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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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이 책은 철학을 통해 많은 이들과 함께 해온 저자가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으로 이어져오는 32가지 이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소 딱딱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더해 자연스럽게 풀어냄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사상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배웠던 게 전부로, 단 몇 줄로, 그것도 듬성듬성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사상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상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으로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로부터 시작되고 우리가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막연함에서 벗어나 자세히 알아 지금을 짚어보는 계기로, 나만의 사상을 찾아가는 삶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는 정치, 철학 예술, 국가, 경제, 사회 모두 5부분으로 나누어 그에 맞는 사상을 담고 있다. 대부분 익숙한 사상들이었지만 뒤죽박죽으로 떠다니던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 정갈한 느낌을 갖게 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민주공화국을 위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어젠다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공화주의과학혁명, 항해술, 인쇄술로 스스로 생각하게 되면서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을 낳았지만 반면 또 다른 차별을 낳은 계몽주의인류최고의 발명품으로 선거와 다수결 원칙을 기본으로 긴 혼돈의 세월을 겪어 지금은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꾼다는, 사회에 뿌리내린 전통과 질서를 보호하고 지키는 보수주의자유와 평등이 균형을 맞춰나가야 하는, 언제나 왁자한 논쟁을 통해 굴러가는 자유민주주의협동과 공생에 기초한 소규모 자연 공동체를 꿈꾸고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사회를 지향하며 정해진 견해 없이 억압에 맞서고 자유를 지키는 합의만 존재하는 아니키즘정당보다는 지도자 자신을 앞세워 민중의 편이라 외치면서도 민중이 정치의 구경꾼으로 남기를 바라는.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포퓰리즘

정치는 보통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도 그렇게 생각해왔었는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그 바탕에는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와 그 방법을 찾아 생각하고 고민함으로써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을 것이다. 비록 그 사상이 생각과 다르거나 예전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새로운 사상으로 살아가는 것은 과학의 발달과 늘어난 배움의 기회로 스스로 깨어나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후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경제발전으로 생각을 가두기도 했고, 휴전으로 늘 긴장감을 갖게 함으로써 잘못된 보수와 진보 구도로 정권을 잡기에 급급했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수많은 희생자들과 시위로 이어져 지금에 이른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 최류탄 연기에 맞서 목청껏 구호를 외치기도 했었다. 툭하면 되지도 않는 사안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정당들, 권력을 잡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치가들을 보면 답답할 뿐이다. 그러기에 지금도 만족하지는 않지만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환상으로 가득한, 모험적인 신비로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법칙과 협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중점을 둠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해방시킨 낭만주의우리가 믿고 따르는 모든 질서와 가치가 근거 없다는, 허무하다는 사상으로 유럽에서는 가장 위험한 사상으로 통하기도 했고 인생무상, 허무주의로 와 닿는 니힐리즘’ 1960년대 큰 인기를 끌었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참여하는데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행동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해야 한다는 실존주의인간이 절대적으로 옳고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한 사람 한사람의 생각이 그 자체로 다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해체주의합리, 질서, 계획, 발전의 모던, 근대화로 발전한 만큼 잃어버린 것들을 찾는, 모더니즘을 넘어 탈근대로 옮겨 개성과 다양성으로 발전보다 웰빙을, 이념보다 지성을, 이성보다 감정을, 문명과 통일보다 자연과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예술 부분에 담겨있는 사상들은 정치사상보다 편안하게 와 닿는 것을 보면 우리 일상과 더 가깝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하며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사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앎에 대한 즐거움을 채워주어 든든함이 느껴졌다. 흔히들 말하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을 짚어보는 것은 물론 주변을 돌아봄으로써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더 넓고 크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루하루 주어지는 날을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겁다는 이유만으로 무심하게 보낸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한 나라의 민족이 무력 또는 경제, 정치를 통해 다른 나라나 민족을 지배하고 통재하는 것으로, 19세기 이후 힘센 나라들의 간인한 침략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제국주의프랑스 대혁명 즈음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피와 흙을 나눈 사이로 서양열강들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때 한껏 퍼졌으며 근대화이자 산업화. 경제발전을 나타내는 민족주의독재 권력의 의미로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체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독재권력을 뜻하는, 민족이라는 환상을 내세우고 사회진화론을 따르며 전쟁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파시즘미국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나라가 세워진지 200 년 만에 엄청나게 팽창하게 해준, 1920년 서부개척이 끝남으로써 해외진출로 이어가고 있는 프린티어 정신아시아를 벗어나가는 이른바 탈아론으로 겉으로는 천왕숭배사상을, 속으로는 군부가 장악하여 독재와 전체주의, 제국주의로. 결국은 처참한 패전으로 끝이 난, 지리적, 운명적, 공동연대를 기초로 새로운 도덕으로 묶이는 특수한 세계를 꿈꾸었던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농민이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했던 중국의 현실을 받아들여 지구전, 유인작전, 인민지지의 인민전쟁 3원칙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뚱, 인민 전체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마오이즘항일운동에 뿌리를 두고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중심으로. 권력을 모아 인간중심 사상으로 거듭남으로써 대를 이어 충성하는, 지금을 김정은이 대를 잇고 있는 북한의 추체사상

