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 발밑의 우주를 들여다보는 한 곤충학자의 이야기
정부희 지음 / 동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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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정부희)_동녘

 

작고 소중한 벌레들의 삶과 죽음, 빛나는 그들의 하루

 

벌레를 사랑한다니.. 책 제목을 보고 저자는 도대체 누구길래 벌레를 사랑하지? 참 대단한 사람이다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당벌레만 봐도 소리를 지르고 기겁을 하는 세상에 말이다. 그리마 같이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에 비하면 무당벌레는 귀여운 애교쟁이 수준이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인지 벌레에 조금은 익숙한 편인 것 같다. 아마 타인에 비해 벌레를 더 쉽고 자주 접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직도 벌레가 무섭고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그녀처럼 나는 결코 벌레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보니 벌레에 대해 무언가는 조금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사랑하고 보살피며 지켜줘야 할 작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벌레를 증오하며 싫어했을 텐데 말이다. 벌레 하나하나 그 작은 생명이 우리의 지구,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도 몰랐을 테다.

 

곤충을 성공적으로 잘 키우려면 자연 상태의 환경과 비슷하게 조성해줘야 한다(p.91)

 

어릴 적 수 없이 잡았던 잠자리들에게 미안해졌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곤충들을 아끼고 사랑하는지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단지 나의 재미를 위해, 날아다니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없이 잠자리들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물론 어린 시절이라, 무작정 잠자리채를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많이 잡지는 못했겠지만..). 그저 잠자리 통에 보관하고 하루가 지나면 쇠약해져있거나 죽어있는 잠자리들을 풀숲으로 던져주던 철없던 어린 꼬마아이가 조금은 야속했다. 먹이도 없이 풀잎도 없이 그 좁은 통 안에서 하염없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잠자리들의 심정이 헤아리면 마음이 아프다. 어린 시절엔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곤충은 몸집이 작아 이동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살던 곳이 파괴되면 대부분 그곳에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새롭게 조성되는 휴양림 가운데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 주변에는 곤충이 거의 살지 않는다(p.113)

 

최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 숲을 깎아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고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게 운동기구도 설치하고 참 예뻤다. 하지만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의 욕심으로 숲의 일부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 서식하던 수많은 곤충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괜히 미안해졌다. 우리 인간이 어디까지 자연의 영역을, 곤충들의 터전을, 그들의 삶을 침범할까싶었다. 책이 아니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역지사지가 되어 벌레들의 처지를 고려해보지도 않았을 것 같다.

 

죽은 나무는 곤충들에게 중요한 밥이다. 수많은 목식성 곤충들이 죽은 나무를 찾아와 썩은 나무 조직을 먹고 산다.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약 10개월의 애벌레 시절 동안 나무 속에 틀어박혀 산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곤충들의 밥상이자 집이자 쉼터인 셈이다. 그들은 썩은 나무 조직을 먹으면서 자신의 몸도 살찌우지만, 나무를 잘게 분해시켜 또 다른 식물의 거름으로 되돌려준다.

죽은 나무를 치우는 건 살상이다. 그저 내버려두면 죽은 나무 주변의 생태계는 알아서 잘 돌아간다. 죽은 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은 생태계가 깨지는 순간, 침묵의 숲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p.119)

 

사실 나도 예전에 시청에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 태풍으로 도로 갓길에 쓰러진 나무가 너무 위험해보여서 치워달라고 전화를 건 적이 있다. 하루 이틀 후였을까, 쓰러진 나무는 금세 치워졌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벌레들의 밥을 치워버렸다. 누군가의 작고 소중한 생명을 치워버렸다. 굳이 자연의 시스템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저자의 말처럼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잘 돌아갈 텐데, 언젠가부터 우리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일까. 죽은 나무도 수십 년 수백 년의 생을 마감하고 그것의 가지가, 뿌리가 또 다른 새로운 벌레들에게, 자연에게 돌아갈 그 기회를 우리 인간이 무엇이라고 방해하는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파브르 곤충기의 방대한 규모에 놀라고, 천대받으며 올바르게 평가되지 못했던 곤충들의 내밀한 삶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에게 곤충의 경이로움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p.183)

 

어릴 때 파브르 곤충기를 읽었던 기억은 나지만, 정작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만난 곤충 책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은 다시금 곤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그동안 잊고 지낸, 아니 그들의 삶을 떠올려볼 생각조차 안했던 나에게, 많은 독자들에게 그녀 역시 곤충의 경이로움을 널리 알리고 있다.

 

모든 생명은 존재의 의미가 있다. 모두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진화 과정을 통해 척박한 지구 환경에 적응하면서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인간에게 없다. 인간도 그 무수한 생명들 중 하나일 뿐이다(P.311)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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