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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ㅣ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인물 뒤에는 그에 못지않은 어머니들이 있었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 낸 맹자의 어머니, 수식어가 필요 없는 대학자 율곡이이를 길러낸 신사임당, 그리고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최고의 명필가 한석봉의 어머니.
"어머니는(天只) 하늘이었다."
비록 이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에 비견될만한 훌륭한 어머니가 또 있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어머니를 대부분 천지(天只)라고 표현했는데 기록한 대로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하늘이었던 것이다.
난 얼마 전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곳곳에 등장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어머니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었다. 어디까지나 각색이 가미된 소설이었지만 사지로 향하는 아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 부분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었다니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순신은 1545년 서울의 남촌 자락에서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 사이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양반가의 자제였지만 할아버지가 중종 국상 때 자식의 혼례를 치렀다는 죄목으로 파직 당하고 관리의 범죄기록 장부인 녹안에 이름이 오른다. 여기에 오르면 후손들까지 관리 임명에 불이익을 당했다.
여기서부터 어머니 초계 변씨의 여장부적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왕이 죽을 줄 미리 알았던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밀려난 시아버지의 무죄 청원을 한다. 하지만 이미 양반가에 소문이 난 상태고 자식들의 장래를 염려하여 과감하게 친정이 있는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이순신은 무과로 전향을 하고 당시 아산의 유지였던 무인 출신 방진의 딸과 혼인하게 된다. 두 집안 모두의 지인이었던 영의정 이준경의 중매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저자는 어머니 변씨의 머릿속 청사진에 이미 그러져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이후 이순신은 장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과에 급제하고 이후 전국을 누비게 되는데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와 이순신의 관계는 돈독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던 장면인데, 임진왜란 중 잠시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찾자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
사랑하는 자식에게 몸조심 당부는 하지 않고 그저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는 당부만 남겼던 어머니 변씨의 성품이 느껴졌다. 목표를 위해 결심을 변치 않는 올곧은 신념, 어떤 위협에도 타협하지 않으며 바른길을 걸어가려는 정도의 가치관, 백성들을 사랑하는 이순신의 성품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 같다.

'내가 여수로 가자. 내 아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게 하지 말고, 고달파도 내가 고달파야 하고 힘들어도 내가 힘든 게 낫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어머니 변씨는 전쟁이 한창 중일 때에 그저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할 자식을 생각하여 직접 노구를 이끌고 이순신이 있는 여수로 이사를 했다.
이순신이 가족 걱정을 하지 않고 전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이때 어머니 변씨의 나이는 79세였는데 오직 자식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고달픈 타향살이를 견뎌냈다. 그 덕분인지 이순신은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왜적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이순신을 대적해서 무너뜨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왜적들은 스파이를 보내 간계를 꾸미는데 우리 조정 대신들과 질투쟁이 선조는 거기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이순신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하옥되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 변씨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양행을 결심한다.
"내 관을 짜서 배에 실어라. 나는 죽어서도 한양에 가서 아들을 만나고야 말 것이야."
이때는 더 쇠약해진 상태였기에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한양행을 말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그녀는 목숨을 바꿔서라도 아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험난한 뱃길을 버티며 한양으로 향했다.

어머니 변씨의 바람대로 이순신은 풀려나고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배에서 살아 나갈 수는 없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마주한 어머니를 보고 이순신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하늘이 깜깜해져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렸다고 그는 일기에 적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가부장 중심의 조선시대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여장부였다. 쇠락해가는 가문의 재산을 일으킨 실질적인 가장이었으며 빼어난 통찰과 더불어 인맥관리도 잘하는 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불행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가문을 지켰다.
이런 어머니 덕분에 이순신은 마음 놓고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묵묵히 백의종군하여 전쟁터로 나간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 혼신의 힘을 다해 명량을 거쳐 노량에서 싸우다 결국 어머니의 곁으로 가게 된다.

만약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한반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바쳐 구한 충무공이 아니었다면 과거의 조선은 명나라의 바람대로 세 구역으로 나눠졌거나 일본으로 완전히 통합되어 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알려진 위대한 어머니의 표상에 이제라도 충무공 이순신의 어머니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10만 원권 지폐가 생긴다면 거기에 충무공의 어머니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 저자에 대하여
보통 책을 펼치면 앞뒤 표지 날개 샅샅이 살펴보는데 이번에는 내용이 너무 궁금해 바로 읽느라 저자가 누구인지 미쳐 몰랐다. 다 읽고 나서 살펴보니 저자는 윤동한이라는 분.
전 대웅제약 부사장을 지내고 1990년 한국콜마를 설립하여 화장품과 제약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내신 분이었다.
단순한 경영인이 아닌 자신의 일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능력을 갖춘 분이었다. 다른 저서도 여럿 있던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