각각의 사상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주변의 나라들을 짚어보는 시간은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나라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이해하는 부분도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로 지금도 적대적 감정이 큰 일본, 패전국가에서 놀랄 만큼의 경제성장은 물론 지금도 아시아에서 힘을 키워가는 일본,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세계 강대국으로 들어선 중국, 그리고 핵무기를 협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북한, 이들 국가들 나름대로 갖고 있는 사상을 자세히 알게 됨으로써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으로서 개개인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의 바람마저 가두는 그들만의 사상교육의 굳건한 삶을 절감하게 된다.

 

 

인클루저 운동을 출발로 돈을 중심으로 평등하고 공평하지만 잔인한 400년이라는 역사와 함께 발전을 거듭하며 위기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사유재산을 모든 고통과 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모두가 가진 것을 함께 누리는 사회를 만든다는 주장으로 원시공산사회부터 지금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러져버린 공산주의’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 주축으로한 군부정부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고 경제부분에서 성공을 이루어 한국식 민주주의로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민주화에 대한 바람에 밀려난 개발독재선도형 국가로 바뀐 동아시아 국가들이 능력보다는 인간관계가 합리적인 주장보다는 전통과 문화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자본주의를 택하는데 이는 인간의 도리를 앞세우는, 동아시아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신유교윤리자본주의 영혼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하는 과정의 힘인 기업가정신

경제는 우리 생활의 중심으로 쉽게 이해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우리 경제의 현실을 비추어봄으로써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삶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 절로 실감하게 되는 돈의 위력 등 자본주의의 잔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서양을 지배하고 동양은 지배당해야 한다는, 침략의 논리인 오리엔탈리즘성의 차별이 오랫동안 차별의 근거가 되어왔었는데 여성적인 부드러움, 배려, 이해심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으로 여성성이 지닌 좋은 모습을 키워나가는,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꽤 성공한 패미니즘생태학 연구에 뿌리를 두고 생명공동체의 완전함과 안정, 아름다움을 지켜나가야 하는, 필요한 것을 최소화하는 생활, 소비를 줄이고 삶의 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태주의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페미니즘, 단지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져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여성평등, 양성평등이 말로만이 아닌. 더디기는 하지만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 딸들에게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과 이해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다 보니 주부로서 생태주의는 늘 마음속에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일상이 되어버린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오염, 생태계파괴로 일어나는 문제들로부터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더 기능이 좋고, 더 완벽함을 우선으로 하루가 다르게 나타는 가전제품을 볼 때면 안타까워진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활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환경호보에도 좋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32가지 이즘. 저자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시간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알아가는 앎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 지금까지 우리 인류의 삶을 짚어보는 계기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상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바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등장한 사상 때문에 희생되고, 스러져가기도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날을 열기 위한 희망으로 지속된다는 것을, 그래서 사상은 우리의 앞날을 비추는 횃불이라는 것을, 무작정 맹목적으로 사상을 쫓기보다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우리의 사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매순간 성장해야 한다는 것도.......

