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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2. 한계가 있는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3. 인간의 나쁜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
4. 항상 ‘받아 마땅한’ 만큼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5. 탈산업화 지식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6. 금융부문과 실문부문이 더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7.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8. 세계경제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은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한다.
■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
스마트폰은 지식경제산업의 결론이다. 이제 공간과 시간에 관계없이 우리는 이 괴물을 가지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취미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출, 퇴근시 1시간 20분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객차 안을 둘러보자면, 적어도 70% 이상의 승객들은 모두 스마트 폰의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이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제 인간은 쏟아져 나온 기술혁명을 통해 적어도 정보측면에서 공평하다. 그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우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남들에게 뒤쳐질까봐 스포츠, 게임, 드라마, 영화에 무섭도록 집착한다.
이 기계 덕분으로 더 이상, 드라마와 뉴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찍 귀가를 서두를 일도 없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몰래 책상에서 딴 짓을 할 이유도 없다. 회사가 멀면 어떤가? 하루에 세간이 걸려도, 그 시간동안 충분히 평소의 관심꺼리를 즐길 수 있는데, 그것도 한달에 불과 몇 만원만 내면 되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매끄러운 기계하나만 있으면. 식구들이야 뭐, 가족이란 것은 이미 최근의 경제상황에서 해체된 지 오래인데..
■ 이것은 우리가 알 듯, 모를 듯 하다.
사람의 뇌도 가끔 쉬어야 한다. 물론, 적당한 시간 숙면을 취하는 동안 충분하다 할 수 있겠지만, 때론 좀 멍하니,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 업무에 대한 고민과 실연에 대한 고통이 아니라면, 때때로 차창너머도 바라보고, 사람들도 둘러보며 우리 주위에 대한 여러 가지 잡생각도 필요하며, (뭐 일부 사악한 추행범은 논외로 치자) 아니면 정말 멍하니 눈을 뜨고 있으되, 무념무상한 시간도 필요하다. 시간낭비라고? 천만에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우리가 시간 낭비하는 것이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이런 시간 낭비는 도리어 생산적일 수 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의 판매성공은 이러한 우리가 늘 해왔던 휴식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이런 쉴 시간외에도, 회의시간에도, 심지어 업무보고시간에도 당당하게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뿐인가? 귀가하고도 거실에 앉아서도 스마트 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스마트 폰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어플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없이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 콘텐츠들의 집요한 공격에 사람들은 오직, 일, 그리고 스마트 폰만 있으면 되었다. 굳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음, 스마트 폰 사용료를 제 때 내야 하기 때문이라면 다소 지나치겠지?
■ 이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다.
한번 따져보자. 스마트 폰이 생기고 나서, 혹시 업무시간이 늘지 않았는가? 드라마나 뉴스시간에 맞출 필요없이 귀가길에 다운받아 보면 되니까, 잔업시간이 길어지지 않았는가? 지방에 내려 왔다는 핑계로 휴일은 회사일에서 벗어났다 싶었는데, 이 기계로 전달된 메일을 확인하고, 저장해 놓은 자료들을 가지고 산 중에 있는 사찰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 경험은 없는 가? 잘 지내고 있겠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며 느긋하게 기다리던 응답에 대한 궁금증이, 당연한 기능으로 인해 조그만 늦어지면 화를 낸 사례는 무수히 많지 않은가?
문제는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고는 열심히 일을 시키면서 기본료라는 이름으로 거의 모든 국민들로부터 일정액을 꼬박꼬박 받아내고 있는데, 이걸 너무 당연시 하는 소비자들은 아무 저항없이 경쟁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폰이라는 노비문서를 도리어 자랑스럽게 흔들고 다니고 있다면 좀 황당할 정도의 과장이라고 질책을 받겠지만, 그렇다. 이렇게 온통 장난감 하나를 쥐어 주고는, 한 눈 팔고 있는 사이에, 일부 소수자들이 하나씩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아 가며, 온통 분탕질을 치고 있는데도 그것에 대한 저항이 없다면 노비문서와 다름없을 것이다.
■ 경제논리가 아닌 것도 있다.
어제 아침, 평소처럼 집 앞에서 전철역까지 타고 갈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역까지 태워 주겠단다. 50대 중반의 부부, 부인이 운전하며, 출근길 남편을 역까지 데려다 주는 참에 빈 뒷좌석에 나를 태워 주겠다는 친절이다. 아마, 숙취에 멍한 내 몰골로 보면 설마 뒷자리에서 강도로 돌변할 확률이 0%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이대로 새우잡이 배에 끌려간들 내 저질 체력을 확인하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뭍으로 되돌려 보낼게 뻔하므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올라탔다.
올해만 해도, 봉고 등 몇 차례의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신기할 정도로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으나, 한번 신세진 분들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태우기 위해 일단 차를 정차, 다시 출발하고, 늘어난 무게로 인한 연료소비 증가, 혹시 가벼운 사고라도 나면, 변상의 책임과 왜 태워 가지고 하는 원망 등등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현대사회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친절이라고 흉을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슬쩍 오늘 아침도, 그런 친절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주머니 속에 건네 줄 사탕 몇 개를 비축했다만...
