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60) : 섬뜩해서 다 못 읽은 책...

지난 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신작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에 대한 듀나의 서평을 읽자마자 문득 머리에 떠오른 책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번역 출간된 (원서는 2002년) 그레그 캠벨의 <다이아몬드 잔혹사>(김승욱 옮김, 이마고)다.(영어 제목은 Blood Diamonds 라서 혹시 영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나 찾아보았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나오면서부터 언제부턴가 "잔혹사"라는 말은 일종의 코믹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는데, (물론 그 오리지널(?)인듯한 <이조여인잔혹사>인가 하는 영화는 꼭 그렇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여기 나오는 "잔혹사"는 일종의 코믹한 뉘앙스를 전달하는 뜻으로 어림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여기 나오는 내용은 정말 "잔혹한 역사"였다. 책을 딱 펴자마자, 1996년에 다이아몬드 생산의 전초지인 시에라리온 코이두에 살던 이스마엘 달라미라는 사람이 반군에게 붙잡혀 "도끼에 두 손을 잃는" 장면을 아래처럼 생생하게(으윽!) 묘사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나 심신 허약자는 읽지 마시라.) :
- AK-47 총신이 그의 왼쪽 관자놀이를 눌렀다. 달라미는 바로 조금 전, 아들이 만들어준 반지를 뺐던 가운뎃손가락에 난 반지자국을 보았다. 손으로 만든 도끼날에 순간적으로 햇빛이 반짝였고, 달라미는 도끼날이 내려올 것을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도끼가 손목 바로 위의 뼈를 내리쳤다. 단 한 번의 도끼질로 손목은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희생자들의 신체를 절단할 때 아무렇게나 십여차례 도끼를 내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툭툭 튀면서 그루터기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햇빛을 본 척골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반군들은 그의 나머지 손도 잘라낸 모양이지만, 달라미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19쪽)
솔직히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속이 확 울렁거렸다. 뭐, 매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데드 얼라이브>를 집사람과 깔깔거리며 본 이래, 이제 웬만한 피칠갑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꽥, 제목도 뭔가 좀 웃기게 보이는 책 한 권을 펼쳐들자마자 카운터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결국 책을 더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고어 영화를 볼 경우에는 "아니, 이건 현실이 아니야. 눈속임이야, 특수효과라구. 실감은 나지만, 이 영화 찍으면서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걸" 하고 일종의 자기암시를 계속 걸어대는 반면, 이 책에 나온 "손 자르는 대목"은 그야말로 현실, 그것도 지금까지 계속되는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듀나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이중적인 측면(액션영화이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을 지적했는데, 하여간에 다이아몬드 자체의 그런 이중적인 측면에 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내 경우야 동네 악세사리점에서 7만 5천 원에 두 개짜리 14k 반지를 사서 결혼반지로 대신한 인간이니 (게다가 나중에 술 처먹고 길에 자빠져 자다가 결국 그나마도 잃어버린 다음부터는 반지 없이 돌아다니는 인간이니) 그쪽과는 거리가 영 멀다고 쳐도, 이 세상에서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드비어스의 거창한 문구에 혹해 그 "피투성이 돌멩이"를 비싼 값에 구입할 순진한(어쩌면 멍청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몇 가지 생각 :
- 어지간히 잔혹하겠지 싶어서 안 보려고 했는데, 영화에 제니퍼 코넬리도 나온단다. 와와... 아마폴라... 그리하여 이 영화, 봐야 되나 안 봐야 되나, 고민중.
- 근데 "드비어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왜 이리 반가운 생각이 드나 했더니, 내가 좋아하던 노래, Just Tell Me You Love Me 가 한때 드비어스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그리고 내 기억엔 그때 여자 모델도 꽤나 호감이 갔던 듯... 아니야, 아니, 그건 모두 환상일 뿐이야, 블러드 다이아몬드, 블러드 다이아몬드, 블러드...)
- 이건 인종차별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인데,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그런 "만행"(말 그대로 "야만적인 행동")을 보면 그건 일종의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유럽이나 우리나라처럼 겉으로는 "산업화"된 문명국을 자처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싸움이 크게 벌어져도 남의 손목을 뭉텅뭉텅 자르는 일은 없을 테니까.(물론 오늘 뉴스에 나온 것처럼 석궁을 쏘기는 할 망정.) 이건 꽤 오래 전에 데이비드 카플란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한 생각인데, 이른바 "산업화"나 "서구화"가 그런 식의 "만행"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제공한다면, 나로선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쉽게 말해서 나 같으면 혼자 길을 걷다가 노상강도를 당하기 일쑤고, 매번 출입국 할 때마다 관리에게 뇌물을 먹여야 하는 어느 아프리카 국가의 사회보다는, 차라리 지금 우리나라가 좀 더 마음에 든다는 거다. 물론 단순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이쪽은 비록 겉치레일망정 어느 정도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풍요한 미국보다는 가난한 라다크가 더 낫다"고들 주장하는데,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은 라다크보다는 차라리 미국이 더 살기 편하지 않을까 싶다.(어느 사회에나 부적응자는 있는 법이므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이나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인권탄압이나 테러가 전혀 없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프리모 레비의 말마따나 홀로코스트처럼 "독일인들 특유의 정확성이 빚어낸 만행"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느 나라는 가스실을 만들고, 어느 나라는 손목을 잘라버리는 등 "만행"에 있어서도 일종의 문화적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다만 나로선 둘 중 어느 쪽이 더 "야만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교양 있는 척 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수만 명 단위로 태워죽인 독일인과, 그야말로 "단순무식"하게 무고한 사람들을 수백 명 단위로 난도질하는 아프리카인 중 어느 누가 진정한 "야만인"인지는 말이다.(하긴 고대 중국에서도 공자의 제자 자로가 내전에 휘말려 사망한 후, 그의 원수가 그 살을 저며 젓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었지. 그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이후 평생 젓갈을 먹지 않았다나... 지금도 가끔 오징어 젓갈 먹을 때마다 내가 집사람에게 해 주는 이야기... 으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