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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작가의 후기를 읽기 전까지 율라 비스의 글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에세이와 일기의 그 어딘가에 있는 글들임은 확실한데
딱히 정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론은 새로운 형식의 에세이라는 점.
책을 읽고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작가가 그런 상태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제대로 책을 읽었던 것이다.
2014년 새집을 사면서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산 그녀에게 집이라는 부동산은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그 안락함을 인식하는 자신이 불편하기도 하다.
로빈 시프가 첫 집을 구입한 뒤 <재산 있는 여자>를 쓴 것에 자극을 받아
저자 또한 집을 산 후 <소유하기, 소유되기>를 썼다고 한다.
특히 은행에 빚을 지고 집을 샀다면 그 집의 소유권이 나라고 하기가 애매하다.
결국 담보 대출을 모두 갚기 전까지 그 집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집을 소유한 것인지 집이 나를 소유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안정된 직업이 있어 대출금을 갚는데 문제는 없지만
그 대신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사라졌다. 즉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예술을 할 시간은 확보할 수 있지만
대출금을 갚기가 힘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맨 마지막 장에 실려 있다. 최고의 선택을 한 작가를 응원하다.
열 번의 이사를 다녀야 했던 이십 대의 그녀에게 가구는 사실 불필요한 존재에 더 가까웠다.
평생 또는 대를 이어서 가구를 쓴다는 개념은 사실 휘발된 지 오래다.
손쉽게 살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이케아가구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한 지 석 달이 넘도록 계단 바닥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은 정말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여유가 되는 한
가구도 마음껏 살 수 있다. 당연히 못질도 해도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건들을 살 때마다 사치품인지, 필수품이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지금의 소비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산다기보다 욕망을 건드리는 물건들을
채우며 사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소비의 어원이 '철저히 사로잡다 혹은 취하다'라는 consumere에서 왔다고 한다.
소비가 늘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에의 욕구는 일종의 욕정이다. 하지만 소비재는 이 욕정을 미끼로 쓸 뿐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상품의 소비자는 열정 없는 식사에 초대받는
셈으로, 이 소비는 충족으로도 열정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p.18
피아노를 중산층의 향기라고 표현한 부분이 재밌었는데 우리 집 거실에도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 전공을 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교양이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피아노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다 배가 고프면
점심을 먹고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글을 쓴다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18세기 귀족의 삶과 닮았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마르크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부르주아 행세를 하며 산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다. 주변에 빚도 많이 지고 엥겔스의 도움으로 살았던
마르크스는 유산으로 돈이 생기자 제일 먼저 집을 사고 꾸미는 데 돈을 쓴 인물이다.
그 이유는 바로 딸들을 좋은 집에 시집보내기 위해 번듯한 집이 필요했던 것.
마르크스도 그냥 아빠였던 걸까?
새집에서 무도회에 미술, 승마, 음악수업을 들으며
살았던 마르크스와 딸들은 생각하니 <자본론>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지는 느낌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간과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자본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 대신 물건과 관계 맺도록 적극 장려한다는 것이다. p.42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집에 입주해 요리를 만들었던 넬리에
대한 이야기도 대단한 반전을 보여준다.
넬리는 버지니아를 위해서 18년간 일했던 요리사이자 하녀로 소개가 되어 있다.
워낙 박봉이어서 넬리는 때로 파업과 사직을 반복했다. 서로가 필요했기에
둘 다 조금씩 양보하며 살았지만 앙금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둘의 싸움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는데 급기야 화가 난 넬리가 버지니아에게
'내 방에서 나라'라고 말한 사건이 일어났다.
과연 버지니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애증의 싸움은 결국 넬리를 해고하면서
막을 내린다.
버지니아는 '18년 만에 드디어 집 안의 다정한 폭군을 떨쳐 낼 수 있었다'는 글을 남겼는데
과연 넬리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었다.
자신의 방은 필요했지만 넬리에게 자기만의
방을 허락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치란 '대단히 안락하고 헤프게 생활하는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사치를
정의하는 데 애먹었던 것은 내가 대단히 안락한 상태로 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중산층이나 부유층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완곡어법이 '안락하다'는 것이다. p.370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물건을 사는 건 숨 쉬는 일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때그때 짧은 반성이 스치고 지나갈 뿐 소비 패턴은 사실 잘 변하지 않는다.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책장을 알아보고 있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가구를 소진되는 물건으로 바꾼 이케아는 일단 탈락이다. ^^
필요해서 산 물건들보다 예쁜 쓰레기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소유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자기 해체 실험'처럼 솔직하게 풀어낸 멋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람과 책과 글에 시간을 쓰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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