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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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해 빼놓고 있는 것이 있다. 1841년 l월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점령한 영국,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구할양, 1898년 2차 베이징조약에 의해 99년 동안 조차확정 등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아시아에서 빠르게 현대경제를 형성한 지역, 식민지이지만, 조차구역이라는 구분은 왠지 동서양이 자유롭게, 있는 동양속의 유럽을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이 여전히 폐쇄정책을 쓰던 시절에도 홍콩은 자유로운, 뭔가 그럴싸한 근대문화의 향수가 골목마다 진하게 배어 있는 그런 호사스런 섬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홍콩도 본토와 마찬가지로 1941년부터 일본군의 점령지역이라는 것을 까맣게 빼어놓고 있었다. 본토처럼 지금의 아세안 지역처럼, 똑같이 전쟁을 겪고, 특히나 식민지에서 다시 타국의 점령지로 주인이 바뀌면서 현지인들과 기득세력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도리어 더 했을 것이라는, 이 작은 섬의 고통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한인 2세 작가 Janice Y. K. Lee의 “피아노 교사”는 이, 내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이 전쟁기간 1941년부터 1953년 사이의 홍콩이야기다. 그런데,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동양의 홍콩에서, 주인공들은 영국인이고, 혼혈인이며, 일본인이고, 중국인이며, 마지막 미국인까지 등장한다. 작가가 30대 후반의 한국인 2세인 것을 감안하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스케일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작가는 이 홍콩, 2차대전의 소용돌이를 함께 겪고 있는 이 식민지에다 아주 섬세하고, 드라마틱하게 각종 소품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별빛이 소근 대는 등불같은 홍콩, 그 곳엔, 사교계가 있다. 점령지를 약탈하기 위한 제도와 체계의 완성을 위해 파견된, 온갖 곳을 부랑하다가도, 침략자의 여권을 소지했다는 것으로만 지배자가 될 수 있는, 현대사의 그늘이 만들어 놓은 부서질 듯 견고하게 자리 잡은 크리스탈 제품 같은 사교계가 있다.



“중국인들은 바보가 아니야.
우리는 이곳의 영국인 대부분이 자기네 나라라면 엄두도 못 낼 수준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이곳에서 왕처럼 살 수 있는 건 그들의 화폐가 우리 화폐보다 가치가 높아서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살 수 있기 때문이야.
자기들은 이곳의 영주이고, 우리는 농노라고 생각지.
하지만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여기에서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야.
그 사람들은 빌린 돈을 가지고 가장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본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건, 어떤 이유로 식민지까지 쫓겨 왔던 간에, 이들은 승자고, 현지인들을 아마라고 지칭되는 하인으로 거느리며 곱게 다림질한 리넨제품을 선호하며, 파티와 클럽문화에 젖어 든 온갖 스캔들과 루머를 양산하는 사교계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 곳엔 사랑이 있다. 광풍처럼 휘감는 애정, 사랑, 질투, 소유, 패배, 양보, 포기 등 인간이 이성을 상대로 부릴 수 있는 온갖 마술이 존재한다. 그 위에 혈육도 필요 없는 탐욕이 있으며, 그 옆에 발 빠르게 바뀌는 지배자에게 고개를 드미는 해바라기들이 있고, 그 속에 조롱과 야유, 그리고 나약함이 포함된다. 

역시 그곳에도 전쟁이 있다. 포획과 수탈에 익숙한 광기어린 철없는 군부가 있고, 강간과 살육에 미쳐가는 일본군이 있으며, 공습과 학살에 움추린 한때 잘 나갔던 기득세력들이, 그리고 수용소의 비윤리와 도덕이 상존한다. 덧붙여서, 그 곳엔 “크라운 컬렉션”이라는 원래 중국것이었으나, 대영박물관을 위해 영국황실이 수집하고 있는 영국것인 중국보물이 새로운 주인인 일본으로 넘어가야 하는 아이러니까지 삽입된다.

소설 “피아노 교사”는 이 홍콩, 가능한 한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특히나 식민지, 게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견디어 나가는 인간의 양상을 모두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1951년, 영국에서 지루한 하류인생을 거부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 공직자 남편을 따라 홍콩에 온 클레어는 영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바로 상류사회인 사교계에 입문할 수 있었으며, 홍콩의 대 부호 빅터 첸의 아이 로봇의 피아노 교사가 된다. 그녀는 새로 찾아 온 환경, 상류사회의 진입을 통한 정체성의 위기를 이 부호의 기사로 있는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과의 사랑으로 벗어나려 하는데, 윌은 돌리어 이 천진난만한 여자를 통해, 십년전 사랑에 빠졌던 중국인과 포르투칼인 사이의 혼혈아 트루디와의 관계를 다시 집착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제목 “피아노교사”가 맞다. 그런데.. 

