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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요한계시록 1 쾌도난마 요한계시록 1
송태근 지음 / 지혜의샘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한계시록 강해서에 난데없는 '쾌도난마'는 뭘까 하며 책을 펼쳐 들었는데

읽어갈수록 정말 그 표현이 절묘하구나 싶었다.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는 의미의 쾌도난마.

 

 

 

이전까지 내게 요한계시록은 왠지 모르게 어렵고 난해하며 때때론 무섭기까지 했던 말씀이었다.

그런데 송태근 목사님의 강해서를 읽다보니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벅찬 감동과 은혜에 마음이 젖어드는 것만 같았다.

책 읽는 내내 하나님의 말씀이 이토록 오묘하며 달콤했는데 ..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책 표지엔 이런 소개글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결코 무서운 책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들끓는 사랑의 기다림을 가득 담고 있는

희망의 연애편지이다. 라고.

 

 

내 블로그 제목은 Love letter, 즉

 연애편지다.

하나님 말씀을 담은 성경이 바로 그 연애편지라고 여겨져서,

우리를 얼만큼 사랑하시는지에 대해 쓰여진 말씀이라는 고백에서,

그리고 믿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편지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그러한 마음으로 그러한 글을 적어보겠다며 블로그 제목을 그렇게 정했었다.

제목은 거창했으나 블로그 포스팅 내용은 사뭇 달라 부끄럽지만. --;;

 

 

 

아무튼 그러한데...

요한계시록이, 아니 요한계시록도 연애편지라구?

설마.. 요한계시록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었담...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아아 정말 마음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큰 위로를, 이렇게 확고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던 것이었구나...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 :3

첫장을 여는 순간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그간의 나의 안일함을 회개했다.

더 적극적으로 전해야했어.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만 해... 하는.

 

 

 

책은 요한계시록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가 이번에 읽은 건 1권이었다.

2권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다음 말씀이 궁금해 덮을 수가 없게 잘 쓰여져 있다, 이 책.

 

 

 

 1권은 32파트로 나누어 요한계시록 1장부터 9장까지의 말씀을 풀어가는데

각 챕터의 제목은 주제어 혹은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일단 그 제목만으로도 주위가 환기되는 기분이든다.

그리고 읽어가는 동안 베일에 가려진 뭔가를 걷어내는 그런 느낌.

 

그래서 야고보서의 말씀 (약 1 : 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시는 말씀에도 기꺼이 기쁜 맘으로 결단하고 동참하게 이끈다.

이런 용기 있는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힘, 즉 약속된 왕의 재림이 있기 때문임을

이 책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더불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챕터의 마무리는 더 깊은 묵상과 적용이라는 코너를 두어

질문을 세가지 정도 적어 다시한번 되짚어보고 묵상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한번씩 더 생각해보며 말씀을 되새겨 볼 수 있어 그것도 좋았다.

 

 

 

이 책은 요한계시록을 두렵고 어렵게만 여겼던 사람들과

말씀을 전하는 분들, 일반 성도들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하나님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며 깊은 은혜를 누릴 수 있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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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파괴자 -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관계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랜디 건서 지음, 장호연 옮김 / 한문화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때까지만 해도 "관계파괴자"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나" 일 리는 결코 없는,

다만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그들을 이해해 보겠노라는

상당히 말도 안되는 오만한 착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러나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이럴수가... 이거 내 얘기잖아.

 

 

 

관계 파괴자 라고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이득만 챙기고,

누가 봐도 좋지 못한 행동으로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나쁜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관계 파괴자는 선의를 갖고 있지만

종종 자기도 모르게 미묘한 행동을 저질러 관계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관계 파괴자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러 상대방이 떠났는지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다시 시작해도 파괴적인 행동을 똑같이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본문 인용)

 

 

바로 그랬던 것이다.

의도한 적 없고 따로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서서히 관계가 멀어지거나 소원해지는 경우

그게 서로 잘 맞지 않아서인 것도 있겠으나,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파괴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나일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또 다른 상대를 만났을때에도 그와 같은 관계를 반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이런 류의 다른 책들에 비해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심지어 그냥 읽어가기만 해도

스스로의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으며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에 대해서까지도 배울수가 있다.

나 자신이 관계파괴자임을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그런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그럴리가 없어. 아니 내가 왜 ...

 

그러나 부인해도 틀림없이 그런 성향들이 조금씩은 내게도 있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그 원인과 문제점을 깨닫게 되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마저 싹텄다. --;

 

 

 

책의 저자 랜디 건서는 이 책을 통해 관계를 망가뜨리는 대표적인 10가지 행동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그 안에 포함이 되는가 아닌가 하는 걸 쉽게 진단해 볼만한 질문 몇가지와 함께.

