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일이 끝나 저물어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나는 돌아갈 뿐이다.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샛강 바닥 썩은 물에달이 뜨는구나우리가 저와 같아서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몸에는 언제나 기생충이 있었다. 기생충을없애기 위해 셔츠 안쪽, 배꼽 근처에 마늘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꿰매줬다. 겨울에는 귀마개로 솜을 썼다. 프루스트나 모리아크를 읽으면, 그들이 내 아버지가 어릴 때, 그때 그 시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과비교하면 아버지가 살던 시절은 중세 시대나 다름없다.
옳은 사람은 싸울 필요가 없다. 훼방꾼의 손을 들어주고도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관찰해보라. 상대는 불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그래? 뭐 잘못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