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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노블마인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묘지에서 유령과 함께 성장한 소년의 성장기
판타지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가슴설레이고 환상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즐거움과 섬뜩함이 글이라는 도구로 완연히 빛을 발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 즉 이야기꾼들은 어디서 그런 소재거리를 찾는 것인지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재능, 그 이야기꾼들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 그 현상 중에서 우리는 '닐 게이먼' 현상을 사랑한다. 최근에 읽은 <인터월드>에서 그의 재능을 발견했다. 진정 천부적인 서사적 감각과 긴장감을 엮어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 없다. <인터월드>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이 작품 <그레이브야드 북>에서 우리를 자신이 창조한 완전한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일가족이 살해당했다. 그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가 침대를 빠져나와 공동묘지로 도망친다. 그런 아이를 묘지에서 살고 있는 죽은 사람들이 열 다섯살이 될 때까지 키워준다. '죽음'을 대표하는 묘지라는 공간속에서 한 아이가 키워진다는 설정은 기괴하면서도 섬뜩하지만 '아기'라는 순수 무결의 생명체를 투입시킨 덕분에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분위기는 팀 버튼 감독이 선사해주는 으시시한 영화들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되면 그런 풍이 느껴지지 않을까.
생명과 죽음, 인간 세상과 유령의 세상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인간 소년 '노바디 오언스'는 인간이 겪는 삶의 고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한다. 중간부터 속력이 붙는 감칠맛 나는 스토리 전개는 이들을 따라가면서 미친듯한 즐거움에 돌입한다. 게다가 유령들이 무섭지 않다. 이건 개인적으로 나에게 놀라운 변화이다. 보편적 공포의 존재재들도 이토록 보통으로 탄생할 수 있단 것이니까. 보호자 사이러스는 글을 가르치면서 인간 세상에 가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그를 포함한 유령들은 노바디에게 유령만의 능력까지도 전수해준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가득 받아 무럭 무럭 커간다. 이런 설정은 은근히 <타잔>과 닮아 있단 생각을 했다. 고릴라의 세계에 빠져버린 한 소년의 성장, 그리고 인간 세상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에피소드, 무대를 바꾸기만 하면 이렇게 놀랄만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하지만 역시 타잔도 자신 본래의 세상이 궁금했듯이 노바디도 그렇게 원래 태어났던 곳이 그리웠을 것이다.
이 정도의 소설이라면, 성장 소설로써 가치가 충분한 듯 보인다. <인터월드>도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터라 개인적으로 닐 게이먼의 팬이 되버렸다. 분명 묘지의 세상이 더 안전했겠지만, 노바디가 험하고 가식적이며 이기적인 인간 세상으로 나갔던 만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용감하게 껴안아야 할 것 같다. 죽음으로써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를 배워나가는 신비하고 기이한 판타지 <그레이브야드 북>을 또다시 읽고 싶어 졌다. 아, 나도 이런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