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삶 속에서 피고 지는 인생의 꽃향기를 닮은 소설 오래전 기억이 내 뇌리를 스쳤다. 언제 였었는지 기억도 가물 가물 한데, 내가 아마도 중학생이였을 무렵인 것 같다. 두꺼운 검정색 뿔테 안경을 끼고 헐렁한 옷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이 엄마가 너무 좋다면서 우리집에 하루 이틀 머물고 간적이 있었다. 다소 말투가 조금 어눌해 보이시는 분이였지만 항상 웃고 계셨고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었다. 아주머니가 가고 한참 후회 엄마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금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많은 구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분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했다. 갑자기 <브리지 파트너>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이지만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을까라는 심정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나이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여자로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저 뒷 동산의 그림자인거 같다고나 할까. 이 한정희님의 소설 <브리지 파트너>는 온통 뒷 동산에서 사그러들고 있는 뿌리박힌 꽃들을 하나씩 뽑아버리는 것 같다. 총 7개의 단편 소설이 모여있는 책이지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중년' 그 시대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 그리고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제일 먼저 찾아오는 <웃으면서 죽는 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째서 자살부터 시작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끈덕진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자살의 모양과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어쩐지 풍자적 느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절친했던 친구 현임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웃을 수가 없었다. 몸이 일그러진다는 루게릭 병과의 10년동안 싸워온 친구와 상처난 가죽 가방. 다소 어색해 보이는 관계 속에서도 저자는 묘한 연결성을 확립해갔다. <유희>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쫓겨난 남자와 필리핀 여성의 만남. <브리지 클럽>에서의 외교관 부인과 <브리지 파트너>에서의 각자의 사연때문에 영국을 가게 되는 브리지 게임의 파트너 남녀 등 다문화적 사회와 직업을 불문하고 중년 여성들의 어둡고 슬픈 느낌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후기 인상파 화가 세잔이나 고갱의 그림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색채는 진하고 불투명하다. 하지만 예외적인 작품도 존재를 한다. <나쁜 자식>은 밀쳐 떨어진 여자의 아이가 세속적이고 이중적인 어른들의 세계를 파고드는 이야기로 비판을 연결 짓는다. 자식들이 다 크게 되면 반항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또 부모의 곁을 쉽게 떠나 버리게 된다. 자식만 바라보는 삶을 살다가는 갑자기 찾아오는 실망감과 외로움을 참을 길이 없어질 지 모른다. 거기서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배신하고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허다하게 많은 게 사실이다. 이 소설은 특별히 어려운 표현을 나열하지도, 비꼬거나 적나라게 들어내지도 않은 무척 객관적인 느낌으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저자 스스로가 중년이어서 그런지 더 깊고 다양하게 중년의 여러 삶들을 탐색해준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나도 이와 같은 삶에 부딪혀야 할 때가 오겠지만 '이해'라는 것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맞이하고 싶어졌다.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고 곧 다가오는 내 삶을 이해할때 비로소 이 책에 담겨있는 인생의 꽃향기는 은은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