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어떤 국민’을 양육할 어머니로 만들 것인가는 근대 교육의 주요한 과제였다. 가정으로 들어가 안온한 살림을 꾸리고 자식을 잘 키우는 현명한 어머니. ‘어머니’는 자동으로 주어지는 지위가 아니라 오히려 ‘획득’되는 것이었다. ‘정숙’과 ‘현숙’을 획득해야 비로소 어머니가 되었다. 비혼, 재혼, 이혼 등으로 소위 정상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그리하여 ‘정숙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해지는 어머니들에게 ‘어머니 되기’란 하나의 도달하지 못한 과제가 되었다. 자녀를 낳아도 어머니로 인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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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몫’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다 ‘여럿으로 나누어 가지는 각 부분’이라는 뜻풀이를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몫이란 말을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그가 홀로 갖추고 짊어져야 할 책임이란 의미로 이야기하지만, 몫이라는 것은 애초에 개별로 존재할 수가 없는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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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무로 장작을 만들어 모닥불을 피웠다면 타고 남은 재에서는 장작으로 쓰인 나무의 식물석phytoliths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식물석은 식물의 세포에서 만들어진 규소 조각인데 식물이 죽은 뒤에도 남아 있습니다. 저우커우뎬 동굴의 재층에서는 식물석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장작을 때서 모닥불을 피운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인류와 불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빙하기에만 불을 이용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불은 추위를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먹을 것을 익히는 용도 말입니다. 불의 발견은 언어의 사용만큼 인류에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류는 불로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더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을 통해 인류는 환경을 바꾸고 길어진 낮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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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톨리 발자국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두 발 걷기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다윈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인류의 특징을 큰 머리, 두 발 걷기, 도구 쓰기, 작은 치아로 보았습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은 서로 어우러져서 밀접한 연관 관계를 맺습니다. 두 발로 걸으니까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운 두 손을 이용해서 도구를 만들고 쓰게 되었고, 도구를 만들고 쓰기 위해서는 큰 머리가 주는 지능이 필요했고, 도구를 쓰면서 큰 치아가 필요 없게 되어 치아가 작아졌다는 가설입니다. 여기서 가장 크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도구를 만들고 쓰는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문화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낸 것이 문화라는 이야기는 몹시 매력적입니다.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은 매력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기에 사람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행위라고 여겨왔습니다.

작은 머리를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도구를 어디에 썼을까요? 석기는 오랫동안 사냥 도구로 여겨졌습니다. 동물을 사냥하고, 털가죽을 벗겨내고, 고기를 저미거나 운반하기 쉬운 크기로 잘라내는 데 쓰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석기의 쓰임새에 대해서 연구한 학자들은 석기로 면도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석기는 사냥 도구로 쓰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냥뿐만 아니라 다른 행위에도 쓰였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나무 도구에 남아 있는 흔적을 분석한 결과, 땅을 파서 구근류나 나무뿌리를 캐는 데에서 생긴 흔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석기 역시 동물성 먹거리를 구하거나 맹수로부터 보호하는 데 쓰였을 뿐만 아니라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에도 쓰였을 것입니다. 고인류의 뼈와 치아에 남아 있는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동물성 먹거리만큼이나 식물성 먹거리에 의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고기 사랑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런 네안데르탈인도 충분히 식물성 먹거리를 찾아 구해서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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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류학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지를 밝혀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없는 단위라는 정의를 그대로 화석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이 같은 종의 인류가 아니고 다른 종이라고 한다면 착취를 더 정당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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