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 책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을 겁내는 사람이 삶도 겁낸다.” – 영화 꾸빼씨의 행복여행 중에서

 

이 책을 읽는 중간에 마침 꾸빼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덕분에 무겁게 시작되었던 죽음이라는 제목의 책읽기가 조금은 수월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삶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결국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다. 특히, 오늘 자본주의가 천박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만큼 극한의 물질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는 세대에, 중년의 나이로 이 세대의 흐름안에 살고 있는 나 또한 삶이 두려울 때가 있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 나의 부재로 인해 겪을 가족의 고통이 가장 큰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고, 그래서 삶이 두렵다. 그래서 죽음도 있고 살고, 덧붙여 삶도 잊고 산다. 살아내야 할 삶이 살아지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대답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조용한 돌덩어리가 심연의 호수에 떨어져 그 파문이 기슭 곳곳에 닿는 것처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내려 놓은 후에도 아직 그 여운이 길다.

 


이 책 <죽음> 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근사 체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에, 과학적으로 죽음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과학은 가설, 실험, 논증, 정의 등의 과정을 거쳐 보편적 진리가 되는 것인데, 가설이나 실험에서 갖추어야 할 충분한 데이터는 아무리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여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근사 체험자들의 증언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이 근사 체험자들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기만 하다.


 

근사 체험 이후의 삶이 그 이전의 삶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소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사례도 그간 신뢰할 수 없는 매체들을 통해서만 접했을 뿐이니 후속편을 기대하는 것으로 달래려 한다.

 


내가 만약 근사 체험을 하게 된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안 할 수 없다. 이러저러 생각을 하며 읽기를 계속할 때

소개된 죽음교육 파트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묘비명과 유서를 써 보는 부분은 올해의 마지막 달에 꼭 해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묘비명을 아내와 딸에게 남기고 내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 묘비명을 써달라는 부탁을 유서에 적어 놓으려 한다.


 

세계화된 천민 자본주의와 죽음의 부재, 즉 죽음에 대한 인지의 부재를 묶어 설명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경종이 사뭇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 권력과 힘과 자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당연하고, 남들도 그렇게 살고, 그러니 너도 아무런 고민 없이 이 

당위(?)에 동참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주술에 걸린 현대인들의 삶을 

아프게도 고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고발이 주는 효과가 개인과 사회에 어느 정도일 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지는 너무 모자라고 모자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서문에 나오는 쿠마의 무녀 이야기가 생각났다.

 

쿠마에서 한 무녀가 조롱에 매달려 있는 것은 난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야, 넌 무엇이 소원이냐?”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고 싶어

T.S 엘리어트 <황무지, 프롤로그 중에서>

 

아폴로에게 영생의 복을 받은 무녀는 그러나 젊음은 받지 못하고, 천년의 세월을 살아 결국은 그 육체가 쪼그라들어 조롱에 갇혀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책에서도 영생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이 소개되어 있지만, 영원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인데,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오늘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다른 나라는 수백년이 걸린 성장을 

수 십년 만에 압축해서 이루어낸 한국인들에게 이 죽음에 대한 질문이 

어떤 방향으로 갈 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위정자들은 성장의 동력을 잃을 지 모른다고 터부시 할 지도 모를 일이고, 기업가들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외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자신의 정리된 생각이, 인생을 관통하는 기준으로 설 때, 각 개인 스스로 행복할 것이고, 선진화된 사회라고 부르는 우리 

사회가 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교육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고 400여일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얼개와 걸개를 만든 EBS 팀의 노고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연중 기획도 좋고, 심층보도도 좋고, 10년 계획도 좋고 

우리 사회의 공론의 장에 죽음을 꺼내서 이야기 하고 교육하는 실질적 행위들이 있을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작업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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