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하루 종일 심퉁맞은 바람이 거침없더니 오늘은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다. 바람을 잠재운 햇빛은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하루를 연다. 나에게 허락된 햇빛은 베란다 창문에 자리 잡고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바람결에 조금씩 자리가 옮겨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가끔씩 고개를 쳐든 바람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너의 목소리가 들려.’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가슴 속이 싸아해지는 것은.

작가 김영하님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거침없는 필체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아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했다.

제이,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에서 태어나고, 태어나자마자 십대의 미혼모인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그나마 자신을 길러주던 돼지엄마마저 재개발 사업으로 떠나버리고, 결국 혼자가 된 후, 고아원으로, 그곳에서도 뛰쳐나와 폭주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제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졌다.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며 자신의 꿈을 찾으며 자라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버린, 게다가 자신이 바꿔보기에는 너무 어리고 나약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새 그 삶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 제이가 얻게 된 것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삶의 지혜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고아원 근처의 개 농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 개를 두고 달아난 사람들, 불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간 개들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보며 제이는 남들의 고통 따위는 모른 척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범죄의 모습을 배우게 된다. 고아원에서 탈출한 후에 제이가 만난 세상은 제이에게 더 어두운 모습만 보여주었다. 목란을 비롯한 가출한 십대들의 모습을 보며 차마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가정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정말이지 그냥 덮어주고, 다독여주기에는 버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꾸 미안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하다는 듯, 그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내 몬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청소년이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운운하고 있으니.......

어렸을 때 제이가 세 들어 살던 집에 또 한명의 ‘나’라고 불리는 동규,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던 그 아이와 제이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동규가 말을 찾게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말이 곧 제이가 하는 말처럼 여기는 것처럼, 둘은 한동안 떨어져 자내는 동안에도 함께라는 생각이었다. 제이와 동규의 모습을 보며 동규가 제이에게 소통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통해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꼭 목소리만이 아닌, 다른 것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나 사건 이후, 제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동안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말 할 수 없는 사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말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네들과는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게....... 어쩌면 말이란 자신의 마음을 목소리를 통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을, 그것도 겉으로 잘 보여지도록 포장하기 위해 내뱉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제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활 속에서 제이가 폭주족의 리더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폭주족을 단속하던 의경이 죽게 되고, 그로 인해 경찰은 폭주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광복절 전야, 대폭주의 정보를 알게 된 경찰, 그 속에서 승태는 폭주족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폭주족의 우두머리를 잡아 아이들을 분산시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 대상인 제이는 실종으로 사건은 단락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에 한동안 책을 손에 뒤고 있어야 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고 보니 책 속에서 만난 제이의 모습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 비행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비난하기에 급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자꾸 미안해진다. 나의 그런 냉소적인 반응이 그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등을 지게 만든 것 같아서, 그저 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심이 내 아이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면.......

그 아이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고 다독일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올 수 있도록, 누구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다. 큰 목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보다는 어디선가 힘겹게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내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이들로 자라야 한다. 그 바람이 나의 바람이고, 제이의 바람이며 우리들 모두의 바람인 것이다.

 

햇빛이 춤을 춘다. 잔잔한 바람을 품에 안고 너울거리며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춰주고 있다. 바람 한 자락이 창문에 스친다. 바람결에 들려온다. 제이의 목소리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근두근 내 인생’ 무덤덤한 손길로 책장을 넘기던 나는 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미미한 가슴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라는 특이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람, 낱말카드, 활자 같은 내가 일상에서 아무 의미 없이 행하던 것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애란 작가님의 세심하고 부드러운 필체는 나를 어르고 다독여 그동안 굳어있던 내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들을 깨워 꿈툴거리게 해주었다. 두근.......

