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하루 종일 심퉁맞은 바람이 거침없더니 오늘은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다. 바람을 잠재운 햇빛은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하루를 연다. 나에게 허락된 햇빛은 베란다 창문에 자리 잡고 온화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바람결에 조금씩 자리가 옮겨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가끔씩 고개를 쳐든 바람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너의 목소리가 들려.’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가슴 속이 싸아해지는 것은.

작가 김영하님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거침없는 필체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아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했다.

제이,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에서 태어나고, 태어나자마자 십대의 미혼모인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그나마 자신을 길러주던 돼지엄마마저 재개발 사업으로 떠나버리고, 결국 혼자가 된 후, 고아원으로, 그곳에서도 뛰쳐나와 폭주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제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졌다. 모든 이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며 자신의 꿈을 찾으며 자라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버린, 게다가 자신이 바꿔보기에는 너무 어리고 나약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어느새 그 삶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 제이가 얻게 된 것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삶의 지혜는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고아원 근처의 개 농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 개를 두고 달아난 사람들, 불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간 개들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보며 제이는 남들의 고통 따위는 모른 척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범죄의 모습을 배우게 된다. 고아원에서 탈출한 후에 제이가 만난 세상은 제이에게 더 어두운 모습만 보여주었다. 목란을 비롯한 가출한 십대들의 모습을 보며 차마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가정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정말이지 그냥 덮어주고, 다독여주기에는 버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꾸 미안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하다는 듯, 그 아이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내 몬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청소년이 내일의 주인공이라고 운운하고 있으니.......

어렸을 때 제이가 세 들어 살던 집에 또 한명의 ‘나’라고 불리는 동규,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던 그 아이와 제이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동규가 말을 찾게 되고 나서도 자신이 하는 말이 곧 제이가 하는 말처럼 여기는 것처럼, 둘은 한동안 떨어져 자내는 동안에도 함께라는 생각이었다. 제이와 동규의 모습을 보며 동규가 제이에게 소통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통해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꼭 목소리만이 아닌, 다른 것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나 사건 이후, 제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동안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말 할 수 없는 사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말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네들과는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게....... 어쩌면 말이란 자신의 마음을 목소리를 통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을, 그것도 겉으로 잘 보여지도록 포장하기 위해 내뱉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제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활 속에서 제이가 폭주족의 리더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폭주족을 단속하던 의경이 죽게 되고, 그로 인해 경찰은 폭주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광복절 전야, 대폭주의 정보를 알게 된 경찰, 그 속에서 승태는 폭주족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폭주족의 우두머리를 잡아 아이들을 분산시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 대상인 제이는 실종으로 사건은 단락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에 한동안 책을 손에 뒤고 있어야 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고 보니 책 속에서 만난 제이의 모습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 비행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비난하기에 급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자꾸 미안해진다. 나의 그런 냉소적인 반응이 그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등을 지게 만든 것 같아서, 그저 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지독한 이기심이 내 아이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면.......

그 아이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고 다독일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올 수 있도록, 누구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다. 큰 목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보다는 어디선가 힘겹게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도 내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이들로 자라야 한다. 그 바람이 나의 바람이고, 제이의 바람이며 우리들 모두의 바람인 것이다.

 

햇빛이 춤을 춘다. 잔잔한 바람을 품에 안고 너울거리며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춰주고 있다. 바람 한 자락이 창문에 스친다. 바람결에 들려온다. 제이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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