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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ㅣ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백년째 열다섯 살로 지내는 삶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가끔 불멸의 삶을 꿈꾼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하고
내가 보지 못할 세상이 궁금해서다.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생각을 하면,
무언가 모르게 무척이나 아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를 만나고 나서 불멸에 대한 소망을
가진 모습 그대로 내려놓았다.
야호의 우두머리 '령'을 구한 대가로 '종'야호가 되어 계속된 삶을 살아가는 가을이.
계속되는 하루하루를 다이어리 쓰는 것으로 그저 묵묵히 '견디는' 가을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함께 흘러가지 못하고 열다섯에 멈춰 있는 가을이.
중간고사를 따로 준비할 필요없을 정도로 그 나이의 삶이 그저 무료할 가을이.
목숨을 건진 대가가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을이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구슬을 삼킨 순간 육체의 시간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령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는 듯한
악에 받친 가을의 외침과 발악이 귀에 쟁쟁하다.
그렇게 가을은 계속 아파한다.
오백년째 열 다섯인 자신의 삶을 저주한다.
언젠가 결국 떠나거나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인간과의 모든 관계에 대해서 기대함이 없다.
이토록 강력한 부정에너지도 해결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도움으로?
그것 봐. 너는 가을이야. 나는 상관없어.
네가 야호든 뭐든 다 괜찮아.
너는 가을이니까.
(p.166)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신우.
운명같은 만남의 연속 선상에서 만난 그의 존재가
그를 좋아하는 가을이의 마음에
결국, 봄의 햇살을 부여한다.
생을 끝내는 건 불행일까?
생을 계속한다는 건 축복일까?
야호로 살아간다는 건 저주일까 선물일까
(pp.198~199)
나에게만 멈춰있는 시간.
모두에게 흐르는 시간.
그 시간 자체가 질문이었을 가을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질문이었을 가을이.
춘희, 선화, 지현, 혜교, 진주, 지금의 가을로..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스스로를 축복하지 못했던 가을이가
신우를 만나 신우를 위로하며 신우에게 들려 준 말처럼
존재의 틀을 조금씩 깨고 나오기 시작한다.
좁고 어두운 곳에서 계속 그렇게 문 닫고 살면 답답해.
문 열고 나와야지.
(p.35)
성장통을 겪고 있을 십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존재가 질문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멀리서 답을 찾고 있을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의외로 주변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서 더욱 그렇다.
종야호가 되고서부터
가을이가 갖게 된 운명같은 질문.
"늙지 않는삶. 계속 되는 나의 삶은 저주가 아닌가?"
성장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질문은 언제나 통증을 동반한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질문이 불편해서 아프고,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기만 한 무한한 시간들의 무게가 무거워 아프다.
그래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성장통이 존재한다.
그러나 령, 휴, 수수, 유정, 신우와의 시간을 통해
가을이가 질문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시간을 무게를 버텨 온 용감한 가을이라서
숱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만남의 깊이를 더해가는 가을이라서
만남을 통해 답을 얻어나간다.
유한한 삶이지만
오늘이 계속될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라서
사실 우리 한 명 한 명은 가을이인지도 모른다.
삶에 다치고,
시간에 다치고,
만남에 다치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분명 또 다른 가을이다.
그러니 우리도 가을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한 번 만나보길 바란다.
그리고 신우에게 해 주었던 가을이의 말을 빌어,
오백년째 가을이를 만났을 모든 존재를 대신하여 가을이에게 전한다.
"잘 성장했네!!
너의 성장통은 우리에겐 또 하나의 배움이 되었단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