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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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는 반복된다. 단순히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때문이 아니라, 징글징글한 인간의 욕구때문인데, 이 욕망이, 교과서적으로 기대한다면,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인류을 위해 새롭게 태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늘 거꾸로 가는 기관차처럼 반복되는 자충수만 둘 뿐이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예수와 석가등의 선인을 제외한다면 대중은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하니, 그걸 굳이 “미시”와 “거시”로 구분하여 인간사회를 진단해 본들, 결론은 늘 인간이 본질에 의한 행동양식을 강력한 제도에 의해 조정하지 않고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할 뿐이라는 자괴감마저 생길 지경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가장 큰 덕목, 시장경제라는 전제로 필요한 자와 공급하는 자의 완벽한 조화속에 비자발적 실업이 없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의 진입이 허울뿐인 것은, 굳이 이 경제학이 태동한 시기가 산업혁명과 식민지라는 힘 있는 것들이 무한이익을 남기기 위한 시기였다는 역사적 배경을 억지 부리지 않더라도, 그냥, 작금의 상황을 보면 된다. 갈수록 더 양극화되고 있는 사회, 소수민족처럼 구박과 체념이 익숙해지고 있는 계층이 점점 더 분포가 넓어지고 있는 이 사회를 말이다.

시장이 소비자가 원하는 좋은 제품을 가장 합리적인 단가와 가격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냐마는, 시장이 또한 별 필요하지도 않을 것들은, 자기가 생산해 낸 것들을 무조건 팔아 버리는 마케팅을 동시에 진행하는 한, 그러니까, 어떤 것이든, 이익이 있는 곳에 덤벼드는 승냥이의 속성을 깊게 지니고 있는 한, 세상은 더러운 진흙땅을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이 인간임을 서로 인정하고 배려하면, 위에 것을 조금만 덜어내면 밑에 것들이 부쩍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속성을 버리지 못할까? 이 현상 때문에 걱정하고, 다시 반복하고 있는 많은 이론들과 행동들이, 이제 거듭에 거듭나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음에도, 왜 여전히 이 명제는 고민에 싸여 있을 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가 공저한 “야성적 충동”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8가지 의문에 대한 현상을 거시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즉, “왜 경제는 불황에 빠지는 가?”, “왜 중앙은행이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가?”, “ 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왜 물가상승률과 실업율은 장기적으로 반비례하는가?”, “왜 미래를 위한 저축을 비계획적으로 운용하는가?”, “왜 금융시장과 기업투자는 변동성이 심한가?”, “왜 부동산시장은 주기적인 부침을 겪는가?”, “왜 소수계의 빈곤은 계속 대물림 되는가?”라는 이 8가지 질문을 편하게 설명해 주었으며, 그것에 대한 주요 요인들 케인즈가 언급한 “야성적 충동”의 기조하에, “자신감, 그리고 상승효과”,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착각”, “이야기”라는 다섯 개의 부류로 전제했다. 

모처럼 각 장마다, 꼼꼼한 메모를 함께 한 것은,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이론서라는 선입감이 주는 경직됨이었으나, 읽을수록 경제학 용어를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 나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명쾌한 내용들 덕에 어느덧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음도, 각 장에 언급된 수많은 사례와 분석을 한 문단으로 요약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정당화 한 것은, 마지막 참고문헌 편에서 무려 24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목록 때문이었다. 평생을 읽어도 소화하기 힘든 참고문헌(질은 둘째치더라도 양만으로도)을 근거로 저자들의 학문적 성과까지 정리된 책을, 어찌 이 문외한이 전달을 하겠다는 과욕을 부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이 지금, 세계화라는 우산 밑에서, 이익은 반드시 개인의 소유로 이전되고 손실은 모두 사회비용이 되고 있는, 엉성한 국가의 보호 하에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허물을 꼬집고 있다는 것은 말 할 수 있겠다.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부침속에 숨겨져 있는 “감정적 반응 속에 경제적 진실은 쉽게 잊혀지는” 심리를 이용한 “합리적 기대와 효율적 시장의 방향에 경도되어 경제위기의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역동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야성적 충동을 이용하여 기업은 자본주의는 보다 더 극대화된 이익과 조직을 이뤄내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나눔을 통해 비자발적 실업을 막을 수 있음에도 임금삭감 대신 대규모 해고가 남발하고 있으며, 모기지등 불확실한 미래가치를 이용한 버블경제가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현상의 가장 든든한 뒷배경, 가장 믿음직한 보험, 늘 국민경제를 명분으로 나타나는 해결사 “예산”과 “사회기금”이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이익은 부자가 보고 손실은 대다수 “쉽게 잊어버리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사이클이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 이게 핵심인 모양이다. 

이런 엉뚱한 생각은, 어떤 정예한 경제학 이론도 “야성적 충동”을 배제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그런데, 이 심리적 요인조차 저자들이 진단하고 있는 현상을 훨씬 뛰어넘는 변이와 변형이 가능한 유기체라는 생각 때문이며, 결코 인간의 타자의 이익에 솔선수범 할 수 없다는 패배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우리가 모델로 삼고, 부러워하고 있는 국가와 체제들을 흉내라도 내어, 이 어깨위에 올려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일뿐이다. 국가의 역할, 제도의 정당성, 부패와 악의가 없는 제대로 된 준법정신과 일부계층이 아닌 전체 국민을 살필 수 있는 권력, “뱀기름 이라도 생산된 것을 무조건 팔아먹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일정 수준 골라내려고 하는, 그 제대로 된 힘의 올바른 사용이 그립다. 

아무튼, 각 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례들과 경제학 용어로 인해 책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최근에 너무 익숙하게 듣고 있는 경제에 관련된 갖가지 실태들, 적어도 이 현상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염려를 경청할 수 있었던 “행동경제학”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시장경제라는 것이 온당하긴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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