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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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행기가 다니는 길, 성층권이라는 그 곳, 슬쩍 창 너머로 내려다보는 지표면은 대개 아련하기 마련이다. 안개나 구름한 점 없는 하늘이라도, 쾌청한 대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곳은 실제 보이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는, 내게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래, 지극히 개인적 고집이다. 그리고 이 ‘너머의 공간’에 대한 불확실성, 미경험 풍경에 대한 마구잡이식의 억지에 불과한 이 ‘아련함’에 대한 기조에는 실사보다, 허상에 집착하는, 직유보다 은유를 선호하는, 현실보다 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허세가 자리 잡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최근 소설 ‘숨그네’를 먼저 읽고, ‘저지대’를 거꾸로 접하면서, 전자에서 꼼꼼하게 서술해간 그 풍경화와 같은 묘사 속에 숨어있는 그 눈부신 참담함이 어떻게 이번 소설집에서 전달될까가 먼저 궁금했다. 첫 작품집, 정권의 방해, 검열, 망명 등 이후의 작가의 행보를 가름하면, ‘숨그네’보다도 더 선명한, 감추어진 현실이 가시처럼 돋아 있을지 모른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했다. 

중편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저지대’를 제외한다면, 이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때로는 손바닥 장자인 장편까지)들은 내게는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지표면 같았다. 아니, 때로는 지층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퇴적층, 날카로운 날에 의해 단번에 짤려나와 뚜렷하게 쌓여있는 그 현실의 절단면들, 그 성층들을 한꺼번에 견주어 보는 느낌이었다. ‘저지대’에서 보여주는 현실, 취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고, 사건 사고는 늘 일상일 뿐이며, 적당히 음흉하고, 때로는 북유럽의 들꽃들처럼 하나하나가 선명한, 한 마을 이야기, 그리고 그와 덧붙여지는 ‘마을 연대기’와 ‘우리가족’처럼 수록작품들은 각자 날숨과 들숨처럼, 씨줄과 날줄처럼 그렇게 엮여 있었다. 그 연대기 속에서 ‘슈바벤목욕’법을 익히고, ‘일하는 날’의 일정을 고백하고, ‘독일가르마와 독일콧수염’을 선호하는 개인들의 삶이 있었고, ‘거리미화원’과 ‘잉게’처럼 사회화로 응집되는 그런 관찰기가 있었다. 이 기록들이 분명 5월의 고운 들판을 그려내고 있는데, 몹시도 흐릿했다. 

그랬다. 몹시도 아련했다. 전후, 지독하고 악명 높은 독재정권 체제에서 작가의 죄목은 현실을 현실이 아닌, 현실로써 전달한 것이다. 때로는, 너무 자주 사용해서 식상할만한 공감각적 표현들과 서정성이 튀어 올랐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늘땀처럼 꼼꼼하게 뜨는 바람에, 풀 먹인 호청 같은 청량감을 덧칠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살아야 하는 현실’을 세밀한 언어, 갓 빚어낸 단어로 미화한 바로 그 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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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6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