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지혜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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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을 쓴 김지혜 작가의 신간 소설이 나왔다.

전작의 배경이 소양리 북카페였다면 이번에는 운화백화점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 이번에도 서점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표지에 있는 책상의 모습이 내 책상과 비슷해서 든 생각이었다.


중고 신입 윤슬이 일하고 있는 백화점 콘텐츠전략팀이다.

백화점에서 자체적으로 선보이는 브랜드를 스토리로 풀어내기 위해 급조해 만든

팀이다 보니 인원은 겨우 네 명.  

다른 팀에 사람이 부족하면 지원을 나가야 하고 이동도 많아서

불면 언제라도 꺼지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팀이다. 

홍보부나 광고부서처럼 명확한 색을 띤 부서들 사이에서 어디에든 흡수될 수

있는 콘텐츠전략팀을 색으로 표현하면 주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독으로는 만들 수 없는 주황은 빨강과 노랑을 혼합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을 발휘하는 조직답게 서서히 독자적인 색깔을 선보인다.


치열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이야기'

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조직이 있는 이야기를 읽으니 피가 도는 느낌이다.

월요병이 다시 도진 느낌이랄까?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옥철도 생각나고 대리, 과장, 차창, 이사, 사장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나마 이 소설에서는 윤슬을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상사가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정희준 과장 같은 캐릭터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어디에나 빌런은 꼭 존재하는 거니까.

일이 힘들지 사람들은 괜찮은 이런 회사 사실 잘 없다.



 "솔직히 기획안 안 도와준 건 서운하지도 않아. 과장님은 그냥 내가 뭘 해도 싫은가 봐.

가이드도 제대로 안 주고 일을 시키고서는 다른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뭐라고 하나 몰라.

자기 기분에 따라서 오락가락 하는 게, 나를 무슨 감정 쓰레기통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니까?" p.52



'슈퍼루키날' 윤슬은 백화점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들자는 기획안을 발표한다.

단순한 기획안은 '구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팀이 꾸려지고 갑자기 일이 커져버린다.

백화점에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과연 매출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최민기 본부장이 태클을 건다. 

고이연본부장보다 최민기 본부장에 

마음이 더 기울기도 했는데 이런 대립각이 잘 살아 있어서

실제 회사에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뜬구름 잡는 '구름 프로젝트'가 형태를 갖추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아니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스토리를 이렇게 시작했을까 

독자로서 불안하기 시작했다. 


콘텐츠전략팀이 끌어안고 있는 상실감과 초조함, 

운화백화점이 직면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

사회 초년생 직장인을 투영해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보면서

과연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도 삶도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여정이라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난제를 만났을 때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 차윤슬은 내게 묻고 있었다. 

커다란 찰흙을 그냥 바라 보고만 있을지, 조금씩 깎아내면서

 형태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실패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했다.

비록 '구름프로젝트'는 실패하지만 그것이 씨앗이 되어 

'운화 백화점 40주년' 아이템으로 다시 살아나니 말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건 한낮에 초승달을 찾는 일과 비슷했다.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하늘에 떠 있을 초승달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과 같은 한낮의 초승달. p.163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바로 '글쓰기'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윤슬이 구름캐릭터를 고심하다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되고 글쓰기 수업까지 듣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마음에 대해 작가는 '기쁨'이라고

대답하는데 많은 분들이 수긍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는 반드시 주인공의 시련이 나오는 것처럼 삶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

과연 콘텐츠프로젝트팀은 이 난관을 헤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40년 전 운화백화점의 창업주가 숨겨놓은 이스터에그가 있다는 소문이...

더 이상 말하면 잡혀갈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추는 걸로.

백가지 이야기가 있는 백화점이라면 당장 달려가지 않을까?



'꽃이란 게 말이다, 봄에만 피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꽃은 피는 법이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움트고 피어나는 것뿐이야.......' p.126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백화점이 원래는 '백 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이라는 뜻이잖아요.

근데 백화점의 '물건 화를 이야기 화로 바꿔 보는 거죠. 그럼 백화점을 '백 가지 이야기가 흐르는

곳으로 제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운화백화점이 되는 거고요."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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