이 이야기는 엄마 뱃속의 아이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 육남매 중 여섯째로 입이 걸어 ‘시발공주’로 불리던 엄마, 최미라, 그녀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완고한 외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자 가출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밤, 심부름으로 전해야 할 돈을 들고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대수를 만나게 되었다. 태권도를 잘 해 체육고등학교에 다니던 대수는 대회에서 부정 판정한 심판에게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고 선배들로부터 집단구타에 정학까지 받아 앞일에 대한 고민으로 숲속 개울물에서 마음을 달래다가 뜻하지 않게 미라를 만나게 되었다. 다른 것 볼 것 없이 착하고 착하기만 한 대수, 그가 바로 아기의 아버지이다. 두 남녀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밖의 만남으로 같이 지내게 되었고 어쩌다 아빠, 엄마가 되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어버린 대수와 미라를 보며 안타까워졌다. 한창 꿈을 꾸고,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아무 거리낌 없을 나이에, 막막한 현실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나름대로의 막막했던 청춘을 보듬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무라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어버린 그들이 겪어야 할 현실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서 미라의 뱃속에 두근거림으로 존재를 표현하게 된 아기가 바로 아름이다. 엄마의 임신사실로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어쩔 수 없이 부부가 된 수, 두 사람은 이듬해 봄 살림을 차렸고, 아름이도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덟 나이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께서 유명케이커 스포츠 전문점을 차려 주었지만 곧 문을 닫았다. 그 후고 아름이가 4살 때 병 때문에 큰 병원을 찾아 부천으로 이사 온 후에는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열일곱 살, 아름이는 열일곱 살이지만 조루증을 앓고 있어 여든의 외모를 갖고 있다. 외모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부분도 함께 늙었고 급격한 노화현상으로 각종 합병증까지 앓고 있다.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아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무언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자신이 낸 숙제를 매일 하고, 부모님께서 귀찮아할 정도로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문득 부모님을 위한 선물로 무언가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일선물로 받은 노트북으로 자신만의 글을 쓰게 되었다. 혈압약, 진통제, 관절약, 위장약을 비롯한 약을 의존해 하루를 살아내고, 툭하면 병원신세를 져야하는 까닭에 아름이네 집은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아름이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는 최선을 다했고, 그런 부부를 바라보는 아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갔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던 아름이는 자칫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황반변성 질병이 더해져 입원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여력이 없어 결국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 어마가 자신이 뱃속에 있을 때 밤새도록 운동장을 뛴 탓에 아름이가 희귀병에 걸린지도 모른 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작성해온 원고를 버리고 만다.

나는 아름이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열일곱의 나이에 여든의 외모라니, 130cm 키에 눈썹도 없고, 게다가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단 하루도 편하게 지낼 수 없다니. 아름이를 뒷바라지 해온 부부가 지내온 날들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것도 아름이 자신이 겪어 낸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먹먹해진다. 자식의 나이를 지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의 고단했던 삶을 다독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를 낳는 것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삶을 다시 살고 싶기 때문이라는 아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아름이는 부모님을 통해 자신의 젊은 모습을 찾고 부모는 아름이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래도 변치 않은 것은 부모는 젊어도 부모의 얼굴을, 자식은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모와 자식은 키우고, 자라며 서로에게 자신을 녹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근두근.......

아름이네 가족은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방송이 나간 후로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름이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이는 프로그램의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들 중에 자신을 달래주는 글을 보내준 이서하라는 아이와 글을 주고받게 된다.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그 아이도 자기와 같은 나이에 병을 앓고 있다는 것, 여자아이라는 사실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서른이 넘은 아저씨가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아름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부모의 젊었을 적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결국은 아버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 자라고 있는 동생과 손을 통해 미리 인사를 하며.......

