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없는 우정 - 경계를 허무는 관계에 대하여
어딘(김현아)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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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는 스승 어딘에 대해 "넘어야 할 산이자, 돌아오고 싶은 언덕"이라고 했고,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어딘과의)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쯤 되면 어딘 산문 <격 없는 우정>을 읽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서 일한 작가는 책을 읽을 수 없다는 현실에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한다.

생계를 위해 글쓰기 선생을 시작한 것이 '어딘 글방'의 시초였다고 한다.

나이불문, 세대 불문, 국적 불문, 성별 불문 글쓰기 교실이라니.

 10~13세가 속한 어린이 글방, 청소년 글방,

 직장인 여성들이 속한 토요글방, 일요글방,

35세 이상이 모인 목요글방,  소년 글방까지.

아오 빨리 등록하고 싶다.


이 글방의 규칙은 닉네임을 쓴다. 고심해서 골랐을 닉네임의 선택기준이 나만 궁금한가? 자세한 내용이 없어서 홀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검바, 양몽, 평, 파는 도저히 모르겠다. 떠별은 학생(길떠나는 별),  길별은 스승 (길잡이 별)을 이르는 말인데 참 어여쁘다. 남녀노소가 아니라 '소여노남'에 이르러서는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도 이런 맥락에서 수긍이 되었다.

몰입과 집중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 유전자를 바꾸고,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탄생하는 곳, 분홍색 드레스 코드, 페미니즘, 비거니즘 같은 젠더 감수성을 넓히는 곳, 바로 어딘 글방이다.

이 책에 소개가 된 최재천 <통섭의 식탁>, 서경식 <시대를 건너는 법>은 꼭 읽어보고 싶다.

노무현 정부 이후 남성 주심 내각에 대한 비판도, 유시민 작가에게 보낸 편지도 공감이 되는 바.

과학 공부를 하면 가볍고 명랑해진다는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푸슬푸슬 웃었던 날이 또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 선생의 책을 읽고 잠든 날이었다. 아침에 깼는데 마음이 환해지며 웃음이 났다. 아 내가 이토록 잘 살고 있구나, 내 몸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구나, 우주의 질서와 원리대로 참 잘 해산하면 되겠구나. 그 아침에 나는 마음껏 가볍고 새뜻했다. 홀가분하면서 그득했다. p.107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91페이지의 파 군에게 쓴 어딘의 평가서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과 교사는 서로에게  평가서를 쓴다고 한다. 통지표에 쓰여있던 선생님의 서너 줄 코멘트가 전부였던 나에게 이 글은 감동을 넘어 나의 삶의 자세까지 뒤돌아 보게 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보통 우정이라 함은 내 또래 친구들에 한정된 나로서는 이렇게 세계를 확장시키며 살았던 인간 김현아에 대해

존경이 마음이 우러나온 지점이기도 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허투루 보지 않는 그 섬세함, 섣부른 충고가 아닌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의 산 증인 같달까.

현장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이 아름다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

자발적 멸종주의자를 선택한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이 외에도 시민단체 '나와 우리', 청계피복노동조합,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지구별 친구 등의 사피엔스 동지들이야기가 잔뜩이다. 그와 제자들의 글은 하나같이 솔직하고 진솔하며 꾸밈이 없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사는 사람의 행보에는 숭고함이 배어 있다. 먼저 곁을 내어 주기 전까지는 마음 한켠도 내놓지 않는 나의 옹졸함에 치를 떨게 하는 책,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동지는 우연히 되는 건 아닌 거 같아. 도모하고 공조하고 연대하며 모험과 분투의 시간을 같이 보낼 때, 끝없는 노동과 남모를 수모를 함께 견디어 낼 때, 서로의 시련과 상처를 오래 목격하고 증언 할 수 있을 때, 비참과 위대를 동시에 지닌, 고결과 어리석음을 한 몸에 간직한,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동시에 가장 절박해서 강인한 나의 벗이 거기에 있지. 천천히 공들여 간절히 동지를 만드는 일, 이 멋진 신세계를 꿈꾸던 사피엔스가 끝끝내 한 일이었던 거 같아. p.152



프렌드십friendship 의 확장이 어스십 Earthship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느끼고 실행하는 마음. 어스십은 어쓰플러스라는 단체의 친구들이 만든 근사한 말이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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