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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으로 갈등해본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소녀시절, 그 마음은 매우 강렬했다. 순정만화를 읽으면서 돈 많은 집의 귀티나는 피부가 하얗고 키는 180센티가 넘는 남자가 어디에선가 툭 하니 나타나서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드시 만화 같은 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막연한 생각의 꿈과 환상은 점차 나이가 들수록 사그라지고 말아 버린다. 허나, 귀스타브 플로메르의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 부인 엠마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완벽한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꿈꾸게 된다.
그녀는 매력적이지 않다. 온통 수동적이고 답답하며 자신을 너무 값진 존재로 여기고 있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있고 매우 학식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감상과 열정만 넘치는 싸구려 연애소설이며, 단순히 ‘있는 척’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상만을 찾던 보바리 부인의 비극이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불행했다. 절대로 만족하는 적이 없었으며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조차 없다. 그녀의 그런 점을 전혀 알지 못하는 둔탱이 남편 샤를르와 함께 있을 때나, 그녀가 쉽게 넘어올 것이라고 믿고 그녀를 꼬셔대었던 로돌프와 함께 있을 때에도, 그녀가 진짜 ‘사랑’으로 좋아했던 레옹과 함께 끊임없이 정사를 나눌 때도 그랬다. 욕망은 넘쳐나고, 절대를 향한 갈증은 끝을 달린다. 하지만 그 끝은 ‘허무’뿐이다.
“ 너무 큰 행복을 기대하다가 오히려 행복의 샘을 송두리째 고갈시켜 놓으면서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 -p.420
그런 그녀가 ‘샤를르’를 만난 건 어쩌면 가장 큰 행운이었으리라. 사실, 작품 자체는 보바리부인을 타이틀로 내걸면서 그녀의 감정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상 놓치는 부분이 샤를르가 아닐까. 샤를르는 엠마가 그토록 지겹게 생각했던 현실, 안주, 평안의 삶을 가진, 즉 욕망, 희열, 정열, 도취 따위의 감정이 결여된 재미없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엠마가 그토록 바람이 나고 투덜거려도 꿈쩍도 하지 않고 끝까지 주변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다. 참, 이상한 것은 샤를르가 작품 전체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평상시 꿈을 꿀 때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살다가 잠을 청하면 우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우리는 순정만화에서 보았던 많은 신데렐라와 같은 꿈들을 꾸기도 한다. 그 속에서 온갖 욕정과 욕망들을 채우고 아침이 되면 꿈에서 깨어난다. 샤를르는 우리의 ‘현실’이고 엠마는 우리의 ‘꿈’이다. 엠마가 죽었다는 것은, 꿈에서 깨어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 샤를르에게는 무한히 큰 덩어리들이, 가늠할 수 없는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p.476
샤를르는 엠마가 죽을 때까지 엠마가 어떤지 알지 못했다. 죽고 나서야 그녀의 고통과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보였던 것이다. 엠마는 이미 어느 순간부터 장님 거지의 추한 얼굴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늘 이상만을 쫓다가 눈이 먼 장님이 되는 것과 같다. 현실은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 보바리 부인이며, 추한 장님의 모습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