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는 약간의 각색이 더해졌으나 이 책은 영화에 없는 이야기도 들어있어서 본래의 스토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초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부분만 찝어서 담았기 때문이다. 독자에게는 고마운 부분인 것 같다.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한 번 더 보면 오디세이와 더 단단한 관계가 맺어질 것 같다.
BBC, 알렉산더대왕,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단테가 칭찬한 책 답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오디세우스가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랜 시간을 담은 이야기인데 전쟁, 신들의 대화, 인어, 마녀 등 등 서양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재들이 이야기 속에 풍성하게 담겨져 있다.
오늘날에 이 이야기가 소구력을 갖는 것은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영화와 겹쳐지는 국제 정세 덕분인 것 같다.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는데, 청동기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오디세이의 시대적 배경이 오늘날과 똑 닮아있는 것이다. 앞날이 심히 걱정스러워 뉴스를 보기 겁이 나는 날도 많다.
오디세우스 스스로 제우스의 법을 어겨 상대방을 목마라는 술수로 제압한 후 오히려 인생이 거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묘하다. 오디세우스는 영화 속에서는 고뇌에 빠진 인간으로 나오지만 과연 그랬을까하는 의문은 남는다. 오히려 승리하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동원하다가 자신의 운명마저 잔뜩 꼬여버린 인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약간 꼬운 눈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 귀향해서 아들에게 무기를 들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마치 성경에서 다윗이 전쟁으로 피를 많이 본 자이기에 성전건축이 자신이 왕일 때에 거절되고 아들인 솔로몬에게 허락된 부분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결국 솔로몬도 어지러운 통혼으로 유대민족을 타락의 길로 다가가게 해버리지...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거대한 그 흐름에서 초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을까?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 아르고스를 보며 마음이 짠 하면서 고마움이 느껴졌다. 강아지를 키운다면 이름은 아르고스로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