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종교와 세속적 권위를 무시하는 잔치를 라파예트가 의도적으로조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를 열정적으로기렸다. 적어도 행사장에서는 그 현상이 두드러졌고, 그래서 미라보 백작 같은 사람은 왕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내다보았다. 그러나 좀더 자유로운 성향의 ‘민주파‘는 다른 차원에서 걱정을 했다. 그들이 보기에 전국연맹제의 주역은 왕이나 라파예트였지 국민은 아니었다. 행사장에서 울려 퍼지는 "왕만세!", "라파예트 만세!"가 "국민 만세!"를 압도하지 않았던가.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행사장에서 퍼져나가는 소리를 퐁뇌프 다리에서 들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 만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국연맹제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전국이 자발적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으며, 진정한 의미의 국민혁명이었다고. 그것은 혁명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훗날 프랑스가 입헌군주국을 거쳐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으로 가는 출발점이며, 파리의 주도권을 부정하면서 파리가 프랑스의 83분의 1에 해당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지방을 ‘연방주의‘로 공격할 명분이 되었다.
<4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