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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대륙 - 상
안제도 지음 / 리버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사계절의 대륙
중학교시절 선생님보다 영어실력이 더 낫다는 조카가 있었다. 형님도 서울대 진학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자랑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은 지역에 있는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고등학교때부터 판타지소설에 빠져 공부는 뒷전으로 밤새 인터넷을 붙잡고 공포물 판타지소설을 쓴다며 시간을 다 허비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듯 판타지(예전 무협지)소설은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복잡한 현실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일반 도서관뿐만 아니라 대학도서관에서도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안제도작가의 [사계절의 대륙]은 정통 판타지소설이다. 최근의 경향은 퓨전판타지소설이 유행이다. 인생실패자가 또 다른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든지 아니면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현재의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런 글의 변화에 식상해진 판타지 독자들에게 묵직한 글의 맛을 전해준다. 최근의 독자들 흐름이 이미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문장을 제대로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빠르게 전개되는 글, 그리고 빠른 결말을 원한다. 글 쓰는 이도 당연히 그런 흐름에 편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이 가벼워 져 시간때우기 이상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사계절의 대륙]은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과 화합들이 어우러져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삶에서 우리들은 스스로의 의지의 발현으로 매진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해 내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주인공 카일 또한 자신이 원했던 강한 포트니오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만 결국 그 의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둠의 군주의 안배에 따른 삶이 아닌가? 과연 삶에서 진정한 나의 의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그래도 삶은 계속 이어지겠지 카일의 이전에 누군가처럼......
모처럼 판타지소설을 읽어 기쁘다. 한편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라 그런지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각 인물들의 성격은 각자 삶에서 쌓아 온 다양한 경험들의 결과물인데, 그런 과정들이 비교적 가벼이 다루어진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