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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p.416)
소설가 신경숙님의 새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살아냈어야"는 아버지의 삶이 다 끝난 게 아닌데도 마무리를 짓는 느낌의 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삶이 너희들(자녀들) 덕분에 행복했다,거나 고단했지만 보람있었다,거나 돌아보니 다 고마운 일들이었다,거나 덕분에 이러이러하게 살았구나,가 아니고 "살아냈다"고 말하고 있다.
살았다와 살아냈다의 차이가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낸" 어느 아버지의 일생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화자인 작중 아버지의 넷째(나)의 기억과 시선을 통해서, 큰오빠의 편지와 대사를 통해서, 둘째오빠의 증언에 따라서, 셋째오빠, 여동생 등의 전화통화와 대화들 속에서, 어머니의 회상으로, 막내 동생의 말을 통해 그리고 아버지 자신의 (편지를 통한) 언급으로 한 아버지의 일생을 이야기해 주고있다.
어디엔가는 있음직한, 있을법한, 이렇게 산 사람을 본 적이 없지만 마치 본 듯한 그런 느낌을 받으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아버지"에게는, 아니 이 글의 시점인, 아버지의 자녀 중 하나인, "나"는 아버지의 넷째이자 큰딸이고 작가이며 몇년 전 사고로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나"에게는 오빠가 셋이 있고 바로 아래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있다.
모두 출가하여 따로 살아가고 있고 아버지는 J시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위암 발병과 수술로 어머니께서 서울에 가 계시게 되자 홀로 남으신 아버지 곁으로 "나"는 찾아간다. 아버지와 단 둘이 보내게 된 얼마간의 시간동안 "나"는 자신의 현재의 시점에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식으로, 가족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듣는 형식으로, 여럿의 회상과 편지 그리고 주변인들의 관계와 증언을 통해서 아버지를 알게 된다.
이 소설은 겨우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독재정권 속에서 살아온 이 책 속의 아버지를 통해 이 세상 수많은 익명의 아버지들을 돌아보게, 들여다보게 해 준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은 듯이 쓰고 있어서 마치 이런 사람이 정말 있는 듯이 생생하게 느끼며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담담한데 모든 기억과 말들이 처연하고 슬퍼서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아팠다.
이 작가님은 시선과 표정과 말과 행동들을 슬픈 느낌이 나도록 글로 옮기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내 아버지 뿐만 아니라 고개만 돌리면 어디에나 보이는 수많은 아버지들을 한 인간으로, 하나의 삶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누구의 삶인들 고단함이 없었겠는지..
나의 아버지도 계속해서 떠올려보았다. 나는 한번도 아직까지 아버지라 불러본 적 없는 우리 아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 엄마 뿐 아니라 꼭 아빠하고도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해보았다. 아빠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아빠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하는 내가, 아빠 그리고 엄마께 누구보다도 잘 해야 마땅한 내가 더 잘하자 하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래서, 살아내신 게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기쁘고 행복했다고 말씀하시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인 내 남편과 언젠가는 아버지가 될 아들들의 순간순간도 기쁨과 보람이 깃들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모두 인정과 존중과 돌봄이 필요한 것 같다. 아버지들은 주로 인정과 존중과 돌봄을 주어야 하는 입장일 때가 많아서 정작 자신을 돌볼 겨를도 인정받을 대상도 없이 외롭고, 외롭지만 외로운 줄 모르는 삶을 살고들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라도 그 수고에 대한 인정, 살아낸 삶을 향한 존경, 나이들며 약해져갈 때에야 비로소 하게 되는 몸과 마음을 위한 돌봄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늘 돌보는 그런 관계가 필요할 것 같다.
당신들의 희생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고 외로워도 외로운 줄도 모르는 수많은 아버지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