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퇴하는 민주주의 - 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 ㅣ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5
손석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말하긴 쉬운데, 실천하기 어렵다? 어찌보면 참 지당한 말 같은데, 이 표현처럼 황당한 것이 없다. 물론 실행하고 있는 것만 말할 자격을 준다면 온 세상이 “묵언”의 경지로 들어서야 할 것 이므로, 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야 싶다마는, 개인, 또는 조직, 아니 어떤 부류의 이익과 대치되는 정의가 요구된다면, 인간이라는 것이 어찌 정의의 길을 쫓을 수 있겠는가? 그랬다면 인류가 이 모양새를 갖추고 있진 않을 터이니....
조지프 히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얘기하자면, 우파라 지칭되는 보수와 가진자는 조금만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고, 좌파는 좀 더 공부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극단적인 한 체제로 유지하고 있는 사회는 “불행”을 전제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유경쟁체제는 소외그룹을 양산할 것이며, 통제사회는 인간의 영혼을 잠식할 수 밖에 없다. 이 양자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정자본주의든, 수정공산주의든, 이 “수정”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 “의식의 전환”이 곧 사회정의,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살게 하는 진정성만 담보한다면, 세상은 아름다워 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 씁쓸히도, 7천년 인류역사 상, 글쎄다, 그게 만족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는지....
핀라드 등의 북유럽 사회체제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체제 하에서도 얼마든지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그러니까 “경제발전”과 “복지”를 한몫에 쥘 수 있는 지혜가 부럽기 때문이다. 그걸 표본으로 삼아, 이미 수십년 틀에 박혀 선점한 지위를 내놓으라고 하면 될 성 싶겠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소위 제국주의의 확대라는 것을 16세기 이후로 본다면 500년 역사고, 자유시장 등의 개념으로 본다면 100년 안팎이며, 세계인류의 재편성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본다면 기껏 60년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역사로 국한한다면 고작 30년 아닌가? 그렇다면 신석기시대까지 무리하게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적어도 문자시대 이후만 따져도 7천년인데, 7천분의 60을 하면 0.85%에 불과한 이 시기에 축적된 부와 권력과 이념을 되찾자고 한다면, 까짓껏 못 할 것도 없다고 본다.
“재생프로그램”으로 돈을 지급하니, 술이나 먹는다고 상품권을 주자니, 당장 자녀 학비를 납부해야 하는 서민은 어쩌란 말이냐? 도시미관과 국가적 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소한 지역 몇 명쯤 희생시키겠다는데, 대의를 위해 얼마든지 이정도의 희생은 감수해도 된다는 데, 왜 이리 딴지를 걸고, 국가경쟁력 제고에 방해하고 있단 말이냐? 이런 상반된 질타에 구심점에 “인간이인간을낳고또그인간이인간을낳는,그러니까인간이인간으로인간답게인간을구현하는”것에 최우선을 둔다면 뭐가 그리 어렵겠는가?
“후퇴하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오늘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진단한 강연들을 묶은 책 한권을 읽으면서(아, 그간 읽었던 주석과 인용, 각주에 몸서리치던 책들에 비하면 얼마나 손쉬운 독서냐) 문득 말장난을 하고 싶었던 것은, 참으로, 이 가벼운 진리들이 그렇게 지켜내기 힘든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들끓었다가 바로 잠수타는, 그리고 부인하고자 해도, 이미 진보나 좌파(그 진정한 분류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시되지만)마저도, 경제앞에서는, 아이들 교육문제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주류사회를 흉내내고 있으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반박하는 “잃어버린 60년”을 부르짖은 듯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 역시 포함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춘의 강연으로 시작해서 하종강의 대담으로 끝나는 이 작은 책, 한권은 적어도 지금, 우리 한국이 안고 있는 불균형에 대한 힘없는 자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의 결과이다. 이념, 노동시장, 주택, 교육, 재일조선인들의 실체 등 신자유자유에 올인하며 그 틈을 타, 상위 몇프로의 몰지각하고 염치없는 착취와 굳히기 및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귀찮니즘을 동반한 “나만 피하면 돼”식의 순응주의에 대해 분석과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의 덕목은, 그 불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심, 학습, 실천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이상사회, 소시민부터 지식인까지 진정으로 손쉽게 이념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이웃에 대한 배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실천이 가능한 일부터, 이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각종 “극단적 이기주의”에 의한 “비타협”과 “순응주의”에 한발짝만 나서보면, 이 허당스러운 사회에 한번쯤 “씨익” 웃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마저도 용기가 필요하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