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평점 :
"일제가 말과 글까지 빼앗으려고 한 저의는 분명하다. 한국을 대륙에 붙은, 일제를 향해 뻗은 팔뚝으로 보아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 하나 전쟁이 발발하자 그들은 조선 땅을 넘보기 시작했다. 조선인 전체를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과 글을 지배할 필요가 있었다. ......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그러니 언어를 지배함으로써 사고방식까지 조작할 수 있다는 속셈이었던 게다."(p.101)
올해 초 작고하신 이어령 님의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 "너 어디로 가니"를 읽었다.
여기서 "너"는 한국, 한국인이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누구나 옛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기란 어려운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옛날 옛적에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데...로 시작하는 끝없이 이어지던 꼬부랑 이야기처럼 굽이굽이 근현대사를 되짚어 저자가 들려주는 우리의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는 식민지 시절을 관통하며 그 전후의 한국인 이야기를 꼬부랑 이야기 열두 고개에 담아 들려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트라우마, 이 부정의 기억을 떨치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이야기한다.
이야기 열두 고개는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천자문 고개, 학교 고개, 한국말 고개, 히노마루 고개, 국토 고개, 식민지 고개, 놀이 고개, 단추 고개, 파랑새 고개, 아버지 고개, 장독대 고개, 이야기 고개가 그것이다.
각 챕터의 제목만으로는 짐작이 될 듯 말 듯 한 이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글자(특히 한자)로 들여다본 어린 시절, 학교와 란도셀 이야기 그리고 "국민학교", 식민지 교육과 교실 풍경, 일장기, 그리고 우리의 국토, 군가로 교육으로 언어로 한국인을 세뇌하고 말살하려던 식민지 시절, 유년의 놀이 체험, 제복, 파랑새 이야기, 우리들의 아버지 등등이 나온다.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천자문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어릴 적 나도 배우고 외우며 이 글자들의 조합은 '아무 말'인가했던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말미에 더 자세히 왜 천자문에서는 하늘을 검다고 했을까에 대하여 풀이해 준다. 무척 흥미로웠고 말 한마디, 우리의 생각이 담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새겨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와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의 시대를 떠올려 보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교육을 받고 해방을 맞이하고 전쟁을 겪으며 살았던 조부모님 세대와 해방 즈음 태어나 유년 시절 전쟁을 겪으며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했던 부모님 세대, 그리고 개발과 발전 한복판에서 한편으로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이념 갈등 등을 겪으며 살아온 우리 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망과 저항과 도전의 세월을 느끼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전 4권이라고 한다. 너 어디에서 왔니, 너 누구니, 너 어떻게 살래 그리고 이 책 너 어디로 가니이다. 앞의 책들을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다 읽어보고 싶다. 주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너 어디로 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