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밀크
데버라 리비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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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의 장편소설 <핫 밀크>. 따스한 볕과 차가운 바람이 함께하는 이 가을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무드를 떠올리며 펼친 소설은 뜨거운 음료를 후후 불지도 않고 한 모금 마셨다가 혀가 데인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


정세랑 작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에세이 <살림 비용>을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데버라 리비는 소설, 희곡, 시,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장르의 두 작품을 읽어보았지만 둘 다 차분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은 우리의 온도
마냥 사랑할 수도, 훌훌 털어낼 수도 없는 관계에 대하여


소피아의 어머니 로즈는 수 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지만 치료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앞두고 논문을 준비하던 소피아는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한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성지순례하듯 스페인의 유명하다는 어느 클리닉으로 향하는 두 모녀. 원장은 기대와 달리 주술사 같은 처방을 내려 모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로즈는 소피아의 도움으로 일상을 유지하지만 가끔씩은 걷기도 했다. 하지만 또 어느 날엔 걷지 못하겠다고 변덕을 부리며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악을 쓴다.


자기 파괴적인 말만 내뱉으며 괴로워하는 로즈와 그걸 지켜보며 더욱 고통받는 소피아. 소설은 모녀를 통해 희생과 헌신,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애증 어린 가족관계를 잘 보여준다. 신기하다고 여겼던 지점은 갈등이 정점에 이르면 보통은 폭발하듯 싸우기 마련인데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는 그들의 내면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마냥 사랑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가 가족이니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소피아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내내 잔잔하던 분위기에 급발진이 걸려 순간 마음이 콩닥거렸다.


굽이치는 물결처럼 인생의 여정도 관계의 온도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때론 '지긋지긋해' 하다가도 역시 '가족이 최고야' 싶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장편소설 <핫 밀크>의 소피아와 로즈를 통해 가족끼리의 적당한 온도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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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 1
김난주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Jc 드브니 각색, PMGL 만화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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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프랑스식 만화 '방드 데시데'로 재구성한 그래픽노블 세트가 출간되었다. 프랑스 만화가 PMGL이 그리고, 아트 디렉터 드브니의 각색을 더해 탄생한 최초의 하루키 만화화 프로젝트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


평소 본인의 작품 각색에 너그럽지 않던 무라카미 하루키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후 프랑스와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 만나게 된 작품집에는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다양한 단편을 만나볼 수 있다. 아홉 작품 중 먼저 읽게 된 <셰에라자드>와 <빵가게 재습격>.


셰에라자드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나이트> 설화를 모티브로 한 단편이다. 페르시아 왕은 전 왕비의 외도 후 더 이상 여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여인들은 다음 날 사형에 처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하지만 재상의 딸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보전했다고 한다.


소설은 이 설화의 한 줄기를 따와 이어진다. 알 수 없는 연유로 기타간토에 있는 '하우스'로 보내진 하바라를 위해 '연락책' 역할을 맡게 된 셰에라자드. 그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하바라를 위해 생필품을 사다 주거나 책이나 영화 DVD를 챙겨주곤 했다.


주 2회 물품 전달을 위해 만나는 사이였지만 둘은 그때마다 자연스레 침실로 향했고 셰에라자드는 한 번에 하나씩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의 관계는 수개월간 같은 방식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 문득 하바라는 어쩌면 그녀는 이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딱히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다지 정열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육체관계일 뿐이었지만 하바라는 셰에라자드와 꽤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가벼운 혼란을 초래했다. 친밀한 시간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것,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라고 하바라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남자들의 모습과 심정을 단편 소설의 형태로 패러프레이즈 한 하루키의 상상력에 그림이 더해지니 소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마주할 땐 그림체가 너무 희화화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나중에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묘하게 빠져든다.


빵가게 재습격


빵가게 재습격은 1981년 출간된 빵가게 습격의 후속작으로 짧은 분량에 몹시 단순한 이야기이다. 새벽 두 시경 견디기 어려운 공복감을 느끼고 빵가게 습격 이야기를 떠올린 남편은 무심코 아내에게 과거의 일을 고백한다. 10년 전 몹시 배가 고팠던 파트너와 동네의 빵가게를 습격한 일이었다.