 

그렇게 10가지 유형들을 살펴보며 타인에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음을,

바로 나 자신에게도 그러한 성향의 일부가 조금씩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즈음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7단계로 소개해준다.

 

그리고 그 다음장에서 다시 그 열가지 유형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하고, 진단하고,

회복하는데에 도움이 될만한 연습법까지 친절하게 적고 있다.

 

맨 뒷장엔 그 외 궁금히 여길만한 질문들과 함께 그에 대한 대답이 실려 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의 느낌은...

 

이해심 많고 따뜻한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해해주고 허용해주며

비난하지 않은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그런 기분.

 

자신을 들여다보기에도 적절하고 타인을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내용.

 

보다 나은 관계를,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되는 책.

 

제목때문에 오해할까봐 선물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이 책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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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6년 공부습관, 중고6년 좌우한다
김수정 지음 / 문예춘추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어떤 조급증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론적으로도 아이의 발달 단계며 교육과정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음에도

아이가 남들보다 빨리 글을 읽히고, 자기 이름 석자를 남들보다 빨리 쓸 줄 알며 잘한다고 칭찬받는 걸 보면

대견하고, 고맙고, 으쓱하면서도 거기서부터 더 많은 조급증이 일었다.

"이 정도로는 안돼. 이래 가지고 언제...?" 이런 마음...

 

 

그러다보니 아이의 현재 처지와 기분, 능력과 상관없이

칭찬보다는 요구와 권유가 (아이가 느끼기엔 명령과 강요였을지도)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아. 이건 아닌데... 이래봤자 아이는 현재 별로 행복하지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 마음을 더 읽어주며 내가 좀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먹기 시작했었다.

대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생각으로 좀 느려도 차근차근 좋은 습관을 갖게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는 사실.

 

 

 

나는 선행학습을 반대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릴땐 잘 놀아야 한다며 남들 다 보낸다는 어린이집이며 유치원에도 안보낸 채

내가 노래 불러주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같이 부비대며 뒹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교라는 곳에 입학함과 동시에 12년에서부터 한20년은 꼬박 다니며 공부해야 하는 게 보통일텐데

그걸 뭐 구태여 내가 직장 다니는 사람도 아니면서 아이를 그 어린 나이부터 기관에 보내나 안쓰러워 그랬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제법 자란 아이 손을 잡고 대낮에 돌아다니면

우릴 만나는 남녀노소 모두가 한결같이 물어보거나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인데도 야단을 하기도 한다.

 

 

"왜 어린이집 안보냈어요?"

"요즘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얼마나 열심인데 ...

아이에게 아무것도 안가르치고 내버려두는거에요?"

"아이가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그건 맞다 -_-+ )

"아이에게도 친구가 필요해요." (그건 그렇지.. --;)

"좀 나다니며 사회 생활도 시작해야지~ 그렇게 엄마하고만 붙어 지내서야 어디 되겠어?"

.

.

.

그러다보니 꿋꿋하게 내 소신을 지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더러

과연 내 소신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지는 게 현실. ㅠㅠ

 

 

 

그 뿐 아니라 내 아이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게 또한 엄연한 현실.

실컷(?) 놀게 해 주고 드디어 학교에 보내 놓았더니

 뭐 따로 학원을 보내지도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 하는 것 좀 봐주고

꾸준히 책 읽게 하고 가끔 독후감이나  일기를 매일 쓰거나

피아노 연습 시키고 한자 몇글자씩만 매일 보자는 게

내 소박한 목표일 뿐인데도 그게 그다지도 어렵더라는 것이다. ㅠㅠ

 

 

아니 내가 과도한 분량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왜 이것조차 습관화 하는 게 이렇게 어렵나.

달랑 저런 정도도 매일 하는 게 이토록 내겐 어려운데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며 그 일정들을 소화한다는걸까?

우리 애들이 특별히 공부를 싫어하나? 지금은 내가 그나마 데리고 봐주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으니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스로 내켜서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이 공부가 과연 얼마나 갈까.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제대로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좋은 습관을 갖게 해 줄 수 있을까

사교육 없이 스스로 즐거워서, 필요해서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

공부라는 걸 순순히 찾아 하게 할 수는 정녕 없는걸까...?

이런 마음으로 어지러운 요즈음...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15년 동안 현직 교사로 재직하고 계시는 이웃 베티짱님의 새 책이 발간 되었다.

