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짙은 안개와 미세먼지로 종일 시야가 답답했던 것과달리 오늘은 공기는 차갑지만 하늘이 깨끗했다. 그 하늘 아래, 교직원회관에서 도서관 건물 앞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무궁화나무들 사이 유일하게 한 그루의 목련나무가 있었다. 지난 학기에 출강하면서 그는 매주 목련나무 사진을 찍었다. 까맣게 달린 닭의볏 같은 열매에서 가을이면 씨가 맺히는 게 신기했고, 일주일에한 번 오는 학교에서 시간의 변화를 나무만큼 잘 보여주는 게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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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는 숨을 골랐다. 종소는 어디서 혼자 자신의 일부를 다시만들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기차 시간이 가까운데도, 옆에 어머니가 없는데도 더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잘 듣고 싶었다.
종소는 무학로교회에 갔다가 문화로를 따라 걷다 현선배가 재직한 대학까지 가게 됐는데 교정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빽빽한 소나무 숲과 비어 있는 벤치 두 개를 보았다고 했다. 거기에 앉아 있었다고. 가끔 솔방울이 툭 떨어지는 소리, 까치 까마귀 참새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어머니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고,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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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손님 앞에 쭈그려앉았다. 세 사람이 있기에 화장실은 주았다. 카페를 리모델링할 때 신경을 가장 많이 쓴 데가 화장실이었다. 남녀 공용이지만 칸을 두 개로 구분하고 손 세정제, 종이 타월, 방향제, 면봉과 머리빗까지 비치했고 틈틈이 들어가 세면대의물기를 닦았다. 가능한 한 자신이 다른 카페에 갔을 때 사용하고싶을 만한 화장실처럼 만들려고. 문에 관해 생각한 적은 한 번도없었다. 누군가 문을 밀 때, 같은 순간 안에서 문을 당기는 사람이있어 다칠 위험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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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 검은 개 이야기를 한 얼마 후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못한 이야기를 그애에게 했다. 책에 있는 가름끈,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고. 그러면서 나는 아마 피식 웃었을 것이다. 실은 진지한 소리로 되받았다. 이모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가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책을 펼치면 책 표지나 헤드밴드 색깔에 따라서 노란색 파란색 갈색 붉은색 검은색의 가름끈이 길게, 혹은 휘어진 채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데 어느 때는 가느다란 실뱀처럼, 어느 때는 올가미, 어느 때는 밧줄 같아 보였고, 내가 이성적으로 호흡을 고르지 못할때는 그 가느다란 가름끈이 나에게 달려들어 목을 옥죌 것만 같았다. 전공서를 포함해 가진 책들의 모든 가름끈을 가위로 싹둑 잘랐고 새 책이 배송돼 와도 우선 가름끈부터 자르고 봤다. 그런데도 책을 펼칠 때마다 가름끈들은 어디선가 불쑥불쑥 예기치 않게나타나곤 했다. 이모, 가름끈이 없는 책들도 있잖아. 나는 고개를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라고 헛되이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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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불을, 그뒤에는 집에 있는 다른 것들을 내다버렸다.
일기장들과 친구들의 절교 편지를, 아버지가 고모가 사는 캐나다로 떠나버렸을 때는 밥그릇을. 그와 헤어졌을 때는 사진들을, 쓰다만 글들을.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나 자신을 버리려 여기에온 적이 있었다. 복개되었으나 내 눈에는 여전히 더러운 물이 태평스럽게 넘치도록 흐르는 듯 보여, 나의 허물과 실패를 얼마든지버리고 묻어버릴 수 있는 출생의 장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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