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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모두 소설 같은 삶이다.
오늘 아침도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책을 한권 들고 최근에 구입한 번쩍거리는 가방을 들고 출근을 했다. 지하철 속에 갖혀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답답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내 마음이 갉아 없어지는 것만 같다. 누군가가 날 그렇게 몰았던 건 아닐까하는 호소 아닌 호소도 해보고 싶다. 그것을 타라.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인다. 인생이 그렇게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위 언저리에 몽롱하게 피어오른 이슬이라도 타보아라. 그럼 어느새인가 나는 이미 목적지에 닿아 있다. 가슴에 한줄기 빛이라도 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소설 <그것을 타라>은 그런 느낌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같은 수필. 성년의 세계에서 유년의 세계로 거슬러 오르며 타고 드는 인생의 빛과 그림자들을 다루는 저자가 주인공인 소설인 것이다. 표현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글로 옮기면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남편이 부도를 맞이하고 청소부로 인생을 살아왔던것. 허름해보이는 어떤 노인이 자신에게 순수한 결정체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를 열심히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일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제들 간의 조약돌같은 추억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시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저자만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웠다. 이런 표현들이 마치 내 마음을 하나씩 다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수필은 이런 맛으로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너풀거리면서 쏟아붙는 눈꽃송이들을 보면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저자만의 아름다운 표현이다. 누구를 만났고 그와 무슨 사연이 있었는 지는 그저 인생이 돌아가는 마차의 뒷 바퀴만큼의 의미밖에는 안될 지도 모른다. 허나 작가는 그것을 자신의 수필로 담아내었다.
" 그것을 타라. 세상의 모든 빛깔과 소리와 움직임이 하나로 봉인된 그것을 타라. 성난 파도가 뱉어내는 한 방울의 포말을 타듯이, 지축을 흔들며 용트림하는 폭포의 물줄기로부터 튀어 오르는 작은 물방울 하나를 잡아타듯이 그것을 타라..타라..타라."
-p.49
그렇게 만남은 부둥켜 부딪혔다가도 뿔뿔히 눈물로 흩어져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연히 오래전 가던 길을 걸어가다 보면, 거기서 함께 했던 친구, 애인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했던 말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곱게 추억으로 밖에 만날 수 없지 않은가. 그것들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황홀하고 섬세한 표현력으로 덤덤하게 말해준다. 마치 눈에서 그 그림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과 같은 빼어난 묘사력이 확실히 놀랍기도 하다. 이런 책은 언제나 환영한다. 청소할 때 만났던 몸이 비틀린 인동씨, 다이아몬드의 노사장님, 달마 그림의 스님, 아버지의 미수꾸리.. 이들 모두 찾아보면 바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는데 제대로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었나보다.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 되버린다.
저자가 말하는 무(無)의 상황. 허상일 것만 같고 과거가 되어버린 실체와 경험들.. 그 속에서 작은 풀잎이 되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쓸쓸하지만 현실이 그런것 같다. 나도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서 살고 싶지 않으면서도 끝내 아주 높은 나무를 처다만 보다가 이렇게 저렇게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이름 없는 풀잎이 되어보라고 말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 따스하고 고마운 생각이 드는 책이다. 애써 머리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소설같은 수필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매력적이여서 이 책을 선택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그것이 내가 말하는 이 책의 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