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The F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장콕도는 영화를 통해 외적인 실험을 펼친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음껏 그려낸다. 예를 들어, 꽃의 죽음을 거꾸로 재생시키며 그것의 복원을 그려내거나(오르페의 유언)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주며 바닥에 놓인 물을 벽으로 표현(시인의 피)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영화라는 도구, 카메라라는 도구의 활용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영화의 내적인 이야기 속에서 변화를 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안달루시아의 개'는 브뉘엘이 꿈꾸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시작이었으며, 데이빗 린치의 기괴한 세계 역시도 그만의 이야기가 만든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감독 타셈 싱 역시도 그런 독특한 세계를 그려내고자 했던 감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의 전작 '더 셀'이 꿈속의 세계를 끊임없이 노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더 폴'은 다르다. 이는 오히려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순수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무식하다. 또는 직설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마 그 누구라도 당연하게 생각했을 CG를 비롯한 특수효과는, 그러나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야 알았다. 그렇게 미적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직접적으로 그려낸 것들이라니!!! 

 

 하지만 영상에 도취된 나머지 이야기는 약간 위태로운 감도 있었다. 꿈을 잃어버린 남자와 꿈이 넘칠 나이의 소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오히려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측면이 강했기에 말이다. 그것은 너무도 순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는 동화적인 상상력과 다분히 충격적이면서도 기괴한 상상력이 엇물리며 마찰을 가져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 자체가 그들의 대립으로 표현되었지만!!

 게다가 타르코프스키가 그러했듯이, 영화는 몽상의 이야기와 현실의 이야기를 잘 접목시켰다. 즉 이야기 자체가 현실의 인물들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속에 놓여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에는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뛰어난 영상과 조화를 이루어나갔던 점이 상당히 놀라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하게 생각되던 그 풀리지 않던 의문 역시도 마지막에는 전부 해소되었다. 

 결국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에 나왔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옛날 그분들의 작품. 마임과 스턴트의 황제였던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 그리고 이외에도 자신의 몸을 영화의 도구 삼아 희생하셨던 모든 분들의 활약상까지~ 이 장면이 있었기에 이 작품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전혀 없었던 이들에게는 말이다. 

 

 영화는 이야기와 영상이 함께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가는 이는 결국 배우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며, 관객들이 그렇게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위한 영화! 영화에 바치는, 그리고 모든 배우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와도 같은 이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기나긴 시간동안 유지시킨 열정에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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