사상을 통해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해준 저자와 함께 한 시간은 특별한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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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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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이 책은 만화가로, 사십대의 딸인 저자가 팔십 대 어머니의 삶을 담고 있다. 모두 4권으로 된 두툼한 분량만큼 그 내용이 자세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등이 함께 실려 있어 많은 것을 얻게 해주고 있다. 특히 식해, 떡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이북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는 물론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은, 맛있는 즐거움도 전해준다,

다른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의 , 엄마의 삶이라는 사실은 가슴에 와 닿게 한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무심했던 내 엄마의 삶을 다독여주는 것은 물론 지금 엄마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도 갖게 해준다.

솔직히 말하면 만화는 어렸을 때 순전히 재미삼아 봤던 게 전부로 그 후로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마주한 이 이야기는 만화가 주는 정겨움에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특별한 선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어머니, 이복동녀(놋새)는 함경북도 북청군 신북청군 보천리 미사촌에서 어머니 이초샘, 아버지 이근호 부부의 16녀 중 6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홀시아버지와 시누이 둘과 함께 살며 부지런히 일했고 까다로운 홀시아버지의 시집살이도 감내하는 착한 며느리로, 강한 어머니였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제법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단호한 성격의 아버지는 일본군으로부터 산을 지키기 위해 5년 넘는 재판을 했고 끝내 이겼지만 오히려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팔게 되고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자 다시 사들이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토지에 대한 든든함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 4대독자 외아들, 찬세(억석) 오빠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감,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남아선호 사상의 뿌리 깊음을 실감하게 된다.

책 속에서 색다른 재미를 갖게 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음식이었다. 창란젓, 명란젓, 아가미젓을 기본으로 명태와 차조밥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섞어 만든 명태식해. 우거지 무채, 두부, 쇠고기 등을 속으로 만드는 명태순대는 준비과정부터 만드는 과정이 자세히 실려 있어 차근차근 따라 해봐야겠다는 치기어린 결심을 갖게 한다. 황해도가 고향인 올케언니 덕분에 가끔 맛보게 되는 가자미식해의 독특한 맛을 무척 좋아하다보니 명태식해도 맛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손님을 대접할 때면 으레 직접 쌀을 빻아 떡을 만들고, 찹쌀로 밥을 지어 올리기도 하고 소고기를 듬뿍 넣고 끓이는 국 등으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상을 차리고, 손님들이 돌아갈 때면 양손 가득 음식을 들려 보내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익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 뿐인가? 재봉틀로 식구들 옷을 만들어 입히는 모습도 내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그 재봉틀이 남편의 노름하느라 툭하면 전당포에 잡히기도 하고 도둑을 맞기도 했지만 늘 곁에 두고 함께 하는 모습도.

 

집안이 외아들에게 거는 기대만큼 억석 오빠는 일본인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성진, 배무선 등지에서 공사를 하며 큰 돈을 벌어 잃어버린 산을 되찾고 새집을 짓게 되었다. 그 즈음 이복동녀씨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시득을 만나 결혼을 했고 52녀를 낳아 키웠는데 그 중 막내가 바로 저자인 은성이다. 모든 게 낯선 시댁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서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으로 밀고 밀리는 과정에 부모님을 두고 남한으로 피난을 오고, 수용소에서, 어린동주와 함께 배급으로 허기를 달래고 쪽잠을 자고, 군인으로 나간 남편을 따라다니며 주먹밥을 먹이고,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당시는 모두 힘들고 어려웠다는, 막연함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내 엄마의 삶이 그저 힘들고 어려웠다는 막연함으로 대신한 것처럼, 어쩌면 지금 내 아이들도 내 삶들 그렇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삶을 이렇게 오롯이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는 물론 이복동녀씨 자신에게도 또 다른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부모님의 삶을 막연하게 여기는 것에서 확실하게, 민낯으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이복동녀씨에게 있어 큰아들 동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력한 남편 대신 아이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온갖 일을 하면서도 버티어낼 수 있었던 것은 늘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생활하는 동주의 힘이 컸으리라. 동주가 사우디로 돈을 벌러 떠나고 남은 가족들은 수유리에 정착하며 형편이 나아지지 시작했고 단칸방에서 넓은 집으로, 급기야 집도 살 수 있었다. 반면 그 때부터 이복동녀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했고 병원에서 약을 지어먹기도 하고,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점차 나아지게 되었다. 당시 저자인 은성이는 재수를 겪고 대학생이 된 후, 보통의 대학생처럼 잠깐 동안 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고, 56일 심리치료 체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찾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오빠들도 결혼해서 각기 삶을 살고 있어 정작 엄마가 심하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도 그 누구도 관심 갖지 못했다. 당신 스스로도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참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이해하는 게 더 쉬웠으니,

