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맨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의 장편소설 <핫 밀크>. 따스한 볕과 차가운 바람이 함께하는 이 가을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무드를 떠올리며 펼친 소설은 뜨거운 음료를 후후 불지도 않고 한 모금 마셨다가 혀가 데인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정세랑 작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에세이 <살림 비용>을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데버라 리비는 소설, 희곡, 시,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장르의 두 작품을 읽어보았지만 둘 다 차분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은 우리의 온도마냥 사랑할 수도, 훌훌 털어낼 수도 없는 관계에 대하여소피아의 어머니 로즈는 수 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지만 치료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앞두고 논문을 준비하던 소피아는 학업을 중단하고 어머니를 간병하기로 한다.마지막 희망을 걸고 성지순례하듯 스페인의 유명하다는 어느 클리닉으로 향하는 두 모녀. 원장은 기대와 달리 주술사 같은 처방을 내려 모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로즈는 소피아의 도움으로 일상을 유지하지만 가끔씩은 걷기도 했다. 하지만 또 어느 날엔 걷지 못하겠다고 변덕을 부리며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악을 쓴다.자기 파괴적인 말만 내뱉으며 괴로워하는 로즈와 그걸 지켜보며 더욱 고통받는 소피아. 소설은 모녀를 통해 희생과 헌신,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애증 어린 가족관계를 잘 보여준다. 신기하다고 여겼던 지점은 갈등이 정점에 이르면 보통은 폭발하듯 싸우기 마련인데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지 않는다.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는 그들의 내면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마냥 사랑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가 가족이니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소피아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내내 잔잔하던 분위기에 급발진이 걸려 순간 마음이 콩닥거렸다.굽이치는 물결처럼 인생의 여정도 관계의 온도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때론 '지긋지긋해' 하다가도 역시 '가족이 최고야' 싶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장편소설 <핫 밀크>의 소피아와 로즈를 통해 가족끼리의 적당한 온도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