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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서평단 알림

재밌다. 448페이지의 두꺼운 분량이 무색할 만큼.

유머와 재치가 살아 있어, 군데군데 폭소를 자아내는 문장들이 있다. 그런 문장들은 전체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

"5월, 초록으로 뒤덮인 오후의 강변에서 나와 내 코트를 입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육십 살만 젊었다면 로맨틱한 광경이 됐을 수도 있었다."

이런 문장들. 아무렇지도 않게 써 내려간...

단문으로 끊어지는 명쾌한 문장 속에 유머를 담뿍 담은 <하드 보일드 에그>는 험하고 각박한 세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그야 말로 '하드한' 세상을 살아가는 두 사람, 탐정이 되고 싶었던 심부름센터 사내 '슌페이'와 멋지게 살고 싶었던 독거 노인 '아야'의 짦은 만남을 이야기한다.

말로 같은 탐정을 꿈꾸었으나, 결국 집 나간 동물을 찾는거나 불륜을 뒤쫓는 일을 하는 슌페이는 이력서가 빽빽하고 늘씬하고 예쁜 여자를 비서로 뽑는다. 하지만 막상 온 사람은 80을 훌쩍 넘긴, 아야. 이렇게 언발라스하고 쌩뚱맞은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몇 번의 일을 함께 하면서도 늘 앙숙인 두 사람. 하지만 슌페이가 아야를 내쫓지도 못하고, 끈질긴 아야가 그 사무실을 나가지도 않으면서 어처구니없고 유머러스한 둘의 관계는 지속된다.

우연히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슌페이, 드디어 진짜 말로처럼 탐정이 되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게 될 것인가? 

역시, 세상은 하드했다.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일 대 오의 적을 한방에 물리칠 수도 없었고, 대단히 재치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멋지게 탈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멋진 세상은 책이나 영화 안에서나 존재했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인간 슌페이와 아야는 서로에게 최선의 도움이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주 현실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구할 수 있었던 것. 아야가 조직 폭력배에게 갇힌 슌페이를 정신 나간 손자 취급해서 데리고 나온 것이나, 슌페이와 아야가 오줌을 지릴 것 같이 두려운 상황에서, 아주 힘겹고, 처절한 방법으로 탈출한 사건 등. 조금도 멋지진 않았지만, 둘은 함께 했기에 서로를 위험에서 건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처절하리만치 현실적이다.

 

피터팬처럼 꿈을 꾸며 살았던 슌페이와 아야, 이 나약한 둘은 꿈을 이루었다.

슌페이는 살인 사건을 해결했고, 아야는 그 조력자로, 비서로, 사건을 해결하는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신나는 모험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아빠의 죽음을 보았고, 학창 시절에 따돌림을 당해 창고에 갇혔던 슌페이.

전쟁과 격동의 시절을 살아 가며 가족 하나 없이 독거 노인으로 살고 있으면서 질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야.

이 나약하고 외롭고 보잘 것 없는 두 사람이 이 하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래서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친구로 어떤 존재가 되는지 <하드 보일드 에그>는 이 무거운 주제를 코믹한 터치로 가벼운 듯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슴을 때리는 여운.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힐 때도, 박장 대소를 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에서처럼 "멋지게"는 아니더라도, 둘은 분명 하드한 세상을 가장 멋지게 살아 낸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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