그런 엄마를 보듬어 준 이가 바로 저자 은성이다. 삶에 부정적인 시선이 걷히면서 엄마를, 자신과 같은 여성의 삶이 눈에 들어옴으로써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하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엄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알아가는, 그럼으로써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커졌을 것이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모녀가 이불을 꿰매며 이불 위에 누워 있을 때 엄마가 훌쩍 날아올라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는 코끝이 싸아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급기야 그동안 묻어두었던 울음을 쏟아내고 말았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던 그 때, 아버지는 시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고 계셨다. 구두를 만드느라 거칠어진 손만큼이나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정말이지 구두 만드는 일밖에 모르셨다. 덕분에 엄마는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물론 집안의 대소사까지 도맡아 하셔야 했다. 그 뿐인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넷을 키우려다보니 구둣방에 점원을 두는 대신 아버지 곁에서 소소한 일들을 거드셨다. 그래서 간단한 구두 수선은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버지와 함께 구두 만드는 일도 하셨다. 아버지께서 만드는 구두는 남자 구두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나만을 위한 구두를 만들어 주셨다.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라 다른 누구에게 팔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구두를 만든다는 흐뭇함으로 하셨을 것이다. 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구둣방 앞에 좌판을 깔고 계절에 맞춰 과일이나 옥수수, 군밤, 군고구마 같은 것을 파셨다. 새벽에 아버지와 함께 구둣방에 가시면 밤늦게야 집에 오는 힘든 생활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으셨다.

엄마는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지 구둣방에서 일을 하셨고 급기야 자궁암 수술을 받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셔야 했다.

  "그만 울거라. 아기들 놀란다. 나는 괜찮여. 그나저나 나야 이제 다 산 세상이지만 니가 걱정이여. 험난한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어서 죽고 싶다 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야. 그럴 때면 눈 질끈 감고 죽을만큼 힘을 내서 버티어야 헌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살 방도가 생기는 거여. 미안하구나, 엄마라는 사람이 힘들 때 도와주지도 못해서......."

 병실에 누워계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제야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신 엄마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때는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빚만 잔뜩 지고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몰랐었다. 그래도 엄마 말씀을 기억하며 버티어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려 주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해서 늘 변함이 없고, 거짓말 할 줄 모르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어 내고.......

한평생 구둣방에서 일하시며 자식 넷을 키우신 엄마는 결국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신 채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 엄마는 힘들고 어려웠던 모습보다는 내 구두 속에 사랑을 가득 담아주셨던 따뜻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딸로서 엄마와 오래 살고 싶었다는 바람, 가장 슬펐을 때는 동주가 병이 들었을 때고, 가장 기뻤을 때는 동주의 병이 나았을 때라는 것처럼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삶 중심에는 자신보다 자식이 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이제 이복동녀씨는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로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하고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져간다고 한다. 가끔씩 고향하늘 어귀를 서성이는 꿈을 꾸거가 남편이 쫓아오는 꿈을 꾸면 놀라서 깨어나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엄마를 위해 엄마의 삶을 만화로 담아낸 딸, 모녀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복동녀씨가 오랫동안 은수씨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내가 대신 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슬픔이, 기쁨이, 즐거움이, 힘겨움이 다른 누가 아닌 나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엄마의 삶이 바로 내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은 다른 누구의 삶보다 훌륭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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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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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권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적 완전성,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는 실현된다는 희망내지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책속에서 알게 된 이 말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든든함으로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교수로, 한국칸트학회 회장인 저자의 칸트 3대 비판서 주제별 특강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다소 딱딱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히 강의마다 끝 부분에 질문과 답으로 되어있어 현장감이 더해져 집중할 수 있었다.