틈틈히 블로그를 통해서도 느끼고 배우는 바가 많았던 터라 이 책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책을 읽어가며 내가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많이 뒤돌아 보았다.

나는 이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의 조급함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고

뭣보다 아이의 발달단계는 고려하지 않은채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아이가 따라할 수 있을거라며

아이는 힘들어 하고, 원하지도 않는데도 채근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서는 아이를 의자에 붙들어 매어놓고 콕콕 찝어 과목별로 어찌어찌 공부하면 우등생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아이와 부모가 행복한 초등 공부습관 기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그렇게 하면 좋다더라 하는 교육학자들의 좋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지 않다.

직접 세 아이를 그렇게 교육하고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며 느끼고 터득한 노하우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하며 알려주고 있다.

교육학적인 근거를 담아서......

 

 

읽다보니 아이를 위한답시고 했던 내 일련의 행동과 말들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고 있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이제부턴 이러이러하게 해야 겠구나 하는 새로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이론적이고도 교육학적인 원론적인 설명이 아닌,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토대로

활용하면 좋은 여러가지 실용적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뒷부분은 자기주도학습 과목별 학습전략이 소개되어 있어 고마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가르치는 학생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감히 권해본다.

 

 

공부하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있지만

사실은 아이들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각각의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지지해줄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게 되기를,

