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위대한 개츠비

 

인류를 한 종으로 본다면 공통적으로 가지는 보편적 특성이 있다. 동굴벽화를 살펴보면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 또 비슷한 유형의 신화 등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정착한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된 개별적 특성이 있다. 상이한 인사법, 같은 행동의 다른 뜻 등 이런 보편성과 개별성이 잘 녹아있는 것이 말과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는 문학작품을 다른 사회공동체가 자신의 말과 글로 옮기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들이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글속에 담으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정서작가가 새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이런 문제의식을 우리 독자뿐만 아니라 번역 출판계에 던지고 있다. 일전에 [이방인]을 번역했을 때와 같은 이유로 또 한 번 번역문학계에 큰 논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기 번역출판물의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말도 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충분한 문제제기라는 말도 있다. 작가의 의도가 노이즈마케팅에 있든 진실한 문제제기에 있든 간에 충분히 귀담아 들을 이유는 있다.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유명한 외국 작품을 한 전문가가  번역, 출간하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인정을 받는 그런 행태들이 있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소설로 섬세한 표현과 문체는 세계의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우리말로 잘못된 번역은 이런 재미를 반감시키고 독자를 오해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그의 역자노트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기존 김 욱동, 김영하의 번역 작품과 이정서 작가의 작품이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통해 비교해서 읽는다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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