칸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근대철학의 중심이라는 말이 전부였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무 부러울 것이 없던 그 때. 나름대로 자아실현이나 삶의 본질 등에 대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치기어린 결심으로 철학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철학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저 책을 읽었다는 것이 전부였을 뿐, 아니, 오히려 그들은 왜 굳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에 대해 끝도 없이 풀어헤치고 파고 들어가고, 다시 또 엮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깨닫게 된 것이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그 때, 그들의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개념으로, 정의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칸트의 철학은 두 번 정도는 읽었는데 도통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역시 읽었다는 것만으로만 여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칸트라는 이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한 번쯤은 그저 읽는 것에서 벗어나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특강은 저자를 통한 이야기와 설명이 곁들여져 보다 만족감을 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묵직한 어감만큼 이번에는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잡아가보기로 한다.

최초의 프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1724422일 동프로이센의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소박한 수공업자인 아버지와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의 아홉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자연을 잡하고 신의 섭리를 알게 해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은 인격형성에 많은 여향을 주었다.

6세부터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중, 고등학교 때는 라틴어에 심취했고 대학에서는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폭넓게 배웠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생계를 위한 가정교사 활동을 했고 31세에 시간강사로 46세에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형이상학과 논리학 정교수가 되었다.

칸트가 살았던 저택을 마주하니 마음이 반짝인다. 40세가 넘어서야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단호하고 고지식한 성격 탓도 있었으리라. 오로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해놓고, 그 길을 따라 걷는 모습은 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칸트의 철학은 신적인 것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이성주의적 계몽주의,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그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찾을 수 있다.

 

    

 

1강은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순수이성 비판에서 찾는 내용이다. 순수이성비판은 가장 낯익은 말로 칸트는 인간 마음능력을 감성, 이성, 지성으로 쪼개어 봄으로써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일 먼저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은 학문에 대한 개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학문이란 먼저 많이 배우고 그것이 쌓이면 스스로 물어 분별하는 것으로 그게 바로 비판으로 철학함을 배우는 것이지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이 강의를 들으며 잘게 분리되어가는 근본적인 것들을 보며 막연하게만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제각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수이성은 오로지 자격으로 존재하는 자를 뜻하며 인간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순수이성 비판은 순수이성의 자기 한계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초월적 감성학과 초월적 논리학을 다루고 있다. 공간, 시간은 존재의 관문이자 지평으로 공간과 시간상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 있는 현상, 인간의식 방식에 달려있는 관념, 특히 인간의식에 선험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412개의 순수 지성개념들은 무질서하게 떠돌던 것들을 제자리로 찾아가는 확실함을 갖게 했다. 지금까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써왔던 말들의 기본개념을 한 번도 깊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사고의 형식을 범주고, 범주에서 사고 작용이 통각으로,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은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칸트의 통각은 자기의식이라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인간으로서 나는 공간, 시간상에서 직관한 것만을 의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앎의 대상은 자연세계뿐인 것이다.

    

 

 

 

2강에서는 도덕학 부분으로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실천 이성비판에서 찾고 있다. 이 질문에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답이 주어진 만큼 문제의 본질은 선이란 무엇인가?‘이다. 선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해보는 것으로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만큼 더욱 집중하게 된다.

선을 실천할 인간의 능력을 자유라 하므로 도덕 문제의 중심에는 자유개념이 들어간다. 당위는 이념 또는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상세계의 명제이고 도덕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학문이 윤리형 이상학이며 설천이성 비판을 통해 성취된다.

칸트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곧 선의지이며 그 바탕에는 인격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의지는 어떤 행위를 오로지 의무이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고 행위의 선악은 이미 동기에서 드러난다는. 결국 법치 주의자이자 의무자이며 동기주의자이다.

이런 칸트의 윤리이론이 인연과 정으로 맺어진, 보은의 윤리가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적응도지 않는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우리 민족이 정이 많다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정을 중시하다보니 얽히고 설켜 좋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작 나 자신부터 그런 보은윤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이제는 한 번은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질러야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자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통 할 수 있으니까 해야 한다는 말을 칸트의 논리로 보면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인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문장의 앞, 뒤가 바뀌었을 뿐인데 칸트의 논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선의지가 의무라는 생각 때문이다. 거기에 질의 응답에서 칸트의 최고선개념 등장에 대한 이야기는 행복과 최고의 선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3장은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또는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라는 질문을 판단력 비판에서 답을 찾고 있다.

