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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 :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하여 ㅣ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힘들어 죽겠다, 웃겨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좋아 죽겠다... 이런 말. 좋은 일을 두고도 뒤에 붙이는 뭣뭣해서 죽겠다는 말과 같은 표현을 돌아가신 나의 외조부께서는 일평생 하지 않으셨었다. 내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몇몇가지 신념을 갖고 계셨고 사는 내내 내가 이것만은 지켜야지 하는 것들을 지키고 사셨는데 '이것만은 해야지'도 있었지만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도 있었더랬다. 그 중의 한가지가 말을 삼가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뭣뭣해서 죽겠다와 같은 말씀은 하지 않으려고 하셨던 것이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님의 인문 에세이 4부작 중 완결판 격인 <<승화>>를 읽다보니 문득 외할아버지의 일화가 떠올라 적어보았다. 이 책 속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나에게 간절한 당부를 할 때 변화가 찾아오는데 '무엇을 하기'보다 '안 하기'를 부탁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며 매일 아침 무엇무엇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요즘 매일 아침 오늘은 이것만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매일 얼굴 맞대며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들어있는 말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다보면 잘 지켜지지 않지만 그래도 늘 염두에 두게 되었고 이것이 잘 지켜지는 날에 나에게 변화가 찾아오며 조금은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겠거니.
저자는 만족할 만한 자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시골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매일 걷고 묵상하며 시차를 두고 네 권의 책들을 펴냈는데 심연, 수련, 정적 그리고 이번에 낸 책이 승화라 한다. 원래 승화란 고체가 열에 의해 기체가 되거나, 기체가 고체가 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책에서 얘기하는 승화란, 사람이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여 어떤 경지에 다달았다고 느꼈을 때 자만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만을 반성하며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런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의 띠지에 당신은 흠모할 수 있는 자신으로 살고 있습니까. 라고 쓰여 있다. 나는 사실 이 전의 세 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고 이 책만 보았는데 띠지에 적힌 그 구절 때문에 마음이 끌려 읽은 책이었다. 내 자신이 흠모할 수 있는 자신으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 사느라 바빠서 그렇다는 핑계로 흠모할 만한 자신으로 살려는 생각조차 나는 안해 본 것 같은데...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옳은 쪽으로 성장해 가는 삶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을 스물여덟 개의 단어에 대한 글로 쓰고 있다. 유언, 공허, 고통, 양심, 전정, 내면, 의미, 걸음, 기억, 도야, 일념, 취미, 검역, 신중, 간절, 생성, 희생, 내재, 안내, 자기문화, 구별, 각성, 모험, 변모, 지고, 변화, 미지, 광휘. 이 중에는 평소 빈번하게 쓰지 않는 단어도 있고 자주 쓰는 단어도 있는데 모두 저자의 사색과 경험에서 스스로를 향한 당부의 글이다. 매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정성스럽게 살려는 마음을 갖고 언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저자를 보고 있자니 나의 매무새도 고치게 되고 언행을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덩달아 단정하고 사려깊은 삶을 지향하는 마음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조지 버나스 쇼) 내가 바라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오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라고 묻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늘 물으며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p.157 만일 나를 과거의 나로, 구태의연한 나로 되돌리려는 전염병과 같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소멸시켜야 한다. 이 기간은 나를 깊이 바라보는 관찰의 시간인 동시에 나를 소멸시키는 수련의 시간이다. 당신은 40일간 자신 스스로를 검역할 의지가 있는가?
p.96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배우는 데는 걷기만한 게 없다. 하지만 혼자 터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