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깊고 깊은 삶의 교감을 말하는 현대판 고전

 

얼마 전에 영화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무명 배우, 저예산, 적막한 스토리, 다큐라는 가장 최악의 조합인 한 영화가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바로 <워낭소리>이다. 산골에서 살고 있는 한 노부부와 그들의 늙은 일소의 우정과 감동을 그린 이 영화는 특별한 스토리 전개도 없고, 대단히 화려한 장면이 없음에도 관객들의 마음속에 오래 잠들어 있는 ‘진정한 인간애’를 자극하였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과 동물이라는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말없는 눈빛 우정’을 정말 제대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먹먹한 가슴을 잠재울 수 없어 울었다. 동물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월,E>도 그런 맥락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와 같이 ‘말없는 감동’을 선사해주는 작품이 또 하나 탄생했다. 바로 이 소설인 <에드거 소텔 이야기>이다.

 

아마존, 뉴욕 타임즈 종합 베스트 1위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보다가도 단순히 인간과 개에 관한 우정이라고 쉽게 판단해버려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표지 디자인에 민감한 나로서는 표지에 만점을 넉넉히 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뛰어난 색감에서 오는 감동과 한 남자와 그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개의 애틋함은 책에 손이 여러 번, 아니 늘 가지고 다니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조심스럽게 펼치는 순간, 나의 머리와 가슴으로 다가오는 이 놀라운 소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처음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마치 들녘에 몰아 붙은 한 어린 시절의 목가적 추억이라 할까. 그런 느낌으로 소텔 가족들을 소개하고, 에드거 탄생을 말하며, 앨먼딘이라는 충실한 개 이야기를 물 흐르듯 읊는다. 정말, 읊는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씹으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도 엄청난 두께와 양에 비해, 씹을 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만큼 문장력과 문체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뚜렷한 배경묘사는 물론이거니와 삶과 운명에 뒤흔들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독자들이 이 한 소설, 아니 ‘에드거 소텔’ 이란 캐릭터에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어 준다.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감동적이면서도 냉정하다. 아, 이러다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비밀’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말 못하는 아이가 된 주인공 에드거와 그의 충견 앨먼딘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것 같다. 손으로 표현하는 그만의 세계에서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깊이 이해하고 탐닉한다. 오히려 그런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더 괴롭고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후반에 갈수록 갑자기 급변하는 전개는 그가 얼마나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기 싫은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느낌이지만 끝까지 난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데뷔 소설에서 이런 캐릭터를 창조하다니, 그저 작가의 능력이 탐날 뿐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현대판 <햄릿>이란 수식어가 끊임없이 붙어있다. 뭐, 그렇게 볼 수 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에드거 소텔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족과 가족 이상의 우정을 가진 개들이 있다. 인간의 끊임없는 애정의 결핍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닐런가한다. 날카로우면서 치밀한 구성력과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 속에서 오랜 교감의 끝을 맛보았다. 이렇게 깊이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늘 상 찾고 있는 명품 고전들처럼 오래도록 독자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에서 나는 또 다른 깊이를 찾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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