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이기 때문에 더 가슴 아픈 소설과 영화가 있고,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의 슬픈 이야기를 아주 건조한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어느 순간엔가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짐에 가슴 아픈 책이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가제본)》는 나와는 전혀 관계도 없고 내가 알고 있는 분야에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처음에 ‘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표지 텍스트(가제본)와 영어 책제목 《When breath becomes air》을 보고 그저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가 세상을 떠나기전 쓴 글인가보다.’하는 추측을 했다.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인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가 명작을 골라 읽으며 그 사춘기를 극복하고 고등학교 시절, 전학 후 어떤 가치기준으로 진로를 선택했는지 대학교에서 문학과 의학을 어떻게 함께 공부하게 되었는지 그 인생의 여정이 시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명작의 원전을 인용하며 적혀있어 성장소설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저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 방법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전도양양(前途洋洋) 길을 걸으며 의사로서의 삶 이후에 작가로서의 삶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폴 칼라니티, 성공이란 인생의 정점인 30대 후반에 찾아온 암으로 그의 삶에는 진정 큰 시련이 닥쳐온다. 그 시련 속에서 의사인 자신을 환자로 인식해야 하고 이미 그 질환의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갈등하고 또 결단한다.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와 가족들의 그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어떤 로멘스 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감동을 받았다.
저자는 “죽음은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이 어디인지 질문하고 그 결과로 의학을 선택한 폴. 그런 폴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면 의학적으로 신경외과 분야에 새로운 치료법이나 수술법이 생겨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의사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그 가족 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고 가정과 사랑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면서 내 가슴 속에도 울림 하나로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죽음 가운데에서 ‘삶을 충만하게 살자’고 결심하고 그 남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낸 폴의 아름다움과 눈물의 기록이 이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제본)》에 담겨있다.
마지막 긴 날숨이 공기로 되어 이 세상에 흩어지는 날, 나도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축복이었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남은 그들의 삶에 큰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져서 너무도 아깝지만 그저 떨어진 꽃이 아니라 향기로 살아있는 꽃이 아름답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 어떻게 발간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