작가는 기가 막힌 음모를 심어놓았다. 사실, 이 소설은 피아노 교사인 클레어가 아닌, 그로부터 10년전 혼란기의 홍콩사교계를 주름잡던 투루디, 그녀의 사랑과 용기, 그리고 그 매력이 한 남자로 인해 철저히 와해되는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욕망, 전쟁터에서 그 욕망과 매력이 할 수 있는 타협,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로 인해 씻김 받기를 원했던, 귀여운 악마, 도리어 약아서 순진한 한 여자의 부침을, 원칙과 도덕이라는 가면 속에 비겁과 무능을 감춘 윌이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을 땐, 아이를 낳고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된 그녀을 위해 결코 방문을 잠그지 않고 지낸 10년을 보낸 그 사랑의 이야기이다. 8살이 되어서 엄마가 떠나고, 부자아빠 덕에 유럽으로 유학을 갔으나, 혼혈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고, 그 반발심으로 사교계의 여왕벌이 되어, 매년 누구를 만나던 그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던, 마치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사랑을 희구하며 살아 온 강한 트루디가 처음으로 만난 의젓한 인간 윌에게 빠져드는 이유는 마치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과 같았다. 그리고 전쟁터, 야욕과 야만만이 지배하고 있는 그 폐허의 유배지에서, ”트루디라는 새는 새장에 가뒤놓을 수 없어, 나는 음침하고 위험한 자유와 그에 따르는 모든 굴욕에 익숙해 졌다며“ 그 자신을 버리고 윌에게 매달렸던 그녀, ”제발 남자답게,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보여“ 달라는 마지막 절규를 뿌리친 가책에 빠져 있는 윌에게 마치 트루디의 환영처럼 클레어가 다가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유층, 사교계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의심을 하녀에게 덮어씌우고 수업이 있는 날, 부호의 물건들을 하나씩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나오는 피아노 교사 클레어에게 윌이 그처럼 추락하듯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상반된 성격, 두 여자를 한 사람으로 가름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힘은, 전체적인 구조의 짜임새, 그리고 당시 홍콩을 그대로 재현한 무대와, 다양한 인간, 상황과 대처라는 것을 매우 짜임새있게 풀어놓은 전개에 있다. 모두에 서술한 당시 홍콩에 있었던, 아니 작가가 탄생시킨 모든 화두들 하나 하나의 그 미묘하고 처연한 관계를 아주 숙련된 구조물을 올리듯 그렇게 만들었으니, 정말, 표지 뒷면에서 소개된 서평처럼 “전화기의 감춰놓고 읽어야 하거나”, “한번 손에 잡으면 탐닉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또 다른 매력, 나는 이 소설이 곧 영화화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메이저급 영화사에 의해 말이다. 왜냐면, 그동안 숱한 영상으로 소개된, 홍콩, 사교계, 전쟁, 욕망을 이렇게 한꺼번에 응집시키면서도, 뛰어난 묘사를 통해 책을 읽어갈수록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는 소설을 모처럼 만났다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하인들이 날을 세운 깃, 나른한 식민지 오후, 바스락 소리가 날 듯이 풀먹인 침대보를 마구 주름을 가하는 오후의 정사, 식민지 부호의 탁자위에 올려진 수입 찻잔과 피아노, 사교장, 밀실을 꽉 채운 담배연기, 홍콩의 뒷골목들, 침략자의 오만과 성욕, 수용소, 먹기 위해서는 육체까지 넘겨야 하는 굴욕, 보물이라는 아이템, 그리고, 마지막 클레어가 그토록 원했던 상류상회의 이질감을 버리고, 영국에서의 그녀의 삶처럼, 현지인처럼 완차이 골목에서 살아가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결말까지, 영화가 가져야 하는,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극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말부분의 급박하게 처리한 서술방법이 전체 구조로 보아서는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더더욱 놀라왔던 것은,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철저하게 완곡하게 돌아가는 작가의 재치다. 모든 것을 보여준 듯한데, 꼭 독자가 앞뒤를 고려해서 그 엉킨 줄을 풀게 만드는, 그리고 이해하게 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고를 통해 마치 당시 홍콩의 거리, 사교계 안에, 그 가십세계에 내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주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작가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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