먼저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사물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합목적성으로 칸트는 판단력의 자기자율이라 한다. 그리고 다시 감정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인 미감적 판단력과 자연의 실제적 합목적성을 지성과 이성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나눈다. 미감적 판단력은 합목적성으로 인간에게만 있는 미적 감정, 쾌감으로 사람마다 다른 감관적 감정과 자유로운 상상력과 지성이 합쳐져 나오는 특별한 쾌감이 있는데 칸트는 자유미를 미적 쾌감에서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미적 판단의 한 요인이고 감성의 한 능력인 상상력은 감각기관과 함께 감성기관이다. 다시 또 분류해보면 오감은 외감, 반성하는 능력은 내감으로 상상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상상력과 지성이 합일하는데서 미적 판단. 미적 쾌감이 생긴다고 하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의미를 품고 있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선은 자연의 세계가 도덕의 세계처럼 움직이는 상태로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처럼 지상이 천국이 될 수 있기를, 덕행에 알맞은 행복이 함께 하는 세상이 바로 칸트가 생각하는 합목적인 세계이다. 이런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덕행을 행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칸트의 철학적인 답은 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권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적 완정성,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는 실현된다는 희망내지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슴 저 밑으로부터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은 것 같은 설렘으로. 물론 굳이 이렇게 철학적 사고와는 무관한 삶도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철학적 사고가 더해짐으로써 삶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짚어보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안으로 단단하고, 차곡차곡 쌓아감으로써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을 위해 해야 할 부분도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보면 당장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참 진리를 밝히는 것으로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율적 인간의 위상을 논리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로 자존심을 갖게 되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일은 인류복지를 위해 중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 의식의 자발성, 자율, 자기자율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이 자유임을 해명함으로써 자유의 철학, 자율의 철학이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때의 칸트 철학이 지금에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존재자의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만큼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삶을 살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세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어본다. 그럼으로써 내 삶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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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눈앞으로 펼쳐진 눈으로 덮인 세상, 그 어떤 생명의 존재감도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 위로 남겨진 발자국, 둘이 함께였다가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하나가 되고,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별

이 책은 제1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작별과 수상후보작으로 올랐던 6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김유정 문학상이라는 묵직한 어감은 순수문학으로 그에 부합하는 수상작품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손에 쥐어지는 책들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책장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더 컸다. 그라디가 마주한 이 책은 신선함으로 마음을 반짝이게 했다. 거기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한강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설렘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 설렘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신선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울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변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있는 여인은 스물넷에 결혼해 이듬해 아들 윤이를 낳았고, 이혼한 후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십년 째 혼자 키우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이혼을 하고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여인의 삶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날을 보내면서 그녀는 자신이 삶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가는 사물처럼 인식될 만큼 모든 것에 무심했다. 그래서 눈사람이 된 자신을 보고도 무덤덤했고 자신의 몸이 녹아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닌, 살아서 꼭 해야만 하는 거창한 것보다는 남자와의 만남과 아들 윤이와의 대화처럼 보통의 일상이었다.

눈사람이기에 눈물로 녹아드는 얼굴, 바스러지는 손가락, 둔감해진 감각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심장은 녹아내림으로써 눈사람이지만 여전히 인간인 여인을 보며 마음이 아릿해진다. 심장의 온기로 사라질 여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존재와 소멸이라는 깊이감을 더해준다.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막연한 경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덤벼들 기세로 마음의 날을 세우고, 그러다보니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다 좋아진다는데 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는 어려움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우리네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저 주어지는 날을 보내는 살아지는 날이 있고, 그런 날들이 반복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내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살아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내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지금도 버티어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작가는 한 숨 더 깊이 들어가게 한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와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반복되는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존재와 소멸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내 발자국은 하얀 벌판 위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유년기 시절, 동생과 자신에게 강한 존재감을 주었던 오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그 일로 부모님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합의금을 받았다나는 사실은 분노와 굴욕감을 느끼에 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살아있는 자식들보다 죽은 오빠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이해하려하는 여인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린 윤이의 지나친 의지로 인해 생긴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남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로 감당해내야 할 감정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등을 돌리게 되면서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세상살이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미련을 접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 윤이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은 인간으로 남고 싶은 일말의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스러져가면서도 뒤를 돌아보게 되는......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판견 근무로 인도네시아에서 지내고 어린 딸 민아를 시골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자신은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주인공, 그녀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면서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해마다 손이 없는 날 메주 빚던 풍습을 농한기 사업으로 발전시켜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이장, 반면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음흉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 용권, 그 아이 또한 드러내지 않고 집요하게 대진이를 괴롭히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악귀 손은 귀신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강화길 작가의