갑자기 코끝이 싸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열일곱 해를 살고 간 아름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며 재미있는 자식이 되고 싶어 하던 모습이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다. 아름이와 유일하게 비밀을 나누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레게 한, 가을과 겨울만 알던 아름이에게 진짜 여름이었던 서하, 그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짧지만 아름이에게는 진짜 무성한 초록빛 여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넋 나간 모습을 보니 눈물이 흐른다. 특히 아름이가 희귀병에 걸린 것이 자기 탓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던 아름이 엄마는 가슴속에 묻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지.......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난 후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보고 싶으면 사진을 보고, 남겨진 흔적을 매만지며 달래보다가 정작 이름을 부르면 아무 대답이 없다는 것, 그것 때문에 마음은 다시 지옥이 되고 만다. 그런 날이 무수히 반복되고 나서야 가슴에 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아름이가 넘겨준 낱말카드를 이어 보기로 했다. 햇살, 투명한 가을 햇살 한 줌, 그 사이로 스쳐 날아오는 바람, 선선한 바람 한 줄기, 그 뒤로 제 풀에 스려져 버리는 낙엽, 바삭바삭한 낙엽....... 그동안 무심했던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람이 분다. 한 줄기 바람이 내 가슴에 내려 앉아 심장을 두드린다. 가슴이 뛴다. 그 뜀으로 내 삶이 조금씩 소리를 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 이제 다 왔어. 이곳도 많이 변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굳이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아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변을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에게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먹먹해져서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 수가 적어지고, 목이 메이고 급기야 엄마 앞에 서면 자꾸만 눈물이 나고 만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머쓱해져서 할 말이 없으면서도 장모님을 찾곤 한다.


‘엄마’ 비록 소리 내어 부르지는 못하지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급체를 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지곤 한다. 남아있는 식구들은 생각지도 않고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엄마를 지독한 이기심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엄마를 그렇게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지독한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 채....... 그리고 지금에서야, 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걱정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박소녀’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잡은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재래식 부엌에서 평생 대식구의 밥을 짓는 것은 물론 한 해 여섯 번의 제사를 지내고, 돈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절약을 했으며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 때 남편이 한눈을 팔아 젊은 여자가 집으로 오기도 했고, 사산한 아기와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시동생의 죽음으로 무력해지기도 했지만 다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는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가슴에 설레는 것을 느꼈다. 책 속에서 그리운 내 엄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생활을 책임지느라 바쁜 모습도, 작은 구둣방을 하셨던, 그래서 구두 만드는 일 이외에는 무심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물론 간단한 구두 수선까지 하시면서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계절에 따라 구둣방 앞에 좌판을 깔아 놓고 과일이나 옥수수, 군밤 같은 것을 파셨던 엄마,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작은 몸집에 무척이나 바지런하셨던 모습이다. 그 뿐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큰아들이자 외아들인 오빠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희생도, 가끔씩 삐걱거리는 구둣방 의자에 앉아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을 흥얼거리던 허전함도 그리고 몸이 아파 가끔씩 정신줄을 잃어버려 식구들의 마음 졸이게 했던 아픔도, 결국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리신 것도....... 나는 어느새 그리운 엄마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품에 안길 수 있기를 바랐다.

