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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홍지윤.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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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법사들의 향연을 따라가는 여행
빛은 마법사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색’이란 것도 모두 빛에 따라 우리의 눈이 느끼는 것뿐이다. 빛이 사과를 보고선 “넌 붉은 색이야”라고 말하면, 그대로 우리 눈앞에 실현되는 것이다. 세상을 만들고, 만물에게 색을 부여한 빛이란 마법사. 그 마법사들은 미술세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숨겨져 있었다. 항상 신과 인간이 화풍의 중심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미를 창조해 낼까 고민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빛의 마법사가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이후 최초의 총체적인 미술 혁신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뒤흔드는 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인상주의’이다.
빛이 그림의 중심이 되는 것. 인상파 화가들은 색의 근원이 빛과 대기임을 깨닫고 기존화풍의 틀을 과감하게 부수어버린다.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빛으로 무장한 인상파 그림들은 세기와 국가를 넘어서 한결같은 그리움으로 사랑을 받는다. 나 역시도 너무 좋아해서 그들의 그림 앞에선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유럽 배낭여행 당시 인상파 그림들의 원작을 직접 감상했을 때 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연인과의 첫 데이트 때 첫 키스를 할 때의 기분이랄까. 뭐 비슷하다. 그만큼의 짜릿함과 환희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없이 반가웠다. 이미 두꺼운 유럽 가이드북만 가지고 뚜벅 뚜벅 걸어 다닌 어설픈 유럽여행을 했는데,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만나게 되다니. 잔뜩 찌푸린 아쉬움이 내 핀잔을 건드렸다. 그래도 이런 예술이나 여행 관련 서적들은 ‘대리만족’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만으로도 사랑받기 때문인지, 나도 최대한 만끽하려 했다.
저자들의 이력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여행 작가인 언니와 미술 큐레이터인 동생이 함께 지은 것으로 두 전문가 자매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톡톡히 살려 알뜰하게 만들었다. 여행 가이드북의 필수 요소인 다양한 ‘코스’ 소개와 함께 대표 화가들의 간단 이력. 그리고 눈을 즐겁게 가득한 그림과 사진들이 풍성하다. 주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박물관과 그들이 머물렀던 곳, 그들이 자주 그렸던 장소를 중심으로 길 따라 그림 따라 기분 좋은 발걸음을 한다.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 바르비종, 샤투, 지베르니 등 눈에 익은 풍경들이 이 책을 통해서 자유를 만난 것 같이 환하고 아름답다.
다행이도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은 경험이 있어서 인지,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에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여행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처음 읽는 분들은 꾸준히 잘 따라가야 할 것이다. 특별히 관심 있고 좋아하는 화가만을 선택해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르누아르 그림들이 보이는 장면들만 선택해서 먼저 보았다. 인생의 큰 굴곡이 없고, ‘슬픈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유일한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르누아르의 그림은 언제나 빛나고 사랑스럽고 따뜻해서, 보고만 있으면 인간의 밑바닥 감정들이 그나마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오래도록 남아 많은 작품을 그렸다 전해지는 프랑스의 샤투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친한 모네와 함께 그곳에서도 인상파 기법 연구도 했다하니, 구석구석 얼마나 귀엽고 예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도 필히 가봐야겠다. 그의 위대한 작품인 ‘수련’의 무대가 고스란히 있어 요정들의 천국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이 책으로 살피다 보면, 언젠간 다시 그곳으로 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볍게 품었다.
꼭 인상파를 중심으로 유럽 여행을 할 목적이 아니어도 읽기 좋은 책이다. 꼭 미술을 많이 알고 작품을 많아 알 필요도 없다. 유럽을 가봤을 필요도 없다. 그만큼 그냥 느끼고 즐기고 행복해 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그 가치를 해내는 책이다. 화가들의 이야기인거에 비해 표지 디자인이 다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푸욱.. 빛의 마법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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