■ 이제야 장하준 교수를 말한다.
당치않게 장하준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집필 방식을 엉뚱하게 흉내내면서 시작한 것은, 저자가 얘기한 23개의 토픽에 대한 하나하나의 대꾸가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 책으로 시작하면 도대체 그 끝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자만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http://blog.naver.com/jjjang60915/100067146337 ’들의 후속편. 즉, 개괄적이며 정책적인 개념의 전자에서 3년이 지난 보다 확실한 실패한 세계화의 대표적 유형들과 소위 자유무역, 시장경제라는 허울뿐인 가면 속에서 역사와 세상을 유린하는 말뿐인 ‘정의’에 대해 그들의 논리를 경제학적으로 그대로 반박한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 소비자와 정책입안자가 한번쯤 고려하고 행동해야 할’ 지침서로 짧게 요약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적당할 것이다. 그저 덧붙이자면, 최근에 읽었던 마이클 샌텔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리스토 텔레스부터 시작된 인간의 덕목과 상반되게 흘러오는 사회심리적인 문제를 강조했다고 하면, 장하준교수의 신간은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비도덕적 행위들을 지적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소위 ‘금서’의 저자가 새로 쓴 이 책은 절대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자본주의가 정의로운 정부와 시민의 합의하에 얼마나 더 큰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사례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보다 나은 사회, 나눔의 사회가 공정사회라는 최근의 화두를 견주어 본다면, 이 책이야 말로, 절묘할 정도로 시기적으로 딱 맞게 그 해법을 제시해준 책이 아닌가 한다.
■ 시민의식, 유창한 겉치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불과 몇 십년 전, 젊은 시절을 보냈던 시절 (아, 물론, 내가 뭐 운동가거나, 적어도 의식이라도 제대로 있었다고 거짓말 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소설책이나 읽으며 소주잔을 좋아한 모범적인 우파일 뿐이었다), 그 정치적으로 어렵던 시절에도, 그 땐 세계화가 막 시작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거세고, 활기차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토론과 고민이 있었다. 젊은 세대를 욕하자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런 의식하에 세계에서 몇 위라고 국격을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국격은 ‘개에나 주어 버린(요즘 개를 너무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의 세태가 아쉽고, 또 아쉽다. 사찰이라 하면, 그 때가 더했고, 빈곤하다 하면 그 시절과 비하겠냐마는, 이젠 거의 포기상태, 아니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리사회는 싸구려 서비스업에만 몰리고, 재벌기업에 예속되어 가고 있다.
몇 십원 싸다고, 기름값 들여 대형마트로 가는 것이 도리어 손해라는 분위기가 시작되자, 재빨리 동네까지 잠식한 체인점에서 편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 의식 없이 이용하고 있으며, 마일리지 적립과 할인이라는 싸구려 유혹에 그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고스란히 바치고 있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재임용에 대한 확약도 없는 한달에 80만원의 보수로 만족해야 하는 인턴직에도 고학력이 몰려들고, 부족한 용돈은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 숱하게 발생하는 부조리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에 의해 확산되는 부도덕에도 흥분된 댓글 하나를 달아, 분출하고 나면 그 뿐이다. 그리고는 ‘그렇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하고 이내 잊어버린다.
‘그들이 해 온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한 대로 하는’ 개발도상국, 아니 어설픈 G20 국가의 현실, 그것은 일부 정책입안자와 일부 기업총수의 사욕과 탐욕에 의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그것들을 견제해야 할 다수의 국민들 스스로의 우민화에 있으며, 소리 내지 않고 죽여 지내는 바로 나한테 있는 것이다. 운동을 선동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요를 일으키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몇 가지의 생활수칙이라도 만들어 놓고, 적어도 비도덕적 상술, 부덕한 기업의 제품이라도 불매해 보자. 자기들 말대로 ‘철저한 시장경제’라면 수요가 없으면 포기하지 않겠는가? 그 틈새를 이전처럼 그냥 우리 이웃들이 다시 점유할 수도 있도록 하자. 옆집이 보낸다고 비싼 학원비 들이지 말고, 내 아이가 등수는 떨어져도 인격은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자랐던 시대로 돌아가 보자. 며칠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의 날개론. 우익이든 좌익이든 한쪽 날개로는 절대로 새가 날아갈 수 없다는 평범한 자연현상이 진리임을 깨달으면서, 역사도 시민의식에 의한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도록...
■ 읽는 방법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책 서두에 이 책을 읽는 일곱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23개를 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읽는 순서를 정해 준 것인데, 나는 당연히 마지막 방법, ‘그냥 순서대로 읽는다’의 방법을 택했었다. 막상 책을 읽고 나니, 8번째 방법을 제안한다. 1, 7, 9, 10, 11, 15, 16, 20 그리고 나머진 아무렇게다. 무슨 기준인고 하니, 그냥 순서대로 읽다가 제목에 동그라미 친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