남편의 생일이 그녀의 생일 한 달 전이라 생일을 챙기러 찾아오는 자식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고자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워진 노부부의 서울 상경, 그러나 그 날만은 예외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들 중 그 누구도 노부부를 마중 나오지 않았고, 택시를 타도 되는데 굳이 전철을 탔고 그러다가 잠깐 사이에 남편은 그녀를 두고 혼자만 전철을 탔다. 뒤늦게 그녀의 부재를 깨달은 남편은 황급히 전 역으로 되돌아갔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흰머리가 많이 섞인 퍼머 머리, 튀어나온 광대뼈,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은 70세의 노모,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남편과 자식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본다. 그러는 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소소한 일들이 부인에게, 엄마에게는 모두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워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자식들의 까만 눈동자는 다시 주먹을 쥐게 만드는 힘으로, 자신이 글을 읽고 싶은 것을 딸을 통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희망으로, 데면데면한 남편이지만 언제나 곁에 있어 주리라는 든든함으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참아 내느라 몇 번씩 책을 덮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정신줄을 놓는 엄마를 보며 안타까움만 갖고 있었지, 왜 그렇게 되셨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고작 생각해 낸 것이 엄마 목에 오빠 집 주소와 연락처를 적은 목걸이를 걸어 주는 것으로 안심하려 했으니. 덕분에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도 며칠 후면 오빠 집과는 동떨어진 곳의 경찰서에서 수척해진 엄마를 모시고 올 수 있었다. 그 때 엄마를 씻기고 잠재우는 것 보다는 엄마의 답답한 가슴 속을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해 응어리진 속마음을 열어봐야 했었다. 그렇게 엄마의 고단한 삶을 다독여야 했는데.......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가족들은 전단지를 만들어 서울역 근처는 물론 엄마를 봤다는 곳 주변을 돌며 나누어 주었다. 젊었을 때 한눈을 팔았으면서도 자상하기 보다는 무심했던 남편, 검사가 되려다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큰아들, 나름대로 글을 잘 쓰는 작가 큰딸, 약사로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살고 있는 둘째딸,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주고, 필요하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달려와 주는, 그들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하지만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였다 다만 그녀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의 벗이 되어주던 곰소의 그 남자만이 그녀의 고단한 삶을 다독여 주곤 했었다. 아마도 그녀는 정신줄을 놓았으면서도 옛 기억을 더듬어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큰아들이 처음으로 직장을 얻었던 서울 용산의 동사무소 숙직실로, 처음으로 자기 명의의 집을 가졌던 역촌동을 비롯해 개봉동, 대림동, 수유동, 정릉 등 예전에 그가 살았던 동네로, 가족들은 며칠 전 그녀가 지나쳤던 곳들을 뒤따르며 안타까움만 커져갔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와의 일들을 들춰내며 자책하고 후회하며 회한에 젖곤 했다. 그리고 그녀의 고단한 삶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덤덤한 존재로 한 때의 잘못을 무마하려했던,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 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받으려 했던 남편의 뒤늦은 후회는 그녀가 없는 텅 빈 집에서 목 놓아 우는 설움으로, 검사가 되겠다는 다부진 결심으로 그녀의 전부였던 큰아들의 청년시절 좌절된 꿈은 바로 그녀의 꿈이 좌절된 것이라는 깨달음의 허허로움으로, 작가가 된 후로 그녀에게 딸이라는 보다는 손님이 되어버린 큰딸의 무관심은 술을 마시고 흐느끼는 후회로, 그들은 그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녀가 원했던 일들이 마음먹기 쉬운 일이었으며 모든 일에 답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토록 애타게 찾는 모습 대신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창문 너머로 둘째 딸과 손자들의 모습을, 아무도 모르게 가슴 한 쪽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던 곰소의 그 남자가 자신을 애타게 찾는 모습을, 시집을 와서 남편, 아이들과 함께 했던 고향집에서 정들었던 시간들을,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집에서 엄마가 아닌 딸로서 그녀의 엄마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급기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파란 슬리퍼에 움푹 페인 그녀의 발등은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느라 고단했던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 파란 슬리퍼를 벗겨 주고 싶은데, 움푹 페인 발등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데, 생각과는 달리 나는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해주었으니, 그러면서도 정작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운운하고 있었으니.......


엄마, 이미 세상을 떠나신지 햇수로 10여년이 넘은 엄마,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실신할 정도로 나를 허망하게 만들어 버린 엄마의 죽음은 나의 생활에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당시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빚만 잔뜩 지고 그나마 갖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막내로 유난히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지 않아 오히려 잘 돌아가셨다는, 이기적이고 오만함으로 엄마의 죽음을, 엄마의 모습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소리 내어 엄마를 불러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때는 남편의 차마저 팔았기 때문에 엄마가 누워계신 포천까지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면서 간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니.......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문득문득 엄마가 그리워졌다. 그래도 그리움을 가슴 속에 삭인 채 하루하루 다가오는 날들을 버티어내다 보니 어느새 나이가 마흔을 훌쩍 넘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집안 형편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오래 전처럼 남편의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안산에서 포천까지 남편의 차를 타고 가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명절은 물론 가끔씩 엄마가 그리울 때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질 때면 나는 남편과 함께 엄마를 찾곤 한다. 온 몸이 스멀거리는 듯한 것은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 두었던 그리움 때문이다. 그리움이 너무 커서, 도저히 내 몸속에 쌓아둘 수가 없으면 나는 엄마를 찾는 것이다. 막상 찾아가도 별 달리 하는 것도 없이 그냥 묘 앞에 앉아 있으면 환한 웃음이 보고 싶어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진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 탓에 가슴까지 개운해 진다. 그렇게 텅 빈 가슴 속에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엄마를 수없이 부르곤 한다.


