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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에겐, 로맨틱 - 나를 찾아 떠나는 300일간의 인디아 표류기
하정아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10개월간의 여행 말이죠. 말도 마세요. 얼마나 힘들었게요.
더러워 죽겠고, 힘들어 죽겠고, 치사해 죽겠고, 무서워 죽겠는데 그게 좋아 죽겠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나에겐 로맨틱입니다.

난 항상 마음속으로 해외여행을 꿈꾼다. 정말 꿈만 꾼다.
어릴 때는 시간이 남아 돌지만 돈이 없어 못가고 나이가 들면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 못가는 게 해외여행이라고... 또 대학생이면 뭣하나. 쏼라쏼라 외국어는 안되고, 까짓것 가는거다라고 마음먹기엔 회사의 내 자리가 불안할꺼다.
그래서 항상 꿈만 꾸며 책이나 사진, 영화로 대신한다.
홍콩의 밤거리에서 실컷 쇼핑을 하고 싶고,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지 보고 싶고,
유럽의 조용한 까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고,
미친 듯이 바쁜 뉴욕에서 나도 괜히 바쁜 척 걸어 보고 싶고,
일본 본토 히츠마부시(장어덮밥)를 먹으며 오이시라고 외치고 싶고,
야밤에 블링블링하는 파리 에펠탑을 보며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감탄하고 싶다.
그런데 나 정말이지 인도는 가기 싫다.
많은 사람들이 첫 배낭여행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인도를 꼽는다지만 난 싫다.
정말 더러워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치사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고 그게 싫다.
그런데 하정아가 그런다. 그래도 저에겐 로맨틱하다고.
뭐. 그래 한번 보자. 로맨틱하다는데. 인도가 로맨틱하다는데. 한번 들어나 보자.
그녀는 이 책의 이야기 방식으로 교차를 선택했다.
인도와 한국이 왔다 갔다 그렇게 말이다. 인도에서 본 모습. 서울에서 있었던 일.
현재와 과거.
경험과 깨달음. 이것들이 모두 교차되어 쓰여졌다.
처음엔 지저분한 인도와 그녀의 화려한 서울에서의 삶을 그녀가 설명하는데로 여기저기 따라다니는데에 급급했다.
48p
식당에서 계산을 하고 돌려받은 계산서 안에 들어 있는 사탕 두 개.
‘뭐야 이건 후식으로 주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보니,
‘아니 이것들이!!!!! 잔돈으로 2루피(50원-60원 정도)를 거슬러 줘야 하는데, 얼렁뚱땅 돈 대신 사탕으로 때우겠다는 거야?!’
인도는 그랬다. 거스름돈 남겨주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귀찮아했다.
처음엔 막 싸웠다.
저 100루피밖에 없는데...
괜찮아. 문제없어.
오오~ 정말요?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돈을 받고는)오케이. 그래. 가봐~.
엥? 잔돈은요?
팁으로 받아둘게.
뭐라고요?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괜찮아. 괜찮다구~.
아니요~, 저기요~! 괜찮긴 도대체 누가.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다시 제 돈 내놓으세요! 나 그냥 갈거야!
정아야. 난 인도가 싫어. 거봐. 지저분하잖아. 거봐. 그 사람들 이상하잖아. 그리고 내가 니 개인적인 삶까지. 경험까지 알아야하니? 너의 프라이버시도 있으니 그부분은 적당히 보여줘하며.
256p
비슷한 세월 살아온 두 여인이,
무슨 연유로 한 치는 저곳에 누워 있고,
또 한 치는 누워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게 된걸까.
나는 왜 한국에서 29년동안 잘 살다가 갑자기 인도를 와서는 네가 죽어 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걸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너는 인도까지 나를 불러 네가 타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걸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분명히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길을 돌아다니는 소가 그녀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그녀의 친구가 정아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모조리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되어 돌아온다. 왜? 너희들은 나를 모르잖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위로받고 있고 조언을 듣고 있는 걸까. 역시 인도라는 나라는 그런 나라일까.
그녀가 불에 타는 비슷한 나이의 그녀를 만난 것 처럼. 나 또한 불에 타는 그녀를 만났다.
그래 넌 정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니?
262p
어쩌면 좋냐.
나는 니가 아직 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