 수감된 사진까지 몽땅 공개되었으니 좀 당혹스럽다. 연예인의 경우에는 뻑하면 A군, B양, C씨라는 이니셜로 지칭되어 네티즌들의 "알아맞추기" 놀이를 유도하면서 이번에는 어째 그랬을까? 정확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법에 호소했지만 억울함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는 저자 스스로가 요청한 것일 수도 있겠다. 본래 대학 교수였던 저자의 해직 배경이나 이후의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법 앞의 개인"이라는, 마치 카프카의 단편소설과도 비슷한 상황이 그려진다. 나야 그 교수가 누구인지, 그 판사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함부로 가타부타 할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법 앞의 개인"이 느낄 수밖에 없는 막막함과 위화감 같은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뉴스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자 생각난 단편소설이 하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추리/첩보 소설가인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유일한 단편집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No Combacks)에 수록된 "면책특권"(Previlege)이라는 작품이다.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싫은 분은 읽지 마시라.)

  • 주인공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업가인데, 어느날 한 신문에서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풍문을 사실인 양 기사화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그는 변호사와 만나 명예훼손 소송을 논의하지만, 변호사는 명예훼손 소송이란 긴 시간과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어 결국 개인을 파산으로 몰고 가게 마련이므로, 명예를 건지기 위해 인생을 망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주인공을 설득한다. 주인공 역시 이에 동감하여, 직접 신문사를 찾아가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지만 결국 거절당한다. 화가 난 주인공은 관련 법률을 찾아보다가, 영국 법정에서는 피고인에게 무슨 말을 해도 되는 "면책특권"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얼마 뒤, 주인공은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의 집을 찾아가고, "변호사와 이야기하라"는 퉁명스러운 기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의 콧잔등을 주먹으로 갈긴 다음,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이 문제를 그냥 무마해 버리려 하지만, 주인공은 고집을 부려 결국 폭행 사건에 대한 재판이 성사되게 만든다. 재판 직전에 누군가가 런던의 주요 신문사에 이 재판에 관한 정보를 흘리고, 재판 당일에 법정에는 신문기자들이 대거 몰려든다. 주인공은 변호사 없이 본인이 변론을 하겠다고 요청하고, 재판이 진행되어 피해자인 그 기자가 증언을 해야 하는 차례가 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한다. 그로 인해 기자는 증언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도로 내려가고, 피고는 "피고인은 어떠한 말을 해도 용납된다"는 "면책특권"을 십분 활용하여, 그 기자가 쓴 기사는 거짓이었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자신이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기자를 찾아가서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욱 하는 심정에서 폭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판사 역시 주인공의 처지를 십분 공감하는 한편, 그래도 폭행은 잘못이므로 "150파운드"의 벌금은 선고하는 것으로 재판은 끝나 버린다.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수만 파운드에 달하는 소송 비용 대신에 겨우 수백 파운드만 들여서 명예훼손을 당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 기사 내용도 사실이 아님을 증명했으며, 여러 신문사에서 기사화가 될 테니 만약 상대방이 상고해도 훨씬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으며, 재판 내내 검사 측은 한 마디도 못 하게 만든 "면책 특권"을 톡톡이 이용한 셈이었다. 재판을 끝내고 나오는 도중에 분노에 사로잡힌 기자가 그를 붙잡고 "네가 뭔데 나에 대해 그따위로 이야기하느냐?"고 으르렁거리자, 주인공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받아친다. "왜, 당신도 그랬잖소?"

물론 어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석궁 테러"는 물론 이와 상황이 다르겠지만, 나로선 위에 소개한 단편소설과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여차 하다간 사람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흉기를 들이밀기보다는, 차라리 위의 작품에 소개된 주인공처럼 철저한 계획을 세워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이끌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그래, 솔직히 어차피 사람 죽일 생각이 없고, 이렇게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가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석궁보다는 주먹질이 더 낫지 않느냐 이거다. 아니면 그냥 따귀나 한 대 치고 말든가.) 물론 그런 일이 "소설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차라리 그냥 실랑이를 하다가 주먹질을 했다면 과실일 수 있으니 정상참작이 된다 치더라도, 이건 무슨 빌헬름 텔도 아닌데 석궁을 들고 기다렸다니... 아무래도 피의자 본인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아닌 듯하다. 피의자는 전직 수학교수였다고 하는데, 그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그런 문제에 대한 고려가 어째서 들어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만큼 절박하고도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법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처럼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폭력을 쓴 것까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말해 "오죽 억울했으면 그런 황당한 짓까지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역시 얼마 전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아파서 죽는다고 신음하는 환자의 고통은 외면한 채 고압적인 자세로 틱틱거리기만 하던 새파란 의사란 놈을 보면서 몇 번이나 멱살을 틀어쥐고 싶었으니까.(솔직히 그 놈 보고 집에 와서 <하우스> 드라마를 보니, 이제는 "싸가지는 요만큼도 없는 주인공" 천재 의사 하우스보다도, 그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의사의 마약 관련 불법행위를 뒷조사해 법정에 세우려는 "악역" 트리터가 오히려 더 공감이 갔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테러나 린치 같은 "사적 처벌"에 호소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이야기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정의파 경찰이나 판사는 아무래도 공감이 안 가지만, 악덕 경찰이나 판사는 공감이 가는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이 아닐까.(실제로 잘못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므로.)

물론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남에게 폭력까지 쓴다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법 앞의 개인"이 느끼는 막막함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봐야 하니 문제다. 아무리 법치국가라고 하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법대로" 한다고는 하지만, 개인이라는 존재는 법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교수 정도 되면 나름대로는 서민 아닌 특권층 취급을 받는 사회에서, 전직 교수 출신의 한 개인이 법 앞에 석궁을 들이댔다는 것, 그건 어쩌면 "법 앞의 개인"이 느끼는 막막함을 처절하게 반증해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단편집 No Comebacks 는 정말 "주옥 같은" 작품들이 늘어선 책이다.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There are No Snakes in Ireland),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No Comebacks), "협박"(Money with Menaces) 등은 포사이스 특유의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는 걸작이고, "황제"(The Emperor)는 감히 "<노인과 바다>에 맞먹는 걸작"이라고 단언할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한동현 옮김, 예전사, 1983), <올 수없는 사랑>(김정숙 옮김, 삼진기획, 1988)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번역본이 나왔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인 저자의 말빨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나중에 큰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면책 특권>인가 하는 책도 지금은 절판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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