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 부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고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가 생리의학상을 타게 되었다.
이로서 일본은 과학 부분에서만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직 한명도 과학 부분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고토 히데키는 유카와 히데키 박사를 동경해서 이론 물리학을 공부했고 유카와 박사가 생물 물리학을 연구하라고 권해서 원자핵 공학 대학원에서 방사선 생물학을 공부한 후 뇌 신경과학을 전공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어서 필자는 일본의 과학자가 걸어온 발자취를 생명, 의학, 물리, 화학에 걸쳐서 엮어 보고 싶었다. 필자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이 과학자들의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p382” 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마치 교양과학 시간에 노교수가 자신의 은사와 다른 과학자들의 뒷애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은 조선보다 일찍 서양학문을 접했다. 1838년 오가타 고안이 네델란드어와 의학, 가학을 가르키는 데키주쿠를 설립했다. 조선은 헌종때였다. 물론 일본에서도 무사의 자녀는 사서오경같은 한학을 배워야 했으니 조선과 상황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분문제에서 갈등을 겪었던 후쿠자와 유키치 는 물리의 세계에서는 신분의 상하와 관계없이 누구나 공평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물리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게이오 의숙의 입학생에게 물리를 통해 서양의 사고를 공부하게 했고 물리학을 문과계열의 필수 과목으로 만들었다 (p20)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인정하기 싫어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에 어쩌면 후쿠자와 유치키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이 물리와 시름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혼자 실소를 하기도 했다.
이 후쿠자와 유치키의 게이오 의숙에 김옥균 이 공부했었고 김옥균이 갑신정변으로 처형된 후 유치키가 충격을 받고 탈아입구’(일본도 제국 열강의 식민지 쟁탈에 나서지 않으면 자신들이 제국의 식민지가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과학도 조금 더 빨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유치키로부터 일본에 물리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독한 일본인들이 혈혈 단신으로 외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은 과학의 발달이 생각보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핵물리학의 시조인 어니스트 러더퍼드 닐스 보어 등 교과서에서 흔히 봤던 이름들을 발견하게 된다. 양자 역학에 도전한 니시나 요시오는 보어 밑에서 공부를 했으나 보어에게 우리 일본인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어떨지 항상 의심에 왔습니다. 또 마음속으로는 일본의 과학이 서양의 수준에 도달하는 건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뭍는다.
그 질문은 사실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해 보어는
학문은 인종의 차이라든가 유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뿐이다” p97
 
일본과학계의 고속 성장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전쟁의 도울 수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 경쟁에 일급의 과학자들이 내몰리기도 했고, 731 부대의 악행에 동참한 의학자도 있었다.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행정관료의 허수아비로 전락하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참화가 빚어졌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저자는 서슴없이 비판하며 그것을 화의정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따지는 것을 그만두고 미래를 위해서 모두 힘을 합쳐 개선하도록 하자. 그 때문에 일본은 무책임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관료의 폭주도 이어진다. 이는 쇼토쿠 태자에 의한 17개조 헌법 이래로 일본인의 몸에 밴 화의 정신이다. p377”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이유로 저자는 일본 과학계의 이러한 약진이 단기간에 걸친 국책 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적어도 150년 이상의 역사를 토대로 한 결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음을 애기한다.
 
개국 이래 한 세기 반, 분명해진 것이 있다. 사무라이 과학자에게 유형의 문화인 수리학, 요즘 말하는 물리학을 배우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현대의 일본 과학자도 매일 서양과 교류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방식을 포함해서 모든것이 서양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서양 과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일본인이 서양의 사상과 철학, 도덕, 관습, 종교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물리학에 비해서 지극히 어려웠다. 일본인이 이제부터 배워야 할 서양의 지혜는 사회의 민주제도라든가 개인의 독립, 자존 등 무형 문화라고 생각한다 p380
 
우리나라의 인적 재료는 일본의 것과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적인 부분도 비슷한 제약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학을 국가나 공적 기관에서 투자하는 이상으로 민간과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과학자를 후원하고 도와주었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서양학문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지 거의 100여년이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소 어딘가, 아니 세계의 어느 연구소에서 노벨상을 수상할 만 한 걸작이 만들어 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국가나 교육기관 이외에 개인 하나하나가 과학발전을 위한 투자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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