‘엄마를 부탁해’ 책의 제목에서 처음 느꼈던 것은 부탁하는 대상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대상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은 예수의 주검을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으로 성모마리아가 바로 엄마이고 딸이며, 딸이고 엄마인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험난한 세상을 간직한 채 지친 자식들에게 쉴 수 있는 품을 내어주는, 그러면서도 누구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분명 누구의 딸이기도 한.......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내 엄마가 신고 있을 파란슬리퍼를 벗겨 드리고 움푹 페인 발등을 어루만져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좀 그만 울지. 장모님도 당신이 맨 날 울어서 지치셨겠어.”

“.......”

차에서 내리니 활짝 핀 벚꽃 나무 사이로 어머니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뿌옇게 흐려진 눈앞으로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손짓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잎싹’잎사귀라는 뜻으로 바람과 햇빛을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일을 한다. 결국 나무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서 알게 된 이 말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든든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책은 작가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통해 삶을 표현하고, 아이들과 더불어 성장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깊이가 있어서 읽는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잎싹은 난종용 암탉으로 양계장의 철망 속에 갇혀 알을 낳아야 했다. 철망 속에서 나가는 것은 물론 알을 낳는다 해도 품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잎싹은 단 한번만이라도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잎싹이 폐계로 여겨져 죽음의 구덩이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졌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나마 철망을 빠져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잎싹의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난종용 암탉으로 철망 속에 갇혀 지내는 암탉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그런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스스로 이름을 짓고, 소망을 품고 사는 잎싹이 겉으로는 볼품없고 나약해 보여도 용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철망에서 나온 잎싹은 밖에는 늘 목숨을 위협하는 족제비가 있어 마당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잠자리를 찾는 것도, 먹이를 찾는 것도,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것도 잎싹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잎싹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청둥오리 ‘나그네’였다. 잎싹과 나그네가 친구로 지내는 모습을 보며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그네 또한 잎싹처럼 보통의 집오리들과 다른 야생오리로 마음 붙일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곁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야생의 생활에 익숙해진 잎싹은 찔레덤불 속에서 알을 발견하고 어미가 되어 정성으로 알을 품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나그네가 찾아와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곁을 지켜 주었다. 나중에 알 속에서 나온 새끼가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 잎싹은 그동안 나그네가 했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알이 나그네의 알이었다는 것도.......

나는 잎싹이 품었던 알에서 나온 새끼 청둥오리를 보며 가슴이 싸해졌다. 잎싹이 붙여준‘초록머리’라는 이름도 마음에 와 닿았다. 초록머리는 알을 품어 병아리를 태어나게 하고 싶은 잎싹의 소망과 야생오리로 하늘을 날아 무리들과 함께 하고 싶은 나그네의 바람을 갖고 태어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 희망이 이루어지기까지 겪어야 할 일들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희망을 갖고 생활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초록머리를 보며 잎싹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럴수록 초록머리 곁을 맴돌며 지켜 주었다. 그러면서 잎싹은 그냥 암탉이 아니라 어미로서 자식을 지키기 위해 강해졌다. 마당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잡혀 발목에 끈이 묶여 있는 초록머리를 구해주기 위해 주인을 공격하기도 하고, 발목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주기 위해 머리가 휑해질때까지 부리고 줄을 쪼기도 하고, 족제비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나는 잎싹이 초록머리의 어미로서 하는 모습을 보며 든든해졌다. 어느새 자란 초록머리가 자신보다 몸집이 커서 마음껏 안을 수는 없지만 잎싹에게 초록머리는 여전히 아기인 것이다. 초록머리가 저수지로 날아온 자신의 무리들 틈에 섞여서 파수꾼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하는 마음. 비록 자기 곁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자리고 돌아가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사랑, 초록머리가 떠난 후 자신의 소망을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나그네의 바람도 이루었다는 흐뭇함으로 족제비의 새끼들을 위해 두려움 없이 족제비의 먹이가 되어주는 희생....... 잎싹의 죽음이 슬프기 보다는 존경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품어왔던 희망을 현실에서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로고 보면 희망을 품고 생활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된다. 마당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