한밤중 들리는 섬뜩한 소리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데런, 떠나간 디엔과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디엔이 들려주었던 꿈 이야기를 곱씹곤 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이나 읽어야할 만큼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어쩌면 디엔이 떠났다고 믿는 데런이 실은 죽은 게 아닐까. 그래서 모은 게 확실하지도 않고, 모든 게 의문투성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까지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부도덕한 스티치가 의미하는 것은 둘의 사랑이라고 못내 받아들이게 하는 권여선 작가의 희박한 마음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얽힌 일로 시작된 오해. 차에 닿은 것은 종이상자묶음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말이 돌고 돌아 뺑소니로 확정되고 그게 억울해서 사람들에게 묻고 직접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결국은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하는 두 여자, 그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것들을 다 알고 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평범하게 동네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 둘이 산다는 게 아직은 우리 현실에서 쉽게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는 사람들,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잣대에 어긋나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집단주의에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김혜진 작가의 동네사람

크고 화려하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도시로 유명한 소돔, 하지만 실은 무자비하고 창궐하고 문란해서 하늘의 명령을 받고 소돔을 없애기 위해 내려온 천사들, 이십년 넘게 소돔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그네로 취급받는 롯, 그는 마을 사람들이 나그네들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려하자 막아냈고 그 일로 천사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된다. 찬사들이 산으로 달려가라는 말에 그는 산보다는 작은 성에 살겠다며 그 성을 불태우지 않게 해달라는 간청을 했고 천사들이 청을 받아들여 소돔만 불태우고 작은 성은 남겨두었지만 롯은 그 성에서도 살지 못하고 결국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작은 성도 언젠가는 제2의 소돔이 될 것이며 인간의 본성,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그러면서도 순수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 이승우 작가의 하룻밤

자신보다 다섯 살 위로 같은 재단의 학교를 나오고 큰오빠와 동창이었지만 그 누구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화언니. 정신이 바르지 않는 엄마와 함께 살며 전문대를 나와 독학사로 학사과정을 따고 조교로 일하는. 좋게 보면 장한 일이고 흔히들 말하는 학력세탁이었다. 하지만 겨울방학 내내 교수의 번역을 함께 하며 영선은 인화언니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먹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그런 인화언니가 느닷없이 조교자리에서 물러나고 휴학을 하고 어느 날 나타나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든 게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한 대가라는 사실에 답답해진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기를 쓰고 바질바질 마음을 다잡아도 현실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다는. 이 변하지 않는 답답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면서도 나도 영선이처럼 금세 내 자리로 돌아올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정이현 작가의 언니

일본인으로 동경대를 졸업하고 우리나라로 유학 온 양코씨, 이대영문과 학생으로 양코씨와 친구로 지내는 태순, 둘은 보통과는 좀 다른 취항이 맞아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환경계획연구소에 다니는 김수근, 세 사람은 당시를 살아가며 지금은 부적합하고 거짓이 사실처럼 인정되는 것들이 미래에는 바뀌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 속에서는 30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지만 읽는 이에게는 오래전의 모습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12년 태순이 바라보는 여의도는 오래 전 그들이 예견했던 미래로 지금 우리들이 내다보는 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정지돈 작가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수상작으로 책 속에 실려 있는 작별을 비롯한 후보작 6편은 짧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마주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두고두고 의문을 갖게 되는 것도 좋다는 것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온 마음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한 권의 책이 전해주는 모든 것들이 특별한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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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침착하지 못하고 충동적일까? - 여러 가지 사례를 만화로 소개하는 성인 ADHD 안내서
후쿠니시 이사오.후쿠니시 아케미 지음, 이호정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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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반짝입니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무기력한 날을 보내는 자신을 볼 때마다 은근한 걱정도 들었어요. 이런 저에게 이 책은 자신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짚어줄 것 같아요. 저자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시간은 특별한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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