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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가정의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애무!
어느날 뉴스를 켰다. 어느 집에 엄마와 아들 2명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참 안타까운 가족사이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는데 아뿔사.. 그것이 그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 그것도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인 20대의 남편이 홧김에 흉기로 살해하고 그 흔적을 없애고자 저지른 방화였던 것이다. 너무도 끔찍하여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것이 시대가 낳은 비극일까? 진정한 현실일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는 현실, 그 속에는 안타깝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해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건 사고가 많아지면서 외부모가 많아지고, 자식을 잃은 실의에 빠지기도 하며, 이상과 현실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괴되는 가정에 대한 진지한 해부, 그것이 바로 <붉은 애무>의 초첨이다.
보험회사 직원인 주인공 '펠릭스'가 갈랑드 가 화재 사건을 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잔 델벡과 아들 브루아는 화재 초기에 자취를 감추었던 모자로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한다. 잔의 어깨에 새겨진 문신, 고슴도치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무었일까?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고슴도치 가족들은 부둥켜 안을 수가 없다. 가족이라 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사라지는 모든 것을 애써 그렇게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안타까울 뿐이였다. 그 모자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펠릭스는 또 뭐란 말인가. 그의 일생은 마리에 대한 배신과 콜랭에 대한 집착으로 일순간에 성정체성 혼란까지 극에 달한다. '붉은 애무'의 립스틱이 그렇게 피와 같은 잔인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이토록 찢어지도록 아픈 것은 그들이 불쌍해서라기 보다 이런 상황들이 진짜 현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로써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이 시대 곳곳에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역할에 재미가 들렸다는 펠릭스를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 나를 억누른다. 이렇게 가볍고 얇은 책이 이토록 무겁게 독자들을 짓누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러기 가족인 것도 같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훨훨 떠난 철없는 부모들의 실태도 같으며 가족애가 부족해진 현시대의 모든 사람들같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얼마나 섬세하고 진지하게 표현했는지 읽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주인공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아주 자세하고 은밀하게 말해주고 있어서 읽는 내내 숨이 멎어 빨려 들어갔다. 눈동자는 빠르게 굴러가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붉은 애무>는 이처럼 독자들을 빠르게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지닌 꽤 괜찮은 소설이다. 얇은 책에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의 탄탄한 스토리마저 가지고 있어서 부담도 없고 단숨에 삼킬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세상에 대한 한탄과 씁쓸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