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으면서, 다소 억지스럽게 과연 이 자본주의가 주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렇다고 해서 원시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그렇다는 관념적 상징, 또는 기호로 대변할 수 있는 복지를 전제하거나, 보다 원시에 가까운 현대사회를 조장하는 것, 이를 테면, 인간의 본성에 가장 근접한, 상호 존중 및 배려의 사회만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해법은 아닌가? 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혼자 웃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연처럼, 사실, 이걸, 이렇게 연결시키고자 하는 사전 음모도 없이, 거실 소파 옆, 작은 책장에 놓여 진 이 책, 다니엘 에버렛의 아마존 오지 체험기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슨 주술에 걸린 것처럼, 바로 전에 읽어 던 그 “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이 그대로 제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인류학, 아니, 소수민족 언어학에 관련된 각각의 책 속에서 일관된 맥락을 읽었다면, 글쎄, 뭐 그게 편각으로 발생한 왜곡된 독서현상일수도 있겠으나, 결코 그 정도로 독서능역이 저하하지는 않다는 것을, 나는 나를 믿는다.  

이 책은 브라질 아마존 지역 아주 깊은 곳, 이미 브라질화(아니, 포르투칼화) 된 원주민 “카보끌루”족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는 마시이강유역의 피다한마을을 대상으로, 그들 언어를 공부하여, 그들 언어로 된 성경책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이 미개한 부족들을 교화하고, 하느님의 품에 넣겠다는 한 선교사(매우 불우한 성장기와 하느님을 만나 정신차린, 그리고 제 2의 삶을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맹세한 그 간증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신을 버리고 언어학자로써 성공했다)의 30년간의 아마존 오지 체험기이다.

가끔, 이렇게 인류학적인 소재를 다룬 책을 읽는 것은 아마도, 이 분야의 책들이 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드러남을 같은 인간으로써 이해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데, 그간에 읽어 온 몇권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이 초기 부족사회를 언어를 통해서 그 문화를 설명하고 있으니, 사실, 본격적으로 노먼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과 대비되는 설명, 그러니까, 중반이후, 언어학적 관점에서의 기나긴 서술은 솔직히 문화인류학쪽으로 살짝 기대하고 읽어 내려가기에는, 독서에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과정을 사냥, 유희 등 공동체와 그들의 관습을 사례로 들어가면서 밝혀냄으로해서, “정확히는 소화하지 못해도 대충 뜻을 알기에는” 무리는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지구상에 6,500종류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게 그러니까 소위 부족, 공동체 구역이 그 면적과 상관없이 이 지구상에 6,500여개의 문화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고, 미국재단에서 400억원을 출연하여 이 “소멸언어” 연구를 지원하던지, 선교를 위한 기금에서 지원하든지, 많은 지원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 언어들이 사라져가는 것도.. 그 것 조차도. 또 자본주의니.. 이 것 참이다.

 

     “어떤 사회든 반드시 리더가 있어야 한다는 오류는 세가지다, 첫째, 우리와 다른 사회를 왜곡시키고.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인정함으로써,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나 메커니즘을 보존하고 정당화하려는 경향, 둘째, 선사시대부터의 주요 문명의 역사를 그대로 본 뜬, 조직구성만이 사회라는 인식에 근거한 할리우드 영화나 소설에서 인디언은 반드시 추장을 만들어 놓는경향 셋째, 실제 존재했던 인디언 추장 역시, 이들과 처음 접촉한 서양인들이 거래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앞잡이 역할을 할 추장이 필요하여 만들어 내는 경향 

         본문 중 “지배자가 없이도 행복한 조직을 지켜보는 필자의 생각들 요약-사실 이 내용은 저자가  얘기하고 있는 많은 연구결과들과는 조금 상관없는 내용이다만...” 

삶, 언어, 깨달음 이라는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한 구절을 먼저 꺼내 놓은 것은, 바로 우리가 소위 지구상 오지에서 원시사회모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믿는 소수민족들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과 또 지금 우리사회(소위 “문명사회”라고 불리우기를 선호하는)가 조직을 정당화 하려는 오랜 인류의 오만에 대한 저자의 지적이 매우 명쾌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몇 명되지 않는 사회라 평등사회로 유지될 있을 것이다”라는 비웃음이 그려지긴 하지만 말이다. 

정글, 최소한의 언어, 수많은 언어학적 분류 및 연구결과로는 절대로 풀어 나갈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 피다한 사람들, 온갖 해충과 위험, 창조신화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삶과 죽음도 그저 일상에 불과한 사람들, 밤 사이, 독사나 벌레의 위협 때문에 잠조차도 푹 잘 수 없어, 늘 쪽잠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 외부세계의 편리성조차도 하루만 지나면 별로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신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여하간에, 이 책의 장점은 탐험기에서 문화연구로, 점차 언어가 문화를 지배하는 사례들, 그리고 신도 진리도 없는 유쾌한 세상을 만나가는 깨달음, 점층법적인 서술을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것에 있다. 

미개, 행복지수, 개발 등의 단어를 그리지 말고, 이 소수민족, 이 오지마을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그 인간의 본성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전해주는 메시지 때문일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몸에 익숙한 문명세계를 버리고 정글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이 문명사회에서 이들의 문화와 생활양식, 정신세계를 접목시켜, 탐욕에 찌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인류애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찾아 보자는 것 때문이다. 아니, 이 살아있는 “거울”에 우리를 비추어 보는 것을 통해, 비록, 끝내 실현할 수 없는 이 “이상”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한번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글쎄.. 이 반성의 첫걸음은, “신”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이 신이라는 존재는 “구원을 하려면, 그들의 삶에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라”라는 요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신과 함께 있으면 도리어 “충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며, 이 충만이 피다한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웃는 수치”를 지니고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책을 읽으며 너무 사회학(?)으로 간 것 같다. “콧노래말, 외침말, 노래말, 휘파람말, 일반적인 말” 피다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다섯가지의 언어다. 우리는 이 중 딱 하나 일반적인 말과 행동양식으로만 소통할 뿐이다. 누가 더 다양한 문화를 가진 것일까? 언어가 문화와 쌍을 이루고 있다면 인간의 언어외에는 정말 언어가 없는 것일까? 사실, 저자는 이 질문을 독자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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