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망가
강상준 지음 / 로그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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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마녀>, <내 집으로 와요>, <무한의 주인>, <불새>, <사채꾼 우시지마>, <소용돌이>, <아이 앰 어 히어로>, <자학의 시>, <헬싱>. 일본만화(망가)의 걸작들을 소개한 이 책에서 딱 열 개의 작품만 꼽아봤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보석처럼 내 인생에 박혀있는 소중한 선물들이다. 다 읽었다고? 이 책에서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해질 거다. 반도 채 못 봤다고? 이 책의 가이드를 받으면 읽고 싶어 근질근질해지는 건 순식간일 게다.

 

여전히 만화를 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분주한 일상 탓에 예전보다 만화를 챙겨보는 일이 많이 줄긴 했어도, 내게 만화는 양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사실, 평소 만화 좀 본다고 은근히 주변인들에게 고개 빳빳이 들고 살아온 입장에서 32개 작품 중에서 내가 본 작품이 20개를 갓 넘는 것을 보고는 살짝 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분함은 잠시, 나는 어느 새 내가 본 작품에 대해 작가와 패를 맞춰보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껏 접하지 못한 작품들의 소개를 보며 조만간 그 만화를 구해 볼 생각에 달콤한 흥분에 빠지기도 했다.(<도로헤도로>, <원아웃>, <바쿠만>, <헤븐?>이 제일 우선 구해볼 작품들의 목록이 될 듯싶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작품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보들이 많았다. 책을 통해 <무한의 주인>이 완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만세!).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실은 원작의 일부만을 편집해 만든 졸작이라는 사실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반드시 원작을 구해봐야겠다.

 

한편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동안 매체에 몸을 담고 있던 입장에서, 매체를 옮겨 다니며 계속 글을 쓰고 활동을 해 왔다면 나도 필자와 같은 작업을 해 보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그만큼 밀도 높게 새겨 넣은 문장들은 매력적이었다.

 

일테면 이런 문장들.

“<사채꾼 우시지마>에 비한다면 여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은 창궐하다 이내 파멸함으로써 권선징악의 쾌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흔한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악은 점점 더 간교해져 가지만, 끝내 파멸할 줄 알고 있기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악 말이다. <사채꾼 우시지마>은 이런 악과는 전혀 다르다. <사채꾼 우시지마>의 악의 축 사채업자 우시지마는, 그냥 악마. 약한 인간을 파멸로 안내하고 그 파멸을 지켜보는 악마. 우시지마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때론 협박하고 때로는 회유하며 그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사채꾼 우시지마, 179페이지)

 

다층적인 흑막과 이를 차례로 들춰가는 여러 인물들을 촘촘히 직조하면서 인간의 악마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스타일은 오직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것이다. 전 지구적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양한 인종과 연령을 아우르는 작화능력으로 뒷받침하고, 너무 참신한 나머지 다소 현실감이 떨어져 보이는 기본 설정에 완벽한 리얼리티를 더해가는 특별한 능력은 음모에 접근해가는 인물들의 시선을 언제나 진중하고도 긴박감 넘치게 포착한다.”(플루토, 309페이지)

 

언어는 필연적으로 과장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직접 보더라도 누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의 경험의 지평이 다르고 해석의 틀이 다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말은 언제나 과녁을 빗나가는 화살이다. 그러나 그 빗나간 곳에서 튀는 불꽃이야말로 말의 진짜 재미다. 이 책은 팍팍 날아와 박힌 화살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과녁이다.

 

필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했던 로저 에버트의 평론집 <위대한 영화>를 챙겨보고 싶어졌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들의 매력을 꽉꽉 잡아내는 <위대한 망가> 2권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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