분명 습격은 범죄였지만 결국 습격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빵가게 주인은 지금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두 곡을 다 들으면 빵을 그냥 주겠다고 했고 둘은 얌전히 음악을 다 듣고 빵을 얻어 가게를 나온다.


이야기를 마친 남편에게 부인은 그때 습격을 성공하지 못해 저주를 받아 이 새벽에 굶주림에 잠이 깬 거고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해 성공해야만 저주를 깨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부부는 차를 몰고 나와 저주를 풀 빵가게를 찾아 헤매다 유일하게 문을 연 맥도널드로 습격을 감행한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에야 드는 생각은 클래식을 사랑하고 특히 LP 음반 모으기를 좋아하는 하루키가 빵가게 습격이라는 일련의 해프닝 속에 바그너의 음악이라는 장치를 심어 소설에 저주와 참회에 대해 녹여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엔 이질감이 느껴지다가도 묘하게 스며드는 매력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김난주, 홍은주, 권남희 등 그동안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해 온 분들이 이번에도 참여해 하루키 특유의 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글에 어울리는 그림체가 더해져 하루키를 좀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상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루키. 그의 팬이라면 꼭 한 번 만나볼 가치가 있는 색다른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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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에라자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 3
권남희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Jc 드브니 각색, PMGL 만화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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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프랑스식 만화 '방드 데시데'로 재구성한 그래픽노블 세트가 출간되었다. 프랑스 만화가 PMGL이 그리고, 아트 디렉터 드브니의 각색을 더해 탄생한 최초의 하루키 만화화 프로젝트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만화선>.


평소 본인의 작품 각색에 너그럽지 않던 무라카미 하루키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후 프랑스와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 만나게 된 작품집에는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다양한 단편을 만나볼 수 있다. 아홉 작품 중 먼저 읽게 된 <셰에라자드>와 <빵가게 재습격>.


셰에라자드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나이트> 설화를 모티브로 한 단편이다. 페르시아 왕은 전 왕비의 외도 후 더 이상 여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여인들은 다음 날 사형에 처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하지만 재상의 딸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보전했다고 한다.


소설은 이 설화의 한 줄기를 따와 이어진다. 알 수 없는 연유로 기타간토에 있는 '하우스'로 보내진 하바라를 위해 '연락책' 역할을 맡게 된 셰에라자드. 그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하바라를 위해 생필품을 사다 주거나 책이나 영화 DVD를 챙겨주곤 했다.


주 2회 물품 전달을 위해 만나는 사이였지만 둘은 그때마다 자연스레 침실로 향했고 셰에라자드는 한 번에 하나씩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둘의 관계는 수개월간 같은 방식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 문득 하바라는 어쩌면 그녀는 이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딱히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다지 정열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육체관계일 뿐이었지만 하바라는 셰에라자드와 꽤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가벼운 혼란을 초래했다. 친밀한 시간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것,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라고 하바라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남자들의 모습과 심정을 단편 소설의 형태로 패러프레이즈 한 하루키의 상상력에 그림이 더해지니 소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마주할 땐 그림체가 너무 희화화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나중에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묘하게 빠져든다.


빵가게 재습격


빵가게 재습격은 1981년 출간된 빵가게 습격의 후속작으로 짧은 분량에 몹시 단순한 이야기이다. 새벽 두 시경 견디기 어려운 공복감을 느끼고 빵가게 습격 이야기를 떠올린 남편은 무심코 아내에게 과거의 일을 고백한다. 10년 전 몹시 배가 고팠던 파트너와 동네의 빵가게를 습격한 일이었다.


분명 습격은 범죄였지만 결국 습격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빵가게 주인은 지금 흘러나오는 바그너의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두 곡을 다 들으면 빵을 그냥 주겠다고 했고 둘은 얌전히 음악을 다 듣고 빵을 얻어 가게를 나온다.


