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눈앞으로 펼쳐진 눈으로 덮인 세상, 그 어떤 생명의 존재감도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 위로 남겨진 발자국, 둘이 함께였다가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하나가 되고,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별

이 책은 제1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작별과 수상후보작으로 올랐던 6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김유정 문학상이라는 묵직한 어감은 순수문학으로 그에 부합하는 수상작품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손에 쥐어지는 책들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책장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더 컸다. 그라디가 마주한 이 책은 신선함으로 마음을 반짝이게 했다. 거기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한강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설렘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 설렘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신선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울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변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있는 여인은 스물넷에 결혼해 이듬해 아들 윤이를 낳았고, 이혼한 후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십년 째 혼자 키우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이혼을 하고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여인의 삶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날을 보내면서 그녀는 자신이 삶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가는 사물처럼 인식될 만큼 모든 것에 무심했다. 그래서 눈사람이 된 자신을 보고도 무덤덤했고 자신의 몸이 녹아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닌, 살아서 꼭 해야만 하는 거창한 것보다는 남자와의 만남과 아들 윤이와의 대화처럼 보통의 일상이었다.

눈사람이기에 눈물로 녹아드는 얼굴, 바스러지는 손가락, 둔감해진 감각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심장은 녹아내림으로써 눈사람이지만 여전히 인간인 여인을 보며 마음이 아릿해진다. 심장의 온기로 사라질 여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존재와 소멸이라는 깊이감을 더해준다.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막연한 경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덤벼들 기세로 마음의 날을 세우고, 그러다보니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다 좋아진다는데 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는 어려움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우리네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저 주어지는 날을 보내는 살아지는 날이 있고, 그런 날들이 반복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내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살아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내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지금도 버티어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작가는 한 숨 더 깊이 들어가게 한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와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반복되는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존재와 소멸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내 발자국은 하얀 벌판 위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유년기 시절, 동생과 자신에게 강한 존재감을 주었던 오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그 일로 부모님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합의금을 받았다나는 사실은 분노와 굴욕감을 느끼에 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살아있는 자식들보다 죽은 오빠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이해하려하는 여인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린 윤이의 지나친 의지로 인해 생긴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남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로 감당해내야 할 감정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등을 돌리게 되면서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세상살이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미련을 접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 윤이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은 인간으로 남고 싶은 일말의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스러져가면서도 뒤를 돌아보게 되는......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판견 근무로 인도네시아에서 지내고 어린 딸 민아를 시골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자신은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주인공, 그녀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면서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해마다 손이 없는 날 메주 빚던 풍습을 농한기 사업으로 발전시켜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이장, 반면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음흉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 용권, 그 아이 또한 드러내지 않고 집요하게 대진이를 괴롭히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악귀 손은 귀신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강화길 작가의

한밤중 들리는 섬뜩한 소리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데런, 떠나간 디엔과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디엔이 들려주었던 꿈 이야기를 곱씹곤 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이나 읽어야할 만큼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어쩌면 디엔이 떠났다고 믿는 데런이 실은 죽은 게 아닐까. 그래서 모은 게 확실하지도 않고, 모든 게 의문투성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까지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부도덕한 스티치가 의미하는 것은 둘의 사랑이라고 못내 받아들이게 하는 권여선 작가의 희박한 마음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얽힌 일로 시작된 오해. 차에 닿은 것은 종이상자묶음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말이 돌고 돌아 뺑소니로 확정되고 그게 억울해서 사람들에게 묻고 직접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결국은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하는 두 여자, 그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것들을 다 알고 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평범하게 동네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 둘이 산다는 게 아직은 우리 현실에서 쉽게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는 사람들,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잣대에 어긋나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집단주의에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김혜진 작가의 동네사람

크고 화려하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도시로 유명한 소돔, 하지만 실은 무자비하고 창궐하고 문란해서 하늘의 명령을 받고 소돔을 없애기 위해 내려온 천사들, 이십년 넘게 소돔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그네로 취급받는 롯, 그는 마을 사람들이 나그네들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려하자 막아냈고 그 일로 천사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된다. 찬사들이 산으로 달려가라는 말에 그는 산보다는 작은 성에 살겠다며 그 성을 불태우지 않게 해달라는 간청을 했고 천사들이 청을 받아들여 소돔만 불태우고 작은 성은 남겨두었지만 롯은 그 성에서도 살지 못하고 결국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작은 성도 언젠가는 제2의 소돔이 될 것이며 인간의 본성,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그러면서도 순수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 이승우 작가의 하룻밤

자신보다 다섯 살 위로 같은 재단의 학교를 나오고 큰오빠와 동창이었지만 그 누구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화언니. 정신이 바르지 않는 엄마와 함께 살며 전문대를 나와 독학사로 학사과정을 따고 조교로 일하는. 좋게 보면 장한 일이고 흔히들 말하는 학력세탁이었다. 하지만 겨울방학 내내 교수의 번역을 함께 하며 영선은 인화언니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먹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그런 인화언니가 느닷없이 조교자리에서 물러나고 휴학을 하고 어느 날 나타나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든 게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한 대가라는 사실에 답답해진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기를 쓰고 바질바질 마음을 다잡아도 현실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다는. 이 변하지 않는 답답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면서도 나도 영선이처럼 금세 내 자리로 돌아올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정이현 작가의 언니

일본인으로 동경대를 졸업하고 우리나라로 유학 온 양코씨, 이대영문과 학생으로 양코씨와 친구로 지내는 태순, 둘은 보통과는 좀 다른 취항이 맞아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환경계획연구소에 다니는 김수근, 세 사람은 당시를 살아가며 지금은 부적합하고 거짓이 사실처럼 인정되는 것들이 미래에는 바뀌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 속에서는 30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지만 읽는 이에게는 오래전의 모습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12년 태순이 바라보는 여의도는 오래 전 그들이 예견했던 미래로 지금 우리들이 내다보는 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정지돈 작가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수상작으로 책 속에 실려 있는 작별을 비롯한 후보작 6편은 짧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마주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두고두고 의문을 갖게 되는 것도 좋다는 것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온 마음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한 권의 책이 전해주는 모든 것들이 특별한 선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