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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평점 :
침묵을 보다(마크 C.테일러)_예문아카이브
우리가 쉬어갈, 그리고 살아갈 공간을 내어줄 '침묵', <침묵을 보다>
침묵을 보다. 종교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이며 포스트모던 신학자로 알려진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 내게는 조금 힘들었다. 무교라 그런지 종교적인 내용 및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통찰력도 부족한 나였기에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매일 반복되는 층간소음, 벽간 소음 등으로 소음과의 전쟁 속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더 소음 없는 ‘침묵’을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집이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라고만 느꼈었는데, 그런 타인의 ‘소음’을 직접 겪어보니 ‘침묵=편안 = 고요 = 행복’이라는 공식이 저절로 떠오른다. 지금의 현대인들은 수많은 소음에 노출되어 원하든 원치 않든 시끄러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계속 그런 환경에 익숙해서인지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침묵’은 조금은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침묵’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상태이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헤쳐 가며 잠시 쉬어가듯, 우리에게도 침묵은 우리가 쉬어갈, 그리고 살아갈 공간을 내어준다.
산길의 맞은편에서 인근 대학교의 학생이나 미술관 방문객을 마주치곤 한다. 보통 혼자지만,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거나 아이팟을 이용해 음악을 듣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이들에게 왜 숲의 조용함을 즐기지 못하고 이 장비들을 가져오느냐고 물어볼 때도 있다(p.58)
사실 나도 친구들과 등산을 갔을 때, 친구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와서 등산을 하면서 노래를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등산은 그 자체로도 산과의 교감, 자연과의 공감을 한다는 면에서 완벽한 활동이었지만, 험난한 산을 꽤 오랜 시간 오른다는 건 아직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조금은 무리였을까. 신나는 노래를 들음으로써 노동요라 생각하고 열심히 산을 올랐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정작 그 소음에 묻혀 산에서 나는 새소리, 물소리,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놓쳤던 것 같다.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산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노래를 들음으로써 우리는 현실에 좀 더 익숙한 활동을 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전자기기에 익숙한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다음번 산행 때는 나도 자연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봐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양과 검정(빛과 어둠)은 다른 모든 색을 만드는 기본색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검정에서 오고, 하양으로 끝난다.’ (p.188)
하양과 검정색은 다른 모든 색을 만드는 기본색이자, 원컬러 그 자체만으로도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 가장 무난한 컬러라고 생각한다. 비록 르네상스가 되면서 더 이상 색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시대까지 모든 이들에게 제일 사랑받는 컬러가 검정과 하양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컬러 속에는 침묵이 스며들어있는 것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고즈넉해지고, 평온해지는 컬러, 소리로 표현하자면 상태로 나타내자면 그 것 자체가 바로 ‘침묵’이니까. 그리고 침묵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태가 아닐까.
열린 곳은 존재가 주어지는 빈터다. 존재는 결코 소유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선물이다. 그것도 일시적인 선물이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의 선물은 동시에 죽음의 선물이며, 죽음의 선물은 동시에 생명의 선물이기도 하다. 은총은 놀라운 선물이다. 죽음의 선물이기도 한 생명의 선물이며 생명의 선물이기도 한 죽음의 선물이다. 침묵은 이 은총의 경이로움을 향한 열림이다.(p.464)
[이 서평은 출판사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