이야기를 마친 남편에게 부인은 그때 습격을 성공하지 못해 저주를 받아 이 새벽에 굶주림에 잠이 깬 거고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해 성공해야만 저주를 깨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부부는 차를 몰고 나와 저주를 풀 빵가게를 찾아 헤매다 유일하게 문을 연 맥도널드로 습격을 감행한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에야 드는 생각은 클래식을 사랑하고 특히 LP 음반 모으기를 좋아하는 하루키가 빵가게 습격이라는 일련의 해프닝 속에 바그너의 음악이라는 장치를 심어 소설에 저주와 참회에 대해 녹여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엔 이질감이 느껴지다가도 묘하게 스며드는 매력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김난주, 홍은주, 권남희 등 그동안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해 온 분들이 이번에도 참여해 하루키 특유의 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글에 어울리는 그림체가 더해져 하루키를 좀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상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루키. 그의 팬이라면 꼭 한 번 만나볼 가치가 있는 색다른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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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 시네마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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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가 <나와 춤을> 이후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다. 아련한 분위기의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표지 <육교 시네마>.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전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온다 리쿠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작품을 통해 끝없이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는 점이다. 예전 작품에서 이어지는 소설을 쓰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기존 작품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스핀 오프작을 선보이기도 한다.


단편소설집 <육교 시네마>에는 그런 온다 리쿠 작품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느 육교에 오르면 눈앞에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지고, 영화처럼 흐르는 소중한 추억을 마주하게 된다는 도시 전설을 그린 표제작 <육교 시네마를 비롯해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SF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단편집은 초콜릿 상자와 닮은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하나이지만, 각기 맛도 모양도 다양하죠. 어떤 건 좀 이상하기도 하고요. 부디 각각의 맛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무언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온다 리쿠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저자가 직접 밝혔듯 이번 단편소설집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늦은 밤 읽다가 섬뜩한 느낌에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며 상상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동안 단편집은 많이 읽지 않았는데 온다 리쿠의 작품을 통해 단편소설의 매력을 새로이 느낄 수 있었다.


다채로운 초콜릿 상자 같은 단편소설들 중에 특히 마음에 든 이야기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테마로 한 <철길 옆집>과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오마주 작품 <측은>. 원작이 궁금해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아가다 보니 더딘 속도로 읽었지만 그만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온다 리쿠는 책의 말미에서 각 단편소설들의 집필 배경을 들려준다. 그저 지나칠 수 있을 법한 대상을 눈여겨보고 거기서 나아가 상상력을 발휘해 하나의 짤막한 이야기로 표현하는 그녀의 능력은 정말 매력적이다.


점점 진화하는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 <육교 시네마>. 그녀의 초기작을 애정하는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30여 년을 글쟁이로 살아온 작가는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며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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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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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으로 꼽히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 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 할런 코벤의 2019년작 <네가 사라진 날>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스릴러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면 거듭되는 반전과 엄청난 몰입감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스릴러 소설 <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뉴욕 증권가에서 재정관리사로 일하는 사이먼은 소아정신과 의사인 아내 잉그리드와 세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커리어적으로도 가정에서도 탄탄대로처럼 이어지던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언제나 바르고 착하던 첫째 딸 페이지가 마약중독에 빠져 집을 나가버린다.


11살 연상의 에런이라는 남자의 꼬임에 빠져 자신을 놓아버린 딸을 되돌리기 위해 부부는 노력하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도 페이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사이먼은 노숙자에게 페이지의 소식을 전해 듣고선 딸이 나타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린다.


드디어 페이지를 만나 설득해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으려나 싶은 찰나 에런의 등장으로 사이먼은 또다시 딸을 놓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에런과 몸싸움을 벌였고 지나가던 행인이 이를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상황을 모르는 이들의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곤욕을 치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먼은 에런이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함께 지내던 페이지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딸도 자신도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저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사이먼은 아내 잉그리드와 함께 희미한 흔적을 더듬으며 또다시 딸을 찾아 나서던 중 생각지도 못한 어두운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사이먼은 페이지를 찾아 헤매며 딸이 그토록 망가진 이유가 자신의 양육방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뇌하는 동안 페이지 역시 수렁 같은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페이지를 나락으로 이끈 에런의 비밀 역시 안타까웠고 충격적이었다. 때론 보이는 것이 진실보다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할런 코벤의 스릴러 소설 <네가 사라진 날>은 가볍게 스치는 문장들 속에 많은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끼리도 말못할 비밀이 있다는 것.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 진실을 마주하고서도 기꺼이 품고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내가 만약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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