내가 엄마로서 그 일들을 돕고 이끌어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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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날 오후, 엄마와 이야기 나누다 내가 여쭤보기를 "엄마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나요?" 그러자 엄만 이렇게 대답하셨었다. "음...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대." 헉... 나는 그 순간, 그 즉시 의심을 거두었다. 지옥이 어떤곳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굳이 가고 싶진 않아...
우리집안은 4대째 크리스찬이다. 제주도에 사시던 증조부께서는 제주도 첫번째 장로님이기도 하셨다는데 서양귀신 믿는다는 주변의 손가락질과 모진 박해에 결국 호적을 따로 파내어 제주도를 떠나왔을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증조부의 맏사위는 목사님이셨는데 전쟁 때 순교한 분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분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오게 하고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게 만들었던걸까. 나는 믿는 사람이라면서 과연 그럴만한 믿음이 있기는 한가?
A.D.2013년이라는 서양력은 예수님의 탄생 후를 뜻하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점은 4세기 가량의 차이가 있다지만 B.C.는 Before Christ를 A.D.는 Anno Domini를 뜻한다. 즉 예수님 이전과 예수 이후 (Anno Domini는 라틴어)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존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우리나라의 현 개신교는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실재했던 예수라는 사람의 존재 여부조차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못함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여하튼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조롱하여 정말 종교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까지 가까이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듯 싶다.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영적인 존재를 믿거나 감지하거나 내세에 대한 의구심들을 갖고 삶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대로 살고 남을 속이고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그저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고. 바르고 선하게 이웃을 사랑하며 돕고 살아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게 말이 돼? 옛다 그런 천국 너나 가라.' 가 되는 것이다. 점점 본질에서부터 멀어지며 변질되어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예수라는 한 인간, 약 2013년전에 태어나 33년을 살다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던 그 사람의 존재는 실재이다. 다만 그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는 사람이 크리스천이고 그를 그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거나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라거나 그 시대 정치적 반란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칭한 사기꾼 정도로 취급하면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일 뿐 한 인간이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십자가 위에서 죽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 시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와 무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3년여를 따라다니며 동고동락했던 그의 각별했던 제자들도 예수께서 잡혀 가고 십자가에 달릴땐 모두 도망가거나 예수를 안다는 사실조차 부인하고 뿔뿔히 흩어졌었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엔 은 몇냥에 예수를 로마군인에게 팔아넘긴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난 후 그들은 증인이 되었고 전도자가 되었으며 참수되거나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가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순교자들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삶을 기꺼이 내놓고 두려움과 아픔을 감내하며 그들이 전하고자 애쓰고 지키고자 했던 기독교의 변질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나는 믿는 사람인가? 나는 왜 믿는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어떤 소망을 갖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천국에 갈만한가? 나는 천국을 소망하는가? 나는 천국을 믿는가?
나는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믿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의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믿는다. 뿐만 아니라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음을 믿는다. 나는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서로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감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흉내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늘 그릇 행하기 쉽고 원하지만 원치 않는 일과 생각을 할 때가 훨씬 많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사실은 그 사랑의 본질을 잘 모를때가 많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는 커녕 정작 내 자신조차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왜 믿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감히 모를 수 없고 내게 생명을 주셨으니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내 삶이라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천국에 대한 소망은 사라졌었다. 나는 내세를 원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냥 이 땅에서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기를 바랬다. '이걸로 충분해. 더 이상 또 살아야 해?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이걸로 전부였음 좋겠어... 그런데 정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면 지옥은 싫으니까 이왕이면 천국이 좋겠지.' 하는 정도로 여겼을 정도였다. 천국이라니... 내가 천국 가보겠다고 알량한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천국이란 곳이 너무 막연하여 '거기가 그렇게 좋대?' 하기도 했고 암튼 믿으며 살고 있으나 내 신앙심은 참으로 미천한 그런 정도가 되어가던 중이었다.  
내게 내세에 대한 믿음은 있으나 그걸 원하는 마음이 없다보니 내 삶은 큰 기쁨 없이 그날그날의 삶에 자족하는 게 고작이 되는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생명을 주신 신께 감사하고, 살아가는 동안 기독교인으로서의 내 삶이 선한 빛을 비출 수 있고 그로 인해 내가 칭찬받거나 상 받는 게 아닌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삶을 위해 기도하다보니 나에겐 많은 의무감이 (기꺼이 짊어진 의무감이지만) 어떤 소망이나 기쁨보다 더 많았던 게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미국의 뇌신경의학과 의사였던 이븐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희귀한 병에 걸려 일주일 동안 뇌사자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임사체험을 하고 돌아와 쓴 내용을 담고 있다. 뇌가 죽어 있는 뇌가 아무런 고등활동을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뇌를 연구하고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로서 자신이 누워 있는 동안 겪은 일은 결코 망상이나 환각이 아니었고 그것이야말로 실재였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다지 과학적인 인간도 아니었으면서도 뿐만 아니라 틀림없는 -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 종교인이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관심을 갖고 들으려 하거나 따로 찾아 읽어본 적이 없다. 성경에서 읽을때조차도 그저 내겐 너무 막연한 세계였을 뿐.
그거 누가 겪어봤다고 한들 꿈 꾼 거 아닐까, 개인적인 환상 체험을 가지고 내가 그걸 진실인걸로 믿어야 하나,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 하기만 했던 것 같다. 내세의 존재에 대하여 없다고 여긴 게 아니고 있음을 확신하면서도 그랬으니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겐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예수님과 먹고 자고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고 각종 이적을 베풀며 다니는 현장에서 함께 하던 제자들도 그러나 그랬었다. 예수님이 잡혀가던 날엔 다들 무서워 도망갔으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예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직접 만져보고 손을 넣어본 후에야 믿었던 게 그들이었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나야 예수님을 2000년이 지난 지금에야 믿고 있는 사람이니 믿음이 때로는 약해지거나 흔들릴수도 있다 쳐도 어떻게 함께 했던 제자들이 그럴 수 있었나 하며...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바로 그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다. 보고 왔다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믿고 내 눈으로 보아야 믿고 내가 뭔가 겪어야 믿어지는 그런 사람.
교회를 40년 섬기고 성경을 해마다 일독씩 해 왔으면서도 긴가민가 했던 혹은 막연하고 뿌옇게만 여겼던 천국에 대해 뇌전문 외과의사가 겪었다는 천국이야기 한번 읽고 갑자기 아 그렇구나 천국은 역시 있어. 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소망없이 살고 있었음에, 늘 그 안에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다른 세상적인 것들에 물들어가고 있었음에, 내가 안다고 여겼지만 그렇지 못했음에 대한 각성이고 회개이다.
책은 그 다음장이 궁금해서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면도 있었고 뇌수술 전문의사로서 전문가적인 입장으로 보는 견지에서 쓴 대목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고 뭣보다 자신이 경험하고 온 미지의 그 세상에 대한 부분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잡히지는 않으나 알 것도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는 환각 상태도 망상도 아니었던, 그가 경험하고 돌아온 그 세계를 천국으로 인식하고 확신하며 알리고자 하는 소명의식을 갖고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은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다소 도발적이나 확고한 문장이고 영어 원제목은 심지어 Proof of Heaven이다. 천국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곳에서의 보고 들은 메세지도 전하고 있는데 그게 신의 인간에 대한 전적인 사랑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깊게 은혜가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나마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는 어떤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실재한다고 믿는 것, 우리의 실존, 우리의 영과 영혼까지 보다 깊게 연구하고 생각하고 알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의 